삼성전자 '갤럭시 S21 FE'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갤럭시 S21 FE'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국제 가전 전시회 'CES 2022'에서 올해 첫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 S21 FE'를 전격 공개했습니다. 근데 이 제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입니다. 바로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 S21'을 기본 베이스로 만든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왜 2022년이 돼서야 '작년폰' 갤럭시 S21의 동생을 뒤늦게 내놨을까요?


의외의 '효자' 된 '팬에디션'

갤럭시 S21 FE의 'FE'는 '팬 에디션((Fan Edition)'의 약어로 팬들이 좋아하는 기능을 탑재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FE 시리즈는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대화면, 120Hz 주사율, 고성능 카메라, 대용량 배터리 등의 기능은 살리되, 외장이나 기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가를 절감해 가성비를 높인 제품군입니다. 대신 '갤럭시 S'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붙여 '가심비'까지 만족시키겠다는 욕심 많은 제품이죠.

FE 시리즈의 원조는 2017년 선보인 '갤럭시 노트 FE'입니다. 이 제품은 초유의 발화 사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갤럭시 노트7'의 부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특별판'이었습니다. 국내에 40만대 한정 판매됐는데, 사실상 완판되며 갤럭시 스마트폰의 신뢰 회복을 입증한 제품이 됐습니다.

'모든 팬들을 위한 삼성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삼성전자 글로벌전략실 제품전략 담당 마이클 랜돌프(Michael Randolph)가 '갤럭시 S20 FE'를 소개하는 모습.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모든 팬들을 위한 삼성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삼성전자 글로벌전략실 제품전략 담당 마이클 랜돌프(Michael Randolph)가 '갤럭시 S20 FE'를 소개하는 모습. / 사진 = 삼성전자 제공

이 FE 시리즈가 2020년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바로 '갤럭시 S20 FE'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 해 출시된 '갤럭시 S20' 시리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아 전작보다 판매량이 크게 감소합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바로 'FE 전략'입니다. 갤럭시 S 브랜드도 연장시키고, 부품도 재활용하는 '일석이조'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근데 이게 제대로 먹힙니다. 갤럭시 S20 FE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을 공략하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며 글로벌 10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합니다. 이에 고무된 삼성전자는 FE 시리즈 출시를 정례화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정작 갤럭시 S21 FE는 한 해가 다 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꼭 필요했는데…반도체 공급난에 '발목'

지난해 갤럭시 S21 FE는 당연히 하반기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일찌감치 유출 정보와 예상 렌더링 등이 쏟아졌고, 8월 정도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특히 2021년에는 '갤럭시 노트' 시리즈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하반기 라인업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에 FE 시리즈의 활약이 더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갤럭시 S21 시리즈가 많이 안 팔린 전작보다 더 안팔린 상황도 FE 시리즈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갤럭시 S21 FE /사진=삼성전자 제공
갤럭시 S21 FE /사진=삼성전자 제공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갤럭시 S21 FE 출시에 발목을 잡았습니다. 갤럭시 S21 FE에는 갤럭시 S21 시리즈와 같은 '스냅드래곤 888'과 '엑시노스 2100'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해야 하는데,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공급이 제한됐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칩을 쓰는 폴더블폰 '갤럭시 Z 폴드3'와 '갤럭시 Z 플립3'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흥행에 성공한 점도 갤럭시 S21 FE의 입지를 약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막판까지 갤럭시 S21 FE의 출시를 저울질하던 삼성전자는 결국 해를 넘겨 CES 2022에서 제품을 최초 공개했습니다. 작년 같은 별도 '언팩' 행사는 없었고, 오는 11일 1차 출시국도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 등 100여 개국에 한정될 전망입니다. 한국 출시는 해당 국가 판매 상황 등을 지켜보고 결정한다고 합니다.


제품 자체는 괜찮은데…

비록 전작에 비해 조용한 공개였지만, 제품 자체는 여전히 매력 있어 보입니다. 갤럭시 S21 FE는 갤럭시 S21 시리즈 특유의 '컨투어 컷' 디자인을 계승하고 같은 프로세서를 탑재하면서 240Hz의 빠른 터치 응답률과 120Hz 주사율 지원, 4500mAh 대용량 배터리 등 고스펙을 지원합니다. 전면 카메라가 3200만 화소로 강화되고 전후면 카메라를 동시에 촬영하는 '듀얼 레코딩' 기능을 탑재하는 등 카메라 성능도 높였습니다.

특히 갤럭시 S21 FE는 출고가 699달러로 전작보다 100달러를 낮춰 가성비를 더 높였습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수요가 가장 높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한 5G 중가폰 시장에 강하게 어필할 만한 제품이라는 평입니다. 올해 애플이 5G 기능을 처음 지원하는 보급형 '아이폰 SE' 3세대 제품을 내놓을 전망이라 이에 대한 견제 역할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갤럭시 S21 FE /사진=삼성전자 제공
갤럭시 S21 FE /사진=삼성전자 제공

갤럭시 S21 FE의 아쉬운 점은 역시 출시가 늦었다는 점입니다. 제품 자체는 지금 써도 크게 나무랄 데가 없어보이지만, 이르면 다음달 '갤럭시 S22' 시리즈가 출시되는 시점에 작년에 나왔어야 할 제품이 등장했으니 포지션이 애매해 보입니다. 특히나 신제품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시장에는 제품 출시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도 이런 속사정 때문으로 보입니다.

갤럭시 S22 시리즈는 퀄컴의 최신 칩셋인 4나노 기반의 '스냅드래곤8 1세대'와 AMD와의 협업으로 그래픽 성능을 보강한 삼성 '엑시노스 2200' 칩셋을 병행 사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칩셋이 한 세대 업그레이드 된 만큼 갤럭시 S21 FE와의 성능 차이는 어느 정도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향상된 인공지능(AI) 성능으로 카메라 성능도 갤럭시 S22가 한 수 위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갤럭시 S22 시리즈 가격은 전작과 동일한 일반형 799달러, 플러스 999달러, 울트라 1199달러 수준이 예상됩니다. 이럴 경우 일반형과 갤럭시 S21 FE의 가격 차는 100달러에 불과하게 됩니다. 갤럭시 S21 FE가 갤럭시 S22에 비해 화면 크기와 배터리 용량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한 세대 전 제품치고는 크게 매력적인 가격 차이는 아닌 듯 합니다.

최근 부품 공급난 여파로 갤럭시 S21 시리즈 가격이 인상될 것이란 예상도 나옵니다. 일각에선 일반형 849달러, 플러스 1049달러, 울트라 1299달러 수준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전작보다 가격을 낮춘 갤럭시 S21 FE의 가성비가 조금 더 돋보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예정된 자기잠식…'FE' 명맥 유지 위한 고육지책

삼성전자 입장에선 최근 가성비가 높은 중국 제조사 제품들과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 갤럭시 S22 시리즈 가격을 크게 높이기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해 갤럭시 S21은 전작보다 200달러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며 가성비를 어필한 바 있습니다. 결국 갤럭시 S21 FE와 갤럭시 S22 일반형의 포지션이 겹치며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잠식)'이 벌어지는 상황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둘 다 살리려면 삼성전자의 절묘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굳이 갤럭시 S21 FE 출시를 포기하지 않은 건 기껏 성공시킨 'FE 전략'을 포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관측됩니다. 지난해는 이례적인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FE 시리즈가 가진 장점은 유효하니까요. 이번 출시로 일단 FE 시리즈의 명맥을 유지하고 공급망 문제가 정상화되면 다시 정상 라인업으로 돌아가 폴더블폰과 함께 하반기를 책임질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공급망 위기와 더불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베트남 등 주요 생산기지 락다운이란 악재를 겪었습니다. 이런 여파로 주요 제품 라인업의 출시 시기와 생산 캐파를 맞추느라 부단히 애를 써야 했습니다. 덕분에 출산에 가장 애를 먹은 막내 갤럭시 S21 FE가 형들과 함께 다시 한 번 '효자' 노릇을 해 줄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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