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테크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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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7인치 '아이맥'을 샀다. 첫 맥(Mac)이었다. 학교 편집실에 새로 들어온 아이맥을 본 순간, 소유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것만 집에 있으면 영상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큰 화면으로 영화만 실컷 봤지만, 아이맥 27인치는 10년 넘게 여전히 멋지다.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일체감을 주는 은색의 알루미늄 바디는 육중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샤프하고 도도한 이미지를 풍긴다. 크기가 주는 카리스마는 새로 나온 24인치 아이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래서 많은 이들이 M1 칩이 탑재된 새 27인치 아이맥을 기다렸지만, 결국 M2 칩이 나올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애플이 내놓은 대안은 '맥 스튜디오'와 '스튜디오 디스플레이' 세트였다. 두 제품을 책상에 올려 놓고 써보니, 다시 영상 편집이 하고 싶어졌다. 아이맥 27인치가 다시 나오기 전까지, 이들이 답이다.


고수는 강하지만 조용하다

맥 스튜디오는 '맥 미니'와 '맥 프로' 중간에 위치한 데스크톱 PC다. M1 시리즈의 최상위 성능인 'M1 맥스'와 'M1 울트라' 칩을 달아 전문가용에 가까운 성능을 갖췄다. 하지만 본체는 한 손으로 쉽게 들 수 있도록 맥 미니에 가깝게 작게 설계됐다. 제품 박스에는 덜렁 전원 케이블 하나가 들어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의미다.

애플 '맥 스튜디오' /사진=테크M
애플 '맥 스튜디오' /사진=테크M

애플이 이 제품에 '스튜디오'란 이름을 붙인 건 전문가들이 작업하는 사진이나 영상 스튜디오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라는 의미가 있겠으나, 최근에는 1인 크리에이터나 준프로급 아마추어들도 집에 스튜디오 못지 않은 장비를 갖춰 놓는 경우가 많다. 맥 스튜디오는 일체형에 크기도 작아 공간을 절약해준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더 어울리는 제품이기도 하다.

맥 스튜디오 역시 M1 계열 칩셋의 강점인 저전력·저발열·저소음의 강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후면의 통풍구와 하단의 팬 설계를 보면 발열 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인 모습이지만, 막상 팬이 있긴 한건 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요하다. 일부러 8K 영상 편집도 시도해보고 벤치마크 프로그램도 돌려봤지만, 격렬한 팬 소음을 들어보기엔 글 쓰는 사람이 해볼 수 있는 작업들로는 부족했다.


비싸다고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

맥 스튜디오와 함께 선보인 스튜디오 디스플레이는 27인치 모니터인데, 나오자마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공격을 받았다. 기본 가격이 209만원에 빛 반사를 줄여주는 나노 테스처 글래스를 적용하면 40만원이,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스탠드를 선택하면 54만원이 추가돼 303만원이 된다. 같은 크기 LCD 모니터들에 비하면 2~3배 되는 가격이다.

그런대 막상 대안을 찾아보면 마땅치가 않다. 스튜디오 디스플레이와 같은 5K 해상도 모니터를 찾아보면 전 세대 제품인 LG 울트라 파인 모니터 밖에 딱히 보이지 않는다. 맥OS는 폰트 표시가 백터 방식이라 해상도가 높을수록 가독성이 높아진다. 애초에 HiDPI 방식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 세대 아이맥 27인치도 5K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다. 맥 스튜디오를 쓰면서 4K로 눈높이를 내리는 타협을 하고 싶지 않다면, 스튜디오 디스플레이를 택할 수밖에 없다. 위안이라면 그나마 649만9000원부터 시작하는 '프로 디스플레이 XDR'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점이다.

애플 '스튜디오 디스플레이' /사진=테크M

가격이란 선입견 없이 보면, 스튜디오 디스플레이의 화질은 나무랄데가 없다. OLED도, 미니 LED도 아닌 일반 LCD 디스플레이라 블랙 표현이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밝고 선명한 화면을 보여준다. 특히 정확한 색표현이 강점인데, 별도의 세팅 없이도 맥북 등 다른 애플 제품들과 동일한 색상의 화면을 뿌려주기 때문에 물려서 사용하기 편하다. 여러모로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기 위한 모니터가 아닌, 사진이나 영상 편집 작업을 위한 모니터라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백미는 디자인이다. 은색 알루미늄으로 이뤄진 고급스러운 마감은 맥 스튜디오 옆에 다른 모니터를 놓는 모습을 상상 하기 어렵게 만든다. 높이 조절 스탠드는 힘들이지 않고도 움직이며, 정확히 원하는 곳에 가서 멈춘다. 이 '손 맛'이 50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선뜻 얘기하긴 어렵지만, 언제든 내 눈높이에 맞춰 줄 모니터가 필요하다면 결국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맥 스튜디오와 스튜디오 디스플레이 두 제품은 일체형이 아니다. 각각 따로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써보니 서로 떼 놓을 수 없는 사이다. 떨어져 있지만, 함께 두면 마치 아이맥을 본체와 모니터로 분리해 놓은 듯 일체감이 느껴진다. 물론 맥 스튜디오에 다른 모니터를 연결해도 된다. 반대로 윈도 PC를 스튜디오 디스플레이에 연결해도 된다. 하지만 어느 쪽도 본연의 멋과 기능을 100% 발휘하기 어렵다.

/사진=테크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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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겐 시간이 돈이다. 고르느라 고민하고, 설치하느라 힘 쓰고, 세팅하느라 시간을 쓴다면 분명 손해다. 맥 스튜디오와 스튜디오 디스플레이는 분명 이런 시간을 줄여준다. 둘 만 있으면 성능부터 디자인까지 고민없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분명 찾아보면 비슷한 성능에 더 저렴한 제품들도 있겠지만, 프로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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