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3 /사진=애플 제공
아이폰13 /사진=애플 제공

 

올해 새로 나올 '아이폰14' 일반형 모델은 전작과 동일한 칩셋을 '재탕'한다는 루머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최근 애플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분석과 그만큼 경쟁사들과 성능 격차를 벌려놨기에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해석이 모두 가능한 상황이다.


아이폰 칩 성능 '제자리 걸음'?

4일 블룸버그는 애플이 올해 '아이폰14' 일반형 모델의 내부 칩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고 지난해 나온 '아이폰13'과 동일한 'A15 바이오닉' 칩셋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고급형인 '프로' 모델은 새로운 'A16 바이오닉' 칩셋 탑재가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아이폰 칩 성능 향상이 둔화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애플은 아이폰13에 탑재된 A15 칩을 소개하며 경쟁 칩보다 CPU는 최대 30%, GPU는 50% 빠르다고 소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는 데, 정작 전 세대와의 비교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실제로 A14 칩과 A15 칩은 성능 차이기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아이폰14 프로' 모델에 탑재될 A16 칩셋 역시 A15와 같은 5나노 공정이 적용될 것으로 알려져 극적인 성능 향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A 칩셋 시리즈가 이미 경쟁사들에 비해 1~2세대 앞선 성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느린 걸음이 잘 부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자체 5G 모뎀 칩 개발도 실패?

애플 아이폰 성능 향상이 더뎌지고 있다는 신호는 또 있다. 애플은 지난 2019년 5G 시대로 넘어오며 곤욕을 겪은 적이 있는 데, 바로 특허 분쟁 관계에 있던 퀄컴으로부터 5G 모뎀 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믿었던 인텔은 5G 모뎀 칩 개발이 지연됐고, 경쟁 관계에 있던 삼성전자 역시 수량 부족을 들어 제품을 내주지 않았다. 사면초가에 빠진 애플은 결국 퀄컴과 화해하며 간신히 5G 모뎀 칩을 받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애플은 인텔의 모뎀 칩 사업부를 인수하며 자체 개발에 나섰다.

허나 최근 업계에선 애플이 5G 모뎀칩 독자개발에 실패해 내년에도 퀄컴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애플 전문가인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애플의 아이폰 5G 모뎀 칩 자체 개발이 실패했을 수 있다"며 "퀄컴은 100% 공급 점유율로 내년 하반기에 출시될 아이폰 신작의 5G 칩 독점 공급자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년 동안 5G 모뎀 칩 시제품의 과열로 개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거먼 블룸버그 기자는 빨라야 2024년에야 아이폰에 애플이 개발한 자체 모뎀 칩이 탑재될 것으로 봤다.


'M' 시리즈 개발하느라 여력이 없다?

이렇게 아이폰의 혁신 속도가 늦어진 건 애플이 내부 리소스를 'M' 시리즈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까지 'M2 프로', 'M2 맥스', 'M2 울트라', 'M3' 등의 칩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년여 동안 M1을 시작으로 'M1 프로', 'M1 맥스', 'M1 울트라', 'M2'에 이르기까지 5종의 M 시리즈 칩을 내놓은 데 이어 생태계 확장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사진=애플 제공
/사진=애플 제공

애플이 이처럼 애플실리콘 생태계 확장에 공을 들이는 건 현재 이 칩이 탑재되는 맥이나 아이패드 외에도 다양한 신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애플이 아이폰을 이을 차세대 기기로 지목하고 있는 혼합현실(MR) 디바이스에도 M 시리즈 칩셋이 탑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M 시리즈와 같이 고성능 저전력 칩셋이 가상·증강(VR·AR)현실 기기를 대중화시킬 '열쇠'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렇게 개발 속도를 높이다보니 애플의 칩 개발 부서의 피로도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많은 엔지니어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게 블룸버그의 지적이다. 또 애플의 자체 칩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대만 TSMC 역시 애플이 기대하고 있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공급망 차질로 인해 칩 제조 가격과 물류 비용 등의 폭등이 애플을 '3중고'에 빠뜨리며 예전 같은 속도로 아이폰의 칩 성능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 제한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고민스러운 소비자

애플은 아이폰의 칩 성능이 아직까지 경쟁사와 뚜렷한 격차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아이폰 14 시리즈에서는 비용을 통제하면서 적절한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보전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올해 나올 '애플워치8' 역시 전작과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유지하며 3년 연속 '제자리 걸음'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소비자 입장에선 썩 유쾌하진 않은 상황이다. 아이폰의 칩 성능이 좋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작년과 같은 성능의 제품을 신제품이라고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구매해야 한다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다. 허나 안드로이드 진영의 경쟁사들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칩 성능으로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새 스마트폰 구매를 계획하고 있다면 꽤 고민스러운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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