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인 한가위를 앞두고 11호 태풍 '힌남노'가 우리나라 남쪽 지역을 강타하였다. 지난 2003년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됐었던 '매미'보다 강력했던 태풍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많은 비바람을 뿌리고 여기저기 상처를 남긴 뒤늦은 불청객이었다.
국내 대표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는 기후변화가 힌남노와 같은 강력한 태풍의 발생을 50%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IBS의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을 통해 이산화탄소 증가에 따른 열대저기압 변화를 분석한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현재 대비 2배 증가하면 3등급 이상의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확률이 50%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이 과학기술을 통해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재해나 사회문제에 대한 근거와 대응책을 구해볼 수 있다. 과학기술로 사회문제 해결하려는 시도의 하나로, 2000년대 초반 '리빙랩'(Living Lab)이라는 개념이 제안됐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실험실'인 리빙랩은 과학기술의 실사용자가 연구에 직접 참여해 수요자의 요구를 연구에 직접 반영 할 수 있는 연구 방법으로, 현재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용되는 연구 방법으로 꼽힌다.
기후변화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던 유럽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리빙랩을 운영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2006년부터 운영된 유럽리빙랩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s, EnoLL)를 중심으로 스마트시티 건설, 미래형 인터넷 환경 구축, 혁신 산업 생태계 조성, 기후변화 대응 등 다수의 리빙랩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로에너지건물의 효과적 설계를 위해 시민참여를 독려하는 리빙랩의 도입을 추진했던 사례가 있지만, 아직 기후변화와 관련된 리빙랩의 운영은 많지 않은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과학도시인 대전의 대덕특구는 26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과 IBS, KAIST를 비롯한 주요 과학기술 연구기관들이 집결한 장소이다. 동시에 약 2000여 개의 기업이 모여있는 첨단산업단지를 보유한 지역이기도 하다. 감히 리빙랩을 운영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역인 것이다.
이런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기후변화를 준비할 수 있는 리빙랩 기반의 '그린테크허브'를 조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을지 상상해본다. 대덕특구라는 허브를 통해 산학연의 그린테크들이 융합되고, 여기에 그린테크를 사용하는 시민과 기업이 함께 연구에 참여해 수월성 높은 그린테크가 개발되는 것이다. 이는 대전에서 추진 중인 '대덕연구개발특구 재창조 종합계획'의 세부 전략의 하나인 '탄소중립 스마트 실험도시화' 구축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대덕 리빙랩 연구단지에서 개발된 그린테크를 기반으로 융복합 R&D와 관련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국제협력으로 발전되는 선순환을 이뤄낼 수 있다면 유럽의 어떤 도시도 부럽지 않은 '글로벌 그린테크허브'로서 대덕연구단지, 그리고 대전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10월, 대전에서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가 열린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는 인간과 환경, 거버넌스를 과학과 연계시키는 글로벌 장이 마련된다고 한다. 그린테크허브로 거듭나기 위한 대전 그리고 대덕연구단지의 전략과 국제적 담론을 형성할 좋은 기회이다. 이 자리에서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한, 탁월한 기후대응 실천 과제들이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Who is...> 김철후 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원
김철후 선임연구원은 공학박사로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개발 기획과 전략 수립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KAIST 기계공학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를 거쳐 현재 한국기계연구원 기계기술정책센터에서 기후변화 대응 기계분야 R&D 전략 수립 및 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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