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PICO)의 가상현실(VR) 헤드셋 '피코 4' /사진=테크M
피코(PICO)의 가상현실(VR) 헤드셋 '피코 4' /사진=테크M

 

코로나19 팬데믹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직장에 가지 않아도 일을 하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공부를 하게 된 경험들로 인해 '가상'은 더 이상 '거짓'을 의미하지 않게 됐다. 이제 그 곳은 또 하나의 현실, '메타버스'라 불리기 시작했다.

빅테크들은 서둘러 신세계를 선점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사람들이 꿈꾸던 메타버스 세상은 생각보다 멀리 있음을 깨닫고 있다. 메타버스 신대륙으로 가장 서둘러 떠난 메타는 최근 새로운 VR 기기 '메타 퀘스트 프로'를 선보였으나, 1500달러(약 215만원)라는 가격은 이 길이 얼마나 험난할 지 보여주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이름이 조금 버겁다면, 좀 더 가볍게 VR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틱톡'으로 유명한 바이트댄스의 자회사인 VR 전문기업 피코(PICO)는 최근 한국에 VR 헤드셋 신제품인 '피코 4'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무게도, 가격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눈앞에 있는 VR 세상을 먼저 두드려보고 싶다면, 피코 4는 부담없이 즐기기에 충분한 제품이다.


거추장스러운 헤드셋, 좀 더 편안하게 즐겨라

VR 헤드셋을 체험할 때 가장 난감한 건 아직도 거추장스럽다는 것이다. 누적 판매량 1000만대를 넘어서며 VR 대중화의 신호탄을 쏜 '메타 퀘스트2'부터 집에서도 꽤 쓸만해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헤드셋을 뒤집어 쓴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다.

피코(PICO)의 가상현실(VR) 헤드셋 '피코4' /사진=테크M
피코(PICO)의 가상현실(VR) 헤드셋 '피코4' /사진=테크M

피코 4 역시 큰 틀에서 뒤집어 써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가볍고 편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제품 무게는 본체만 295g, 끈까지 포함하면 555g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아주 가벼운 건 아닌데, 인체공학적 설계로 보다 편하게 착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고무줄로 당기는 방식이 아니라 단단한 측면 스트랩을 휠을 돌려 조정하는 식이라 식이라 안정감이 있고, 배터리를 후면에 배치해 무게 균형도 잘 맞았다. 억지로 당겨서 고정한 게 아니라 모자처럼 머리에 썼다는 느낌이라 상대적으로 편하다.

피코4는 시야각을 유지하면서 초점 거리를 줄일 수 있는 팬케이크 렌즈를 채택해 케이스의 가장 얇은 부분을 35.8㎜까지 줄였다. 얼굴이 닿는 쿠션 라이닝에는 슈퍼스킨 원단을 사용해 시원하고 건조한 상태를 유지한다. 헤드셋 후면에는 미끄럼을 방지하는 가죽 마감으로 뒤통수를 편안하게 잡아준다. 세세한 부분까지 꽤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하지만 얼굴이 큰 나머지 가로 폭이 좀 답답했고, 코도 낮은 바람에 시야가 완전히 막히지 않아 몰입을 방해한 점이 아쉬웠다.

'피코4'의 후면 휠 /사진=테크M
'피코4'의 후면 휠 /사진=테크M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주변 환경을 컬러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제품에는 헤드셋 프레임 주위에 4개의 카메라가 달려있고, 중심에 컬러를 연출하는 1600만 화소 RGB 카메라가 위치한다. 차기 제품에서 좀 더 성능이 개선된다면 혼합현실(XR) 기기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방구석에서 만나는 나만의 콘텐츠 전용 공간

피코4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XR2'를 탑재해 별도 케이블 연결 없이도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최대 4K+(4320x2160) 해상도를 지원하며, 1200ppi 수준의 선명도를 자랑한다. 설정 메뉴 중 '실험실'에서 90Hz 주사율을 설정하면 한 결 나은 콘텐츠 경험을 할 수 있다.

'피코4' 렌즈 /사진=테크M
'피코4' 렌즈 /사진=테크M

VR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콘텐츠 중 하나인 게임은 아직 완성도 면에서 기존 PC나 콘솔 게임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기대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한강 다리 밑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하거나, 눈앞에 있는 좀비에게 총질을 하는 기분은 기존 게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쾌감이 있다. 나의 행동이 게임 속에서 그대로 전달된다는 점만으로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몸을 움직이니 저절로 운동이 된다는 장점도 있다. 6축 센서 기반의 적외선 컨트롤러는 어색함 없이 움직임을 전달했고, 진동 기능도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VR 게임은 게속 진화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어지러움이다. 아직 VR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몸 탓에 어느 순간 심한 멀미가 나서 오랜 시간 플레이는 불가능했다. 이건 지금까지 써 본 모든 VR 기기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현상으로, 개인차가 있다고 한다. 부디 멀미 없는 VR 기기가 빨리 나와주길 기대한다.

'피코4' 컨트롤러 /사진=테크M
'피코4' 컨트롤러 /사진=테크M

다행히 피코 4는 동영상 시청용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굳이 VR 전용 영상이 아니더라도 기존 유튜브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를 보는 용도로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4K 해상도 영상을 볼 때 선명한 4K 화질이 빛을 발했다. 공간 트래킹을 지원하는 오디오 품질도 꽤 훌륭하다. 마치 암실에 초대형 TV를 가져다 놓고 영상을 보는 기분이라 나만의 공간 하나를 갖게 된 느낌이 들었다.


VR 콘텐츠, 부담없이 즐겨라

아직 메타버스라는 이름은 아직 좀 부담스럽지만, VR은 분명히 계속 발전하고 있다. 피코 4는 현 시대의 VR 콘텐츠를 가장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제품이다. 시중 제품 중에는 플래그십에 해당하는 사양에 무게도, 가격도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제품 가격은 47만9000원(128GB 모델 기준)으로 경쟁 제품들에 비해 합리적인 수준이다.

'피코4' 지원 게임 /사진=피코 제공
'피코4' 지원 게임 /사진=피코 제공

콘텐츠도 지속 보강한다고 하니 구매하면 당분간 심심하진 않을 전망이다. 피코 측은 현재 180개 이상의 게임을 스토어를 통해 제공하고 있으며, 크레이지 월드, 워킹 데드, 피키 블라인더스, 올인원 스포츠, 저스트댄스 등 게임 타이틀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동영상 콘텐츠에서도 '스파이더맨' 같은 소니픽쳐스 영화를 3D로 감상할 수 있고, 디스커버리로부터 다큐멘터리도 공급받는다. 집에서 가볍게 VR 콘텐츠를 즐겨보고 싶다면 피코4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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