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테크M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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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설립됐다. 1953년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국제연합(UN) 총회에서 핵물질 저장과 보호, 평화적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 창설을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가 사용된 후 지속적 위협을 느낀 국제사회가 선택한 일이었다.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국제 기류 또한 이와 유사하게 변화하고 있다. 챗GPT 등장 이후 긍정론과 부정론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AI 돌풍'을 국제적 규제로 잠재워야 한다는 분석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IAEA와 같은 국제 중립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AI에 위협 느끼는 인류

AI가 불러올 미래는 그간 각종 영화를 통해 머릿속에 남아있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류와 AI로봇이 공존하는 밝은 면을,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는 부정적이다 못해 절망적인 미래를 그려냈다. 사람들은 이를 그저 흥미로운 스토리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 생성형 AI에 대한 기술 개발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기능 또한 고도화를 거듭하자 인류 사회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 AI가 일자리를 뺏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중인 것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할리우드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작가들로 구성된 미국작가조합은 총파업을 선언하고 행동에 나섰다. 소속 작가 1만500여명이 파업을 시작함에 따라 TV 토크쇼 및 드라마 등은 과거 방송분을 재방영하기로 했다.

이들이 파업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제작사들이 시나리오나 각본 작업에 AI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조합 측은 "제작사들이 AI를 활용해 기존에 작가들이 작업한 시나리오 및 각본에서 새로운 스크립트를 생성하거나, AI가 만든 대본 초안을 작가들에게 손보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 중이다. 이를 두고 콘텐츠 업계에서는 AI가 불러올 일자리 위협이 현실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 넷플릭스가 유튜브에 공개한 '개와 소년' 단편 애니메이션 엔딩 크레딧에 AI가 배경 디자이너로 포함된 모습/사진=일본 넷플릭스 캡처
일본 넷플릭스가 유튜브에 공개한 '개와 소년' 단편 애니메이션 엔딩 크레딧에 AI가 배경 디자이너로 포함된 모습/사진=일본 넷플릭스 캡처

실제로 올해 초 일본 넷플릭스가 공개한 '개와 소년' 애니메이션 예고편은 배경화면을 모두 AI로 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딩 크레딧에 'AI'가 배경 디자이너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 유튜버는 AI를 활용해 쓴 글로 시간당 462달러를 버는 프리랜서 작가가 됐다. 콘텐츠 회사에서 연락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는 AI 탐지시스템도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결과를 내놨다고 해당 유튜버는 설명했다.

세계경제포럼(WEF) 또한 AI로 인해 인류가 영위할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지난 1일(현지시간) WEF가 발표한 '미래 직업 보고서 2023'에 따르면 오는 2027년까지 일자리 8300만개가 사라지고, 6900만개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일자리 1400만개가 사라지는 셈이다.

보고서는 감소폭이 클 직군으로 은행원과 티켓 판매원, 데이터 입력 사무원 등 기록 관리 및 행정직을 꼽았다. 향후 5년간 일자리 2600만개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데이터 입력 사무직은 800만개, 은행 창구직원 및 관련 사무직도 10년 이내 약 40%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WEF는 내다봤다.

반면 고용이 늘어날 직군으로는 AI 기술을 구현하고 관리할 개발자 및 과학자, 데이터 분석가 등이 꼽혔다. 또 머신러닝(ML) 및 사이버 보안 전문가 또한 30% 늘어날 직군으로 지목됐다. 이는 조사 대상인 803개 기업 중 75% 이상이 '향후 5년 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을 채택할 계획'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규제 vs. 지속 대립 '팽팽'

현재 국제 사회에는 AI에 대한 견해 차가 존재한다. 향후 커질 위험성에 대비해 적절한 국제 규제를 만들고,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측과 기술 개발을 중단하면 안된다는 쪽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GUI) 이후 가장 중요한 기술 발전"이라는 평을,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는 "AI의 아이폰 시대가 시작됐다. 생성형 AI가 모든 산업을 재창조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을 내비친 바 있다. PC 시대를 이끌었던 GUI 적용, 모바일 혁신을 이끌었던 '아이폰'처럼 새로운 혁신을 불러올 기술이라는 분석이다.

샘 알트만 오픈AI CEO 또한 "범용 인공지능(AGI) 장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회가 영원히 개발을 중단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을 반대 이유로 꼽는 시각도 존재한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6개월만이라도 AI개발을 멈추자는 주장에 대해 "그렇게 하면 중국만 이득을 본다"고 꼬집기도 했다.

반면, 초거대 AI 개발 속도조절론을 펼치는 측은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서게 되면 AGI를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게 되고,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판단 중이다. AGI는 사람이 가진 추론, 프로스세스 등 모든 지적 능력을 대체할 정도의 지능을 보유한 단계다. 즉, 사람이 관리, 감독하지 않아도 스스로 작업을 수행하고 결론을 도출한다.

즉, '수학 가속법칙'으로 인해 학습에 가속도가 붙고, 이를 거듭하다 특정 시점이 지나면 인간이 AI가 보유한 지능을 따라갈 수 없는 '초월적 AI'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글로벌 구루들은 이같은 시대가 도래할 경우 로봇이 하나의 '종'으로 자리잡으며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픽=디디다컴퍼니
/그래픽=디디다컴퍼니

실제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 설립자, 스튜어트 러셀 UC버클리대 교수 등 IT 전문가 및 업계 전현직 직원 1000여명은 글로벌 비영리 싱크탱크 '미래생명연구소(FLI)'가 발표한 '초거대 AI 실험 일시중지:공개서한'에 이름을 올리며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AI 대부'로 불리며 50년 이상 AI를 연구한 딥러닝 창시자 제프리 힌턴 박사도 최근 위험성을 알린다는 이유로 구글에 사표를 던졌다. 특히 그는 국제적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힌턴 박사는 "AI 악용 시도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핵무기와 달리 AI는 비밀리에 연구하면 밖에서 알아낼 방법이 없어 전세계 학자들이 협력해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 스튜어트 러셀 UC버클리대 교수, 게리 마커스 뉴욕대 교수 등도 속도 조절론에 힘을 싣고 있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강력한 기술적 도구가 나왔을 때 안전을 점검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고, 스튜어트 러셀 교수는 "강력한 기술이 책임감 있고 안전한 방식으로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리 마커스 교수는 "2차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IAEA를 만들었듯, AI 개발을 감시할 수 있는 글로벌 중립 비영리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I 규제 구체화하는 유럽...한국은?

AI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가장 빠르게 추진 중인 곳은 유럽이다. 지난 2021년부터 '인공지능법(AI Act)' 제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달 17일(현지시간) 브란도 베니페이, 드라고스 투도라케 등 유럽의회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AGI 규칙 수립을 위한 'AI법' 제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유럽연합(EU)은 이 법안에 'AI 기업이 훈련에 활용한 데이터 출처와 저작권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AI 규범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규제보다는 산업 진흥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다. 앞서 정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을 위해 AI 규제개선 및 제도 정립을 꼽았다. 'AI법제정비단' 운영을 통해 초거대 AI 관련 정책 방향을 도출하고, 기존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초거대 AI 서비스에서 발생가능한 위험요인과 성능을 공신력 있는 제3기관을 통해 평가하고, 비윤리 및 유해성 표현과 사실 왜곡 등을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셋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 또한 규제에 초점을 맞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AI업계 관계자는 "AI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규제를 먼저 적용하면 경쟁력을 저해시킬 수 있고, 규제 또한 효과가 없을 수 있다"며 "기술 발전에 따라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본틀을 잡아줄 수 있는 일반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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