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S24 울트라 /사진=테크M
갤럭시 S24 울트라 /사진=테크M

삼성 '갤럭시 S24' 시리즈가 '세계 최초 인공지능(AI) 폰' 타이틀을 달고 나왔을 때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세계 최초'가 붙은 제품은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써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아직 미숙해도 양해 좀 해달라'는 속내를 품기도 한다. 세계 최초 5G 스마트폰을 떠올려보라. 현재도 5G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데, 당시 사용자에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물론 5G 기술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세계 최초라는 마케팅 용어의 허상을 얘기하고자 함이다.

다행히 갤럭시 S24 울트라를 써보니 '세계 최초 AI폰'은 단순한 마케팅용 문구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갤럭시 스마트폰이 나아가야 할 진지한 고민과 방향성이 담겨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을 제품 안에 구현해냈다. 당장 완벽하진 않더라도, 이제 막 시작된 AI 혁신을 현재 수준에서 이만큼 잘 녹여낸 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주고 싶다. 갤럭시가 열어 놓은 AI폰의 미래가 기대되는 만큼, 이번만큼은 세계 최초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갤럭시와 아이폰, 무엇을 차별화할 것인가

국내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쓰고 싶다면, 갤럭시냐, 아이폰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만 찾으면 된다. 갤럭시와 아이폰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운영체제(OS)다. 갤럭시는 구글 '안드로이드' OS 기반에 삼성 독자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인 '원(One) UI'를 입혀 작동한다. 아이폰은 애플 독자 OS인 'iOS'를 사용한다. 서로 호환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생태계에 속한 제품을 쓸 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갤럭시 S24 울트라(왼쪽)와 아이폰 15 프로 맥스 /사진=테크M
갤럭시 S24 울트라(왼쪽)와 아이폰 15 프로 맥스 /사진=테크M

처음 아이폰에서 갤럭시로 갈아탈 때 가장 큰 걸림돌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였다. 들쑥날쑥한 레이아웃, 과장되고 촌스러운 색표현, 부족한 애니메이션, 복잡한 인터페이스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안드로이드는 범용 OS이기 때문에 아이폰만을 위해 만들어진 iOS에 비해 최적화 측면에서 늘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신 '안드로이드 14'과 '원 UI 6.1'를 탑재한 '갤럭시 S24 울트라'를 써보니 이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UI/UX 디자인은 확실히 진일보했고 오히려 알림 체계나 커스터마이징, 확장성 등 여러 측면에서 iOS보다 나은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매끄럽고 안정적이다. 이제 내 눈에 갤럭시와 아이폰은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무엇이 이 둘을 차별화할 것인가.


갤럭시의 해법은 'AI폰'

안드로이드로 연결된 삼성과 구글의 끈끈한 협업은 올해 iOS와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는데, 바로 AI 기능이다. 사실 스마트폰에 AI가 적용된 건 새로운 일은 아니다. AI 비서 '시리'가 스마트폰에 들어온 건 10년도 넘었고, 하드웨어 측면에서 신경망처리장치(NPU)가 처음 도입된 것도 지난 2017년이다. 이미 AI는 스마트폰에서 사용자 얼굴과 목소리를 인식하고 사진을 보정하고 있었다.

갤럭시 S24 울트라 /사진=테크M
갤럭시 S24 울트라 /사진=테크M

그간 있는 듯 없는 듯 스마트폰 내에 존재하던 AI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 건 '생성형 AI' 때문이다. 사용자 질문에 진짜 사람 같은 답변(심지어 거짓말까지도)을 생성하는 '챗GPT'는 AI 분야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삼성은 재빨리 생성형 AI 기술을 넣어 올해 갤럭시 S24 시리즈에 'AI폰'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갤럭시 AI'의 특징은 외부 네트워크 연결 없이 '온디바이스 AI'로 작동 가능하다는 점, 구글 '제미나이',  삼성 '가우스' 등 다양한 거대언어모델(LLM)을 유연하게 활용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빠른 실행과 사생활 보호에 강점이 있고, 유연한 AI 모델 적용은 구글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AI 분야 최고 기업들과 긴밀한 협업 관계인 삼성의 강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요소다.


스마트폰 전반에 파고든 '갤럭시 AI'

이번 갤럭시 S24 시리즈는 사실상 구글과 삼성의 합작품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협업이 이뤄졌다. 구글은 AI 모델을 개발해 안드로이드에 녹여냈고, 삼성은 실제 사용자와 기술이 만나는 하드웨어(스마트폰)이란 접점에서 AI 기능들이 잘 전달될 수 있을 지 엔지니어 관점에서 많은 고민을 한 듯하다.

갤럭시 S24 울트라에서 '서클 투 서치'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 /사진=테크M
갤럭시 S24 울트라에서 '서클 투 서치'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 /사진=테크M

그 결과물 중 하나로 '서클 투 서치'라는 기능이 처음 선을 보였는데, 화면에 원을 그리면 그 안에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가 곧바도 뜨는 방식이다. 화면을 캡쳐하고, 적당한 검색어를 고민하고, 구글이나 네이버에 들어가 검색할 필요없이, 화면에 원만 그리면 곧바로 화면에 띄워준다. 그리고 다시 앱 간을 이동할 필요없이 이전에 보던 화면으로 곧바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가 알던 검색 과정을 뒤집는 일대 혁신이다. 특히 갤럭시 S24 울트라에 내장된 'S펜'을 사용하면 더 정확하고 우아하게 원을 그릴 수 있다.

갤럭시 AI는 좀 더 스마트폰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는데, 바로 휴대전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통화'에 AI를 접목한 일이다. 실시간 통역 기능은 별도 앱을 다운로드 받거나 실행할 필요없이 전화를 거는 기본 기능에 자연스럽게 통합돼있다. 문자 번역, 사진 편집, 웹사이트 요약, 메모 정리 같은 기능도 전에 없던 기술이 아니지만, 기본 앱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전반적인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킨다.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별 세 개' 로고만 누르면 된다.


'스마트폰'과 'AI폰'은 무엇이 다른가

다른 스마트폰에도 '챗GPT'나 '코파일럿' 같은 생성형 AI 앱이 존재한다. 그럼 갤럭시 AI는 뭐가 다른가. 갤럭시 S24 울트라를 쓰면서 좋았던 점은 기존에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거쳐야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크게 단축시켰다는 점이다. 외신을 번역하기 위해 내용을 드레그하고, 번역 엡을 실행하고, 내용을 붙여넣어야 했던 과정들이 사라지고 '삼성 인터넷' 아래 별 세 개 로고만 누르면 곧바로 번역된 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 심지어 한글로 요약도 해준다. 번역 품질은 생성형 AI 특성상 계속해서 정확해질 것이다. 실시간 통역이나 사진 편집 기능도 마찬가지다. 당장 이런 개별 기능의 성능보다도 스마트폰에서 더 쉽고 편하게 AI를 쓸 수 있게 만들겠다는 방향성에 크게 공감했다.

갤럭시 S24 울트라 문자 앱에 뜬 AI 버튼 /사진=테크M
갤럭시 S24 울트라 문자 앱에 뜬 AI 버튼 /사진=테크M

생성형 AI는 놀라운 기술이지만, 이걸 가지고 내 삶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지는 명확치 않았다. 사용자는 파라미터 크기나 프롬프트를 몰라도 AI가 내 업무와 일상을 혁신해 주길 바란다. 갤럭시 AI는 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와 이런 요구들을 충족해준다. 갤럭시 AI가 카카오톡 대화를 번역한 화면을 캡쳐해 보내주니 지인이 깜짝 놀란다. 우리가 매일 쓰던 그 카톡, 그 대화 내용 밑에 곧바로 번역이 뜬다. 지인은 스마트폰에 아무런 관심이 없지만, 영어 공부에는 늘 열정적이다. 번역이 자연스럽다며 자기도 매일 설정해놓고 보고 싶다 한다. 어떻게 한 거냐고 묻길래 영어에 자신없던 나도 손쉽게 "All you need is a Galaxy smartphone"이라고 답장했다.

운이 좋은 건 갤럭시 S24가 방향을 잘 잡은 덕에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최고 성능의 하드웨어에서 이런 AI 기능들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갤럭시 S24 울트라는 AI 기능을 제외하더라도 현존하는 스마트폰 중 최상급 성능을 갖췄다. 모서리 끝까지 네모 반듯한 저반사 디스플레이는 어느 상황에서나 밝고 선명한 화질을 보여주며, 10배, 100배 줌에서 빛을 발하는 망원 카메라는 경쟁 제품에선 경험하기 힘든 성능이다. 티타늄으로 감싼 몸체는 신뢰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췄고, 마감과 디자인 모두 프리미엄 스마트폰이란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과 로고가 없을 뿐이지 직전에 쓰던 '아이폰 15 프로맥스'와 비교해 부족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AI폰의 미래

재밌는 비유가 있다. 갤럭시는 머리 좋은 공대생, 아이폰은 감각 좋은 미대생 같다는. 갤럭시는 엔지니어가 만들고 아이폰은 디자이너가 만든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 몇 년 삼성의 간판 플래그십 갤럭시 S 시리즈는 성능 논란, 발열 논란 등에 시달리며 아이폰에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갤럭시는 스펙, 아이폰은 감성이란 균형이 깨치고, 성능과 디자인을 다 챙긴 아이폰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들은 체면이 서지 않았다. 삼성은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자신들이 잘 하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갤럭시 S23 시리즈는 철저히 '기본'으로 돌아가 성능 재정비를 마쳤다. 갤럭시 S24 시리즈는 다시 앞서가기 위한 제품이다.

갤럭시 스마트폰 사업을 이끄는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은 갤럭시 S24 언팩에서 "엔지니어로서 내 역할은 오늘날 가능한 것들에 도전해 내일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전달하는 것"이라며 "오늘은 그 미션을 시작하는 자리"라고 선언했다. 그는 엔지니어답게 가장 빠르게, 가장 실용적인 형태의 AI폰을 선보였다. 하반기에는 폴더블폰이 AI폰으로 진화한다. 삼성의 엔지니어 본능이 꿈틀대자 그동안 AI에 소극적이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연내 AI 전략에 대한 세부사항을 공표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이 어떤 혁신을 들고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삼성이 AI란 헤게모니를 먼저 쥔 모습이다.

만약 갤럭시 S24가 '삼성 GPT' 같은 챗봇 하나 넣은 스마트폰이라면 굉장히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넘어 AI폰으로 어떻게 진화할 지 엔지니어들이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들을 통해 갤럭시의 미래가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갤럭시 S24 울트라는 삼성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갤럭시가 어떤 스마트폰인지 제대로 보여준 제품이다.

/사진=테크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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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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