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테크노밸리가 연일 들썩이고 있다. 중국 텐센트의 인수 후보군으로 연일 국내 주요 테크 기업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들은 딜과 관련된 풍문에 손사레를 치면서도, 내심 중국 자본을 '자본' 그 자체로 볼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한다. 여전히 중국은 우리 기업들의 최대 수출 지역이지만, 과도한 '반중 정서' 탓에 딜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이는 결국 새 정부의 보폭을 줄이고, 국내 기업들의 외연 확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최근 불거진 중국 최대 테크기업 텐센트 발 인수합병(M&A) 이슈는 국내 대표 게임사 넥슨에서 비롯됐다. 중국 매체 시나파이낸스는 "텐센트가 게임 회사 넥슨을 150억달러(약 20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미국 블룸버그통신도 맞장구를 치며 국내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만 텐센트는 즉시 "사실무근"이라며 이례적으로 빠르게 입장을 내놨다. 이미 넥슨을 비롯, 한국 게임업계 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텐센트 입장에선 그만한 거액을 투입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넥슨과 크래프톤, 시프트업 등 국내 주요 게임사 모두 텐센트와의 공생으로 연간 매출의 상당수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같은 풍문에 외신들 일제히 달려든 이유는 따로 있다. 업계에선 우리 정부가 넥슨 지주사 NXC의 지분 매각을 희망하던 와중, 텐센트에 인수 의향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우리 정부는 넥슨 창업주인 故 김정주 회장의 부인 유정현 씨와 그들의 자녀가 상속세 명목으로 낸 NXC 지분 30% 가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너무 큰 덩치 탓에 국내 매수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넥슨 그룹을 실효 지배할 지분까지 더할 경우 정부의 NXC 보유 지분 뿐 아니라 실질적 지분 확보가 필요, 결국 인수 기업 입장에선 적잖은 자금이 필요한 탓이다. 시장에선 최대 20조원에 달하는 거액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에 국내에선 후보자를 찾지 못했고 작년 말에는 정부가 지분 매각 주관사로 IBK투자증권을 선정, 해외 인수처를 찾아나선 상태다.
이같은 배경 탓에 텐센트가 유력 후보군으로 떠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만한 덩치를 지닌 테크 기업 중 텐센트는 늘 첫손에 꼽힌다. 국제 정세가 빠르게 바뀐 부분도 있다. 앞서 지난 2017년 3월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후 중국 정부의 '한한령'이 본격화되며 텐센트와 넷이즈 등 중국 대형사들은 한국 게임에 대한 적극적 수입을 포기했다. 하지만 중국의 내수 침체와 중국 게임사들이 늘어난 인건비 등으로 콘텐츠 소싱에 애를 먹으며 한국 콘텐츠의 수입 필요성이 커진 상태다. 중국 당국 입장에서도 자국 빅테크의 침몰을 두고 볼 수 없으니, 텐센트의 해외 활동을 적극 밀어주고 있다.
실제 텐센트는 최근 한국 게임사 지분 투자나 판권확보(퍼블리싱)에 그 어느 때보다 공을 들이고 있다. 게임한류가 규모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해외시장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한국게임에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게임 뿐 아니라 알리바바로부터 최근 투자를 받은 에이블리, 텐센트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이한 SM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 그룹주 등도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들 모두, 중국 기업의 자금을 받았다는 점에서 연일 부정 이슈로 속앓이 중이다. "중국 기업에 회사를 내다 팔았다"며 고객 정보를 송두리째 넘겨줬다는 프레임으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중국 자본 그 자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오랜 시간 이어져온 탓이다. 이는 결국 국내 기업들이 제 몸값을 유지하고, 해외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상실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한국 테크 산업, 그 중에서도 콘텐츠 기반의 판교 테크노밸리 기업들은 내수 침체와 시장 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대한 자본과 시장을 갖추고 있지만, 모멘텀이 부족한 중국 테크 기업에게 한국산 콘텐츠는 적잖은 힘이 되고 있다. 게임시장 부진에도 여전히 대륙을 휘감고 있는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부터, 넥슨과 시프트업의 핵심 IP는 중국인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중국은 K-팝의 급성장 시장 중 하나였다. 중국이 약 10년간 지속된 K-팝 금지령을 해제한 상황에서, 지나친 반중 프레임은 우리 기업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중국 기업과 엮기면 항상 겪게 될, IP 분쟁과 개인정보 보호 이슈는 눈을 치켜 뜨고 지켜봐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대응할 덩치를 우리 또한 갖춘 상태다. 분명한 것은 한국 디지털 산업은 현재 돌파구가 필요한 국면이다. 명분보다 실용을 띄운 이재명 정부에서 기업들의 빠른 움직임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다. 중국 자본과의 결합을 실용의 시각으로 바라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