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라클 제공
/사진=오라클 제공

9월 들어 미 증시는 불확실성이 가득했다. 8월 비농업 부문 일자리 증가가 2만2000개로 시장 예상치 7만5000개를 크게 밑돌았고,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보다 2만7000건 늘어난 26만3000건으로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 우려와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그간 증시를 이끌어온 AI에 대한 전망 역시 불투명해 보였다. 반복되는 AI 거품론 속에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AI에 흥분한 단계에 있다"며 불안감을 키웠다.

하지만 한 기업의 실적이 분위기를 한 순간에 바꿔놨다. 바로 오라클이다. 오라클은 '잔여 이행 의무(RPO)'가 4550억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359%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계약된 매출 중 아직 이행되지 않은 부분이 약 630조원에 달한다는 소식이었다. 오라클 주가는 하루만에 약 36% 폭등하며 시장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픈AI가 향후 5년간 오라클로부터 컴퓨팅 파워를 3000억달러(약 416조원)에 구매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클라우드 계약이다. 앞서 오라클과 오픈AI, 소프트뱅크는 향후 4년간 500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오라클의 깜짝 발표는 AI 수요에 따른 데이터센터 부족 이슈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오라클 경영진은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 증가에 힘입어 RPO가 2026년 2분기까지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AI 투자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AI 반도체, 전력 설비 등의 섹터까지 들썩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시장을 움직인 오라클의 강점은

오라클은 미 클라우드 분야의 후발주자로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구글 클라우드에 이어 4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OCI)는 경쟁사에 비해 싸고, 안정적이며, 유연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퍼블릭 클라우드는 물론, 프라이빗 클라우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등 원하는 모든 유형의 인프라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고, 고객 인스턴스를 완전히 분리하는 오프박스 가상화 기술 등을 통해 안정적인 보안과 성능을 제공한다.

크리스 첼리아 오라클 일본·아시아 태평양 지역 기술 및 고객 전략 부문 수석 부사장이 '오라클 클라우드 서밋 2025' 기자간담회에서 오라클 클라우드의 경쟁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오라클 제공
크리스 첼리아 오라클 일본·아시아 태평양 지역 기술 및 고객 전략 부문 수석 부사장이 '오라클 클라우드 서밋 2025' 기자간담회에서 오라클 클라우드의 경쟁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오라클 제공

특히 오라클은 여러 업체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멀티클라우드 역량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현재 AWS,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 경쟁사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내에서도 OCI 멀티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선발 주자들의 틈새에서 시장에 안착한 오라클은 생성형 AI 붐을 기회로 포착했다. 오라클은 13만 개 이상의 GPU로 구성된 AI 슈퍼클러스터를 구축해 세계에서 가장 큰 AI 모델을 훈련할 수 있는 독보적인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거대언어모델(LLM)을 플랫폼 형태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안정성이 보장된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와 생성형 AI 기술을 통합해 기업들이 자사 데이터를 활용해 AI를 안전하게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오라클이 보여준 가능성과 이면의 리스크

향후 기업들이 AI 에이전트를 실질적인 업무 활용하는 단계에 돌입할 경우 오라클이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미 수많은 엔터프라이즈 기업들이 데이터를 오라클 DB에 축적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AI 애플리케이션 구축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전망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라클은 이번 실적 발표에서 데이터센터 확충 및 GPU 확보 등을 이유로 2026 회계연도 CAPEX 가이던스를 기존 250억달러에서 35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불과 2년 전보다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공격적인 투자가 지속되면서 단기적으로 현금 흐름이 악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잉여현금흐름(FCF)이 마이너스로 전환됐으며, 분석가들은 향후 2년 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오픈AI /사진=디디다컴퍼니
오픈AI /사진=디디다컴퍼니

AI 수요가 흔들릴 경우 클라우드 사업에 대한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오픈AI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특정 고객에 편중된 성장이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오픈AI의 올해 매출은 120억달러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매년 상당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단기적으론 주가 급등으로 인한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진 점도 투자자들에겐 불안 요소다. 11일 기준 오라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71.25배에 달하고 있으며, 12개월 선행 PER 역시 45배 이상으로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이다. 상당 부분 AI와 클라우드 사업 성장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반영하며 단기 급등한 만큼, 차익 실현 매물 등으로 인한 조정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일부 분석가들은 "FOMO(투자 소외 공포)에 빠지지 말라"는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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