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룡 노리는 중국과 인도

[테크M=김조한 곰앤컴퍼니 이사] 미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넷플릭스를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올해 2분기 기준 서비스 구독자 수가 세계적으로 1억 3000만 명이 넘은 회사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시작으로 올해 유재석과 이광수가 출연한 예능 ‘범인은 바로 너’, 김은숙 작가와 이병헌, 김태리 주연의 ‘미스터 션샤인’까지 한국에서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투자하고 있다.
넷플릭스 월정액형 비디오 서비스를 SVOD(Subscription Video On Demand)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6년 중국과 북한, 시리아, 크림반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이 서비스를 시작한 뒤 세계 방송사와 영화사, 동영상 플랫폼과 관련된 미디어 회사들이 가장 벤치마킹하는 회사가 됐다.
언론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기사가 넷플릭스와 자신들을 비교하는 내용이다. 방송사와 통신사, 영화사가 모두 넷플릭스를 견제하거나 따라잡겠다고 이야기한다.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글로벌로 가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모두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하고 추천 시스템을 고도화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구독자 기반으로 사업한다고도 한다. 이미 넷플릭스는 미디어 회사들이 모두 닮고 싶고 따라하는 ‘워너비’가 되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에 뺏긴 광고 기반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흔히 볼 수 있는 방송과 영화 콘텐츠를 지칭하는 RMC(Ready Made Content) 시장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 산업을 규제하는 한한령이 촉발하면서 넷플릭스와 관계 설정을 다시 검토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넷플릭스가 촉발한 미디어 전쟁은 어디까지 왔을까.
누구나 원하는 중국시장을 차지한 아이치이
재밌게도 한한령이 발생한 지난 2년간 중국은 콘텐츠 산업이 눈부시게 성장했고 넷플릭스를 견제할 가능성을 기대할 만한 회사까지 등장했다. 올해 봄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바이두 아이치이(iQiyi)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에겐 태양의 후예를 수입해 중국 현지에서 인기를 끈 회사로 정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나스닥에서 기업 가치가 22조원을 넘어섰다. 7월 중국과 미국 무역 전쟁 촉발 전에는 30조원을 넘기도 했다. 또 중국 진출이 막힌 넷플릭스가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는 초기엔 아이치이 플랫폼으로 자신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유통하려고 했다. 하지만 보잭 호스맨(BoJack Horseman) 유통을 중국 정부에 제지당하자 오히려 중국 콘텐츠를 넷플릭스가 수급해 글로벌 시장에 유통하기 시작했다. 한국 콘텐츠 산업에 좋지 않은 사례다.
아이치이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수급에 분기 매출의 70~80%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69% 수준인 넷플릭스를 뛰어넘는다. 2018년 매출 예상은 247억위안(약 4조원)으로 넷플릭스의 30% 수준이다. 넷플릭스는 120억달러(약 13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콘텐츠 투자 예상 비용은 181억위안(약 3조원)이다. 넷플릭스는 올해 9조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MPA(Media Partner Asia) 7월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콘텐츠 투자 비용은 28억 달러(약 3조 1000억원)이다. 모든 방송사와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 지출, 심지어 스포츠 라이센싱까지 포함해도 아이치이라는 플랫폼과 비슷한 규모다.
한편 아이치이 유료 SVOD 구독자는 2분기에 6700만명을 돌파했다. 세계에서 넷플릭스 다음으로 유료 구독자가 많다. 광고만으로 먹고사는 플랫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를 기반으로 아이치이는 현재 대만 진출에 더불어 하반기에는 아시아 시장까지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 중국의 콘텐츠 시장은 치열하지만 아시아 시장 확대 전략이 성공한다면 아시아의 넷플릭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넷플릭스가 미국 외 구독자가 미국 구독자 수를 제친 뒤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핫하디 핫한 인도의 핫스타(Hotstar)
이런 넷플릭스도 고전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인도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인도 시장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다 해도 1등이 되기가 어렵다. 인도에서 넘버원 채널이자 동영상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핫스타가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5%, 넷플릭스는 2%가 채 되지 않는다. 스타인디아는 7억 2000만명이 시청하는 인도의 대표 방송으로 채널만 60개가 넘는다. 그리고 이 스타인디아가 만든 동영상 플랫폼이 핫스타다.
동영상 플랫폼, 특히 구독자 기반의 서비스는 단기간에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단기간에 망하기도 어렵다. 고객 경험이 곧 습관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분기에 100만명의 구독자를 모으기가 어려운 것처럼 인도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단기간에 승부를 내기 어려운 시장이다. 핫스타는 넷플릭스가 제공하지 않는 스포츠와 뉴스도 제공한다.
스타인디아는 21세기 폭스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다. 디즈니가 79조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폭스를 산 배경에는 글로벌 폭스 채널도 있지만, 미국 훌루 지분과 인도 핫스타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디즈니는 폭스를 인수해 미국에서 2위 동영상 플랫폼을 갖게 됐고, 인도에서는 1위 동영상 플랫폼을 품게 됐다.

자신들의 금기를 깨트린 넷플릭스
넷플리스는 초기에 추천 시스템에 집중했는데 그 이유가 자신들의 약점인 콘텐츠 부족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검색으로 콘텐츠를 찾던 시절에 패러다임을 바꿔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방법이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에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이 많아지면서 추천 시스템 기반 시스템에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빨리 소비시켜야 하기 때문에 넷플릭스는 TV 메뉴에서 왼쪽 메뉴를 추가했다. TV와 영화, 신작을 바로 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오리지널 콘텐츠만 따로 볼 수 있는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 넷플릭스는 보잭 호스맨을 미국의 코미디 케이블 채널인 코미디 센트럴(Comedy Central)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9월 26일부터 코미디 센트럴에서 모두 시청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를 깨달은 듯하다. 바로 콘텐츠에 투자 대비 독점 플랫폼으로의 ROI(투자자본수익
률)가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TV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유료방송 서비스를 해지하는 코드커터를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튜브와 함께 좋은 디지털 옵션이 됐다. 그냥 넷플릭스를 좋아서 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실시간 방송을 쉽게 대체하지 못한다. 또 모든 오리지널 콘텐츠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만약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케이블 방송에 유통할 수 있다면? 넷플릭스는 이미 어떤 제작사보다 자체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있으며, 매년 제작하는 신작만 100개 이상이다. 올해 에미상에서 가장 많은 후보작을 낸 미디어도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는 보잭 호스맨의 구 시즌을 케이블에 유통하고, 신규 시즌을 플랫폼에 유통하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보잭 호스맨은 넷플릭스에겐 A/B 테스트 같은 종합 대조실험 콘텐츠인 듯하다. 만약 이 전략이 잘 구사된다면 구독자 확보가 좀처럼 어려운 나라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같은 영화 콘텐츠를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산업에서 모두의 워너비인 넷플릭스도 구독 모델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고민하며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밀라 월드’라는 코믹북 업체도 작년 여름에 인수했는데 단순히 오리지널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를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들이 구축한 광고 채널을 이용해 책 판매에도 힘쓰고 있다. 이미 캘리포니아 빌보드 광고 회사도 인수했다.

넷플릭스가 시작한 전쟁의 끝은 디즈니일까
지난달 넷플릭스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오리지널 콘텐츠 활용 방법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필에 자신들이 투자한 콘텐츠를 아바타로 쓸 수 있게 했다. 이게 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신들이 IP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가 없다. 일단 방송사와 영화사와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자신들이 IP를 갖고 있으면 캐릭터 사업도 할 수 있고, 제작 상품도 만들 수 있다. 또 리조트 사업도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주요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중국과 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고전하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는다.
미디어가 모두 넷플릭스를 쫓고 있다. 그래서 모두 넷플릭스와 경쟁하려고 한다. 넷플릭스는 190개국에 경쟁자가 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모든 미디어 회사가 한마음 한 뜻으로 견제하고 있다. 물론 LG유플러스는 예외인 듯하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디즈니를 쫓고 있을 듯하다.
디즈니도 넷플릭스 구독 모델을 가져오려고 하고 있다. 온라인 사업으로만 살 수 없다. 세상은 디지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존이 사업을 오프라인 영역으로 확대하는 이유는 온라인 경쟁력을 오프라인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영역에서 오프라인 사업은 디즈니가 전문가다. 자신들의 IP를 이용해 최대 매출을 만들어 낸다. 리조트 사업과 라이센싱 기반의 상품 사업이 대표적이다.
예전에 디스크 대여 사업을 통해 시작했던 스타트업 미디어 회사 넷플릭스는 10년 뒤인 2008년에 스트리밍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시 10년이 지난 2018년 지금 넷플릭스는 또 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그럼 우리가 쫓고 있는 넷플릭스는 과거일까 현재일까. 넷플릭스가 촉발한 미디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조한
현재 곰앤컴퍼니 전략이사다. 미디어 플랫폼 전략 담당자로 일하며 글로벌 미디어기업들의 전략을 연구한다. ‘플랫폼 전쟁’ 저자이며 각종 매체에 미디어 산업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본 기사는 테크M 제65호(2018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