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인 AI와 데이터 적은 어려운 AI로 경쟁력 키워야

[테크M=곽예하 기자]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매년 이듬해 훨씬 고도의 인공지능(AI)이 등장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는 최근 몇 년간 AI 시장이 전례 없는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세계 AI 시장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55.1%씩 성장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는 2019년에 ‘실용적인 AI’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이 의사 결정 과정을 자동화하거나, 고객이나 직원 개개인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지원하며 실용적인 업무에 AI 활용을 넓혀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포레스터는 또 ‘퓨어 AI(Pure AI)’가 등장하려면 최소 100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퓨어 AI는 사실상 모든 인력을 휴가 보내고도 세상이 돌아가게 할 정도로 고도화된 AI를 말한다.

현실적 성과 내는 AI기업 돋보일 것

이경전 경희대 교수도 실용적인 AI가 대세가 이룰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내년은 각 분야에서 현실적인 성과를 내는 AI기업들이 돋보이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까지는 AI를 앞세워 과도한 마케팅을 펼쳤던 기업들이 선전했으나, 올해를 기점으로 더 실용적인 AI연구를 하는 기업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흐름은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교수는 IBM을 예로 들었다. 그는 IBM이 모든 서비스마다 ‘왓슨’이라는 이름을 붙여 마치 AI가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는 이 환상이 많이 벗겨지면서 실제 매출도 감소했다. 지난 8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IBM은 ‘왓슨’ 딜레마를 겪고 있다”며 이미 12개가 넘는 IBM 고객사들이 암치료와 관련된 왓슨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축소했다고 밝혔다. 체이스 콜롬비아대 박사는 IBM이 마케팅에 비해 저조한 결과를 낸 것에 실망하고 고문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알파고 때문에 AI에 대한 관심이 갑작스럽게 증가했던 지난해에는 이런 마케팅 전략이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올해부터 흐름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내년에 실용적 AI가 가장 활발하게 결합될 분야로 의료와 제조업을 꼽았다. 글로벌 리서치기관 트랙티카(Tractica)와 IDC 또한 2020년까지 AI가 가장 많이 적용될 분야로 제조업과 의료를 뽑았다.

또 내년에 기업 경영과 관련된 분야에서도 AI도입이 활성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최근 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한 중소기업 품질관리 공정에 AI를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사람이 일일이 제품을 검사하기에는 벅찼던 것을 딥러닝 기술로 효율화할 수 있었다. 그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해당 기업이 마케팅에도 AI를 도입하고 싶다고 문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올해 성공사례를 만든 다른 기업들도 내년에는 마케팅이나 인사 같은 경영 과정으로 AI 도입을 확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포레스터는 재미있는 전망을 내놓았다. 포레스터는 “내년에 기업들이 AI인재 채용에 AI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AI를 도입하고 싶어도 전문 인재가 부족해 포기해야 했던 기업이 많았다. 포레스터는 2019년에는 이런 AI 인재 구인난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내년에는 현재 머신러닝모델에서 부족한 인적 자산을 채워줄 수 있는 ‘머신러닝 전문 인재’가 가장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기업들이 지원자가 이런 업무에 적합한지 검토하는데 AI를 활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듣는 AI’에서 ‘보는 AI’로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듣는 AI’가 강세를 보였다. 사람의 음성을 듣고 분석하며 답변을 제시하는 AI다. 대표적인 것이 AI스피커다.

지난해 KT 기가지니, 네이버 클로바, 카카오 미니 같은 국내 대기업이 내놓은 AI스피커가 국내에서 붐을 일으켰다. 올해는 지난 9월 구글이 AI스피커 ‘구글 홈’을 국내에 출시하면서 경쟁을 가속화했다.

이와 달리 내년에는 ‘보는 AI’가 강세를 띨 전망이다. 카메라가 달린 AI가 촬영하는 대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경전 교수는 이미 LG전자와 함께 이런 AI를 생활가전에 탑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에어컨에 카메라를 달아 사람이 없는 경우를 인식해 자동으로 절전을 실행할 수 있다. 또 카메라를 단 로봇청소기가 바퀴벌레를 인식해 집주인에게 ‘세스코에 연결할지 말지’ 여부를 문자로 보내는 방식이다.

11월 한국을 방문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대표(CEO)도 이런 시각 AI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MS가 출시한 시각장애인용 인공지능 ‘Seeing AI’를 예로 들었다. Seeing AI는 스마트 안경으로 AI가 주변 상황을 분석한 뒤, 이를 음성으로 안내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이런 시각 AI가 음성에 비해 상용화가 늦어졌지만 내년을 기점으로 범용화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각 AI 발전은 자율주행기술 발전도 앞당길 전망이다. 자율주행차 개발에서 보행자나 표지판 같은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AI기술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파괴적 혁신’ 저자 제이 사밋은 자기 블로그에서 “2019년에는 자율주행차를 포함한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6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율주행트럭, 자율주행 드론도 AI 발전으로 혜택을 받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현존하는 세계 데이터 90% 이상이 최근 12개월 안에 생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 중 1% 미만 데이터만이 분석되고 있다”며 “이는 내년에 AI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규제 속에서도 피어나는 ‘어려운 AI’ 할 줄 알아야

한편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에 AI 관련 윤리와 규제를 확실히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델라 MS 대표는 지난 11월 7일 서울 홍은동에서 열린 포럼에서 “AI 개발은 윤리적이고 공정하며 안전해야 한다. 또 투명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AI가 사람 지능을 뛰어 넘는 수준까지 올랐다. 이에 이런 AI가 초래할 윤리 문제에 대해 개발자부터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국내 법조계와 정치계에서도 이런 논의가 피어나고 있다. 류부곤 경찰대 법학과 교수는 “AI가 주는 편의성에 가려져 이것이 불러올 사회적 영향에 대한 대비는 부족한 상태”라며 “이를 위해 내년에는 기술, 법, 정치계가 모여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히려 이런 규제 때문에 AI개발에 필수인 ‘데이터 활용’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중국이 미국 뒤를 잇는 AI 강국으로 꼽히는 것도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세계 7대 AI기업 중 하나인 중국 텐센트의 메신저 플랫폼 ‘위챗’ 사용자만 합쳐도 10억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 교수는 “데이터가 적다고 해서 AI연구에 꼭 불리한 것은 아니다”며 이를 반박했다.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많이 필요한 AI가 주를 이뤘다면, 내년부터는 점점 데이터가 적어도 가능한 AI로 트렌드가 형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이 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데이터 규제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는 ‘어려운 AI’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들어 블록체인에서 고객에게 데이터를 사고, 이에 대한 보상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과거 사람들은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진 권력자 ‘빅브라더’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오히려 우리들이 SNS로 권력자를 감시하는 ‘스몰 브라더’가 됐다”며 “어려운 AI를 할 줄 아는 국가가 결국엔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8호(2018년 12월)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