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전자 데이터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은 과학적인 인종차별을 강화하고, 차별을 부추길 수 있다.

[독점제휴=MIT테크놀로지리뷰] 공격성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하고 싶은가? 신경증 여부나 위험 회피는? 권위주의 성향이나 학업 성취 예측은? 이들은 현재 급부상한 사회유전학 최신 연구 분야다. DNA 이중나선이 발견된 뒤 많은 종류의 “DNA 혁명”이 일어났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사건 중심에 있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결합해 탄생한 이 새 분야는 유전체과학에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간 행동에서 유전적 특성을 밝히려고 목표하고 있다. 특히 사회학자와 경제학자, 정치학자, 심리학자 같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는 복잡한 인간 행동을 대상으로 한다.
다행이 ‘23앤드미(23andMe)’ 같은 유전자 검사 회사들 덕분에 연구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갈수록 풍부해지고 있다. 사회유전학 분야를 이끄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과학자들이다. 보편적으로 이들은 인기 있는 책과 논평을 쓰고, 인터뷰를 하며, 수준 높게 강의한다. 이러한 활동은 유전과 환경에 대한 논쟁이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새로운 세상에서도 바로 복제되고 새롭게 생겨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유전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 “건강 보고 카드”를 부여 받는 것에 대해 모든 사람이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건강 보고 카드는 개인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다양한 질병 여부와 행동 성향을 예측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과학 영역에서 사회학자들은 교육적 성취와 부 축적에 유전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것이고, 경제학자들은 개인 지출과 저축, 투자 행위에서 나타날 유전적 ‘위험 점수’를 계산할 것이다. 특별한 규제를 마련하지 않는 한 이런 점수들은 학교나 이력서를 작성할 때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또 의료 보험료 계산 과정에도 사용할 수 있다. 당신의 유전체는 현재 수준에서 최고 상태를 나타낸다. 이런 세상이 흥미로울 수도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경제학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어쨌든 이런 세상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교육심리학자 로버트 플로민은 자기 글에서 “요정 지니가 이미 병에서 나왔고 다시 넣을 수 없다”고 썼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과학이 말하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사회적 정책에서 타당한 근거로 쓰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사회유전학을 단지 과학 그 자체를 넘어 유전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해서 정의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유전학이 무엇을 위태롭게 만들고, 우리에게 어떤 이익과 위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기묘한 과학
만약 이것이 ‘과학’이라면 과학은 기묘하다. 우리가 아는 과학은 가설을 계속 실험하면서 자연현상에 대한 인과적인 설명을 점진적으로 찾는 것이다. 또 좋은 과학은 현재 작동하는 가설을 열심히 반박하는 것이다.
사회유전학에서는 실험도, 귀무가설도, 데이터에서 일반 원리를 찾는 추론도 없다. 또 사회유전학은 오랜 기록을 증거로 채택하는 지질학이나 진화생물학 같은 역사과학과도 다르다. 사회유전학은 연역적이기보다는 귀납적이다. 사회유전학에서 데이터는 사전 가설 없이, 프래밍햄 심장 연구나 트윈 연구 같이 종단적 연구 방법으로 수집된다. 또 23andMe처럼 개인 유전자 데이터와 함께 생물학적으로 생체 정보를 수집하는 DNA 회사로부터 데이터를 직접 수집한다. 이후 알고리즘이 데이터를 분석해, SNP라 부르는 단일염기다형성, 즉 DNA에서 보이는 작은 변화와 특성 사이에서 상관관계를 밝혀낸다. (*개인별로 고유한 유전자 서열이 존재하는데 이를 단일염기다형성이라고 하며, 인종에 관계없이 99.9%가 동일하고 약 0.1% 차이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사회유전학자들은 보통 과학자라면 대부분 진작에 했을 추론과 예측을 한다.
이는 주로 개인의 미래 행동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회유전학이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DNA데이터는 보통 전장유전체 연관분석(GWASs) 형태로 만들어진다. GWASs는 유전체와 SNP 사이에 나타나는 다양한 연결성을 비교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여기서 사회유전학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높은 지능이나 동성애, 도박 중독 같이 인간이 보이는 다양한 특성과 관련된 SNP 패턴이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SNP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조합 수가 아주 많아서 특정한 성질과 연관성을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화생물학자 그래햄 쿱은 빅데이터가 우리를 잘못된 객관성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GWAS 성공이 사람 간에 나타나는 행동 차이가 일부는 유전체에 의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건 보기보다 복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쿱은 다인성 연구에서 오해 소지가 있는 “가벼운” 예시를 하나 제시했다. 가설적 연구 질문으로 “왜 영국인들이 프랑스 사람들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시는가?”다. 쿱이 설정한 가상 연구원 밥은 영국 바이오뱅크 같은 데이터 베이스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사용한다. 그는 영국인과 프랑스인이 차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관련된 대립유전자 평균 수를 측정한다. 쿱은 “만약 밥이 연구한 결과 프랑스인보다 영국인에게서 관련 대립 유전자 양이 많은 것으로 밝혀지면,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차 선호도가 다르다는 사실에 유전적 요인이 관련 있음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밥이 양심적인 과학자라면 자신이 사용한 데이터가 정확한 것임을 확실하게 증명할 것이다.
또 그는 차를 많이 마시는 모든 영국인들이 유전자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차 선호도에서 국가별로 보이는 차이가 ‘일부’ 유전자와 관련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쿱은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로 우리를 안내한다. 밥이 한 실험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어서다. 밥은 대립유전자가 어떤 유전체에 있고, 어떤 환경에 있는지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그의 GWAS 연구는 영국 바이오뱅크에서 특정 사람들이 특정 환경에서 검사받은 유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밥 연구에서와 같은 대립유전자를 지닌 사람이라도 같은 차 선호도를 보일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밥 연구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연구 그룹 사람들이 차를 좋아하는 것이 그 유전자 때문이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
밥은 두 가지를 실수했다. 첫째 그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다. 밥 연구는 차 마시는 것과 연관된 대립유전자가 한 사람이 차를 선호하는 정도에 100%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지 연관돼 있을 뿐이다. 대립유전자를 통해 예측할 수는 있지만 설명하긴 어렵다. 둘째 오류는 내가 대학 생물통계학 수업 첫날 배웠던 것이기도 하다. 통계적 유의성은 생물학적 중요성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사람 수는 해변에서 익사하거나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사람 수와 관련 있다. 해변 가 아이스크림 판매대 판매 수치로 실제 상어 공격을 예견할 수 있다. 이때 단지 바보만이 당신 손에서 아이스크림 와플콘을 쳐낸 다음, 자신이 당신을 그레이트 화이트 상어로부터 구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쿱은 “복잡한 특성은 그저 그렇게 복잡할 뿐이다”고 결론짓는다. 이어 “사람이 보이는 다양한 특성은 다인자적 특성을 지닌다. 한 성질에 여러 SNP나 유전자가 관여한다. 이런 SNP나 유전자는 여러 환경과 문화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며 영향 받고 수많은 경로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오랜 전통
사회유전학은 15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유전론적 사회과학에서 가장 최신 이야기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독특한 문화적 순간들은 특정 사회 의제를 강요하기 위해 이용되곤 했다. 하지만 잘된 적은 거의 없다. 사회유전학자들이 사용하는 통계학적 접근법을 창시한 사람은 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이었다. 골턴은 인간 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곡선을 따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선형 회귀선 개념과 방법을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모든 특성과 마찬가지로 사람 키는 종형 곡선 분포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화했다. 골턴은 곧 “천재”와 “재능”, “개성” 같은 사람이 지닌 성격 같은 특성에 관심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유전론자로 변해갔다. 곧 골턴은 ‘유전 대 환경’이라는 개념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환경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고나는 유전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골턴과 그의 견습생들은 인류 발전을 목적으로 현대생물통계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골턴의 후배 칼 피어슨은 섹스와 사랑을 분리해야 된다고 믿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상관계수와 GWAS 통계를 발명해 사회유전학 선구자로도 불린다. 그는 사랑은 널리 퍼져나가야 하는 반면, 섹스는 우생학, 즉 인종 개량 관점에서 철저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요점은 우생학이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말만 그럴 듯한 과학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우생학은 생물통계학 발전에서 중심에 있었다. 우생학은 유전적 사회과학 역사를 따라 쭉 함께 왔으며, 좋든 싫든 간에 오늘날 사회유전학자들은 이를 계승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멘델 유전학에 기반한 새로운 종류의 악랄한 유전학이 등장했다. 진보주의 개혁에 대한 열성, 강력한 정부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과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우생학은 강압적인 사회 정책과 심지어 법을 만드는 토대가 됐다. 저명한 우생학자들이 정치인을 대신해 유세활동을 펼치고, 로비하고, 여러 증언을 하며 각 지역에서는 “다 인종간 출산”이나 “열성학적”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통과됐다. 그들은 이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강제 불임을 요구했고, 이는 이민자들을 괴롭게 했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이를 “거지소굴 같은 나라”로 표현하며 비판하고 있다. 1960년대 말 교육심리학자 아서 젠센은 하버드 에듀케이셔널 리뷰에, 흑인 아이들이 백인 아이들보다 선천적으로 덜 똑똑하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는 학교가 교육과정을 분리해 흑인 아이들이 백인 아이들에게 좌절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후 젠센이론이라고 불린 그의 주장은 몇 년마다 한 번씩 수면위로 떠올랐다. 1994년 발행된 찰스 머레이와 리처드 헤른슈타인의 종 곡선(The bell curve)과 니콜라스 웨이드의 문제적 유산(A Troublesome Inheritance)에서도 젠센이론이 언급됐다. 2018년 사회와 정치적 분위기를 감안할 때 지금은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새로운 유전자 결정론을 받아들이기에는 특히 불길한 시기 같다. 최근 내가 읽은 대부분의 사회유전학 관련 연구 논문과 백서, 인터뷰, 책, 뉴스 기사 등은 사회유전학 연구자들이 이전 유전학 과학자들에 의해 촉진된 인종주의와 사회 계층화를그냥 지나쳐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연구결과를 과소평가하면서까지 유전자 결정론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 연구자들은 여전히 사회유전학을 백인 우월성과 민족주의에 대한 근거로 사용하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사회적 위험
사회유전학은 그 자체로 큰 사회적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사회적 위험에 맞서 싸울 충분한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2012년에 발표된 한 논문은 사실상 유전경제학 공식 성명문이 됐다. 논문은 유전학적 정보를 사람에게서 경제적 행동을 예측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저자인 다니엘 벤자민과 공동 저자들은 논문에서 두 챕터를 “위험”을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내용 대부분이 방법론적이고 통계학적 긍정오류에 관한 것이었다. 또 연구 참여 인원이 너무 적은 것에 대한 문제도 적혀있었다. 그들이 말한 이러한 위험들은 대부분 더 나은 데이터나 통계로 해결할 수 있었다.
반면 이 분야에서 몇몇 사람들은 이 어마어마한 문제를 너무도 쉽게 인정하곤 한다. 텍사스대 행동유전학자인 캐스린 페이지 하덴은 올해 초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우생학은 단지 과거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덴은 소위 “극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사람생물다양성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백인 우월주위와 관련된 이 극보수주의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과학적 합법성을 주장한다. 하덴은 “이 운동 참여자들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불평등성을 유전자가 결정하며, 이 사실을 분자유전학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잘못된 상식을 자기 트위터나 블로그에 열성적으로 올린다”며 “따라서 이들은 관대한 복지정책이 소용없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또 유전학이 인종 간에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사람 내에서 생물다양성을 주장하는 이런 사람들과 소위 ‘인종 사실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사회유전학을 매우 좋아한다. 백인 우월주의자 재러드 테일러가 쓴 책 ‘아메리칸 르네상스(American Renaissance)’는 사회유전학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치 유전론적 정보들을 한데 모아둔 ‘HBD 참고문헌(HBD Bibliography)’과 비슷하다. 백인우월주의나 사람생물 다양성과 관련된 글을 쓰는 작가 스티브 세일러는 ‘Unz 리뷰’나 ‘VDARE’ 같은 인종 사실주의 사이트에 사회유전학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사회유전학자들이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들 연구가 연구실 밖에서 심각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단지 극소수만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유전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1905년 프랑스 심리학자 사이먼 베네는 특정 분야에서 추가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구분해내려고 ‘IQ 테스트’를 발명했다. 이후 20년 안에 베네는 테스트 점수가 낮게 나왔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불임을 요구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옥수수 씨를 뿌리듯 질이 안 좋은 유전자가 널리 퍼질 수도 있다는 잘못된 상식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현재 사회유전학이 이처럼 과거와 같은 운명을 겪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교육적 성취와 관련된 ‘다인자적 검사’ 결과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맞춤 도움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것이 계층화 도구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진화생물학자 쿱과 그의 제자 제레미 버그가 인간 키 유전학에 관한 GWAS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그들은 이 논문으로부터 무엇을 합법적으로 추론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1500단어 분량으로 블로그 글을 쓰는 특별 조치를 취했다.
쿱이 이렇게 긴 블로그 글을 쓴 것이 왜 ‘특별한’ 일이었을까? 이 분야는 쿱 같은 과학자가 더 많이 필요한 반면 치어리더는 줄어야 한다. 자기 연구가 사회에 미칠 영향, 특히 ‘악영향’이 무엇일지 고려할 줄 아는 과학자가 필요하다. 또 과학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알고, 자기 연구를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과학자를 필요로 한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강력한 지식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사회유전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이러한 소양을 필수로 갖춰야 한다.
<이 기사는 테크M 제68호(2018년 12월)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