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결과 발표
게임에 대한 낙인효과와 추가 규제로 경제적 손실 '눈덩이'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를 통과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국내에도 도입할 경우 최대 5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과 3만명 이상의 일자리 감소가 전망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주최로 열린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결과 발표 및 토론회'에서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유 교수는 "이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셧다운제와 마찬가지로 게임이용 장애의 질병 분류는 취지 이외에 다른 사회 영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게임이용 장애의 질병 분류는 게임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로 이어질 뿐 아니라 국제 무역장벽으로써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산업 축소 효과 3조5000억, 전후방 산업 고려하면 5조 피해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의 경제효과를 분석한 이번 연구에는 유 교수를 비롯해 전성민 가천대 교수, 강형구 한양대 교수가 참여했다.
연구진은 과몰입 발생 가능성이 높은 담배산업, 만화산업 등의 유사산업의 규제 사례를 바탕으로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시 발생할 직접효과에 대해 분석했다. 그 결과 연평균 최소 1052억원에서 최대 3조5206억원의 산업 축소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의 여파는 게임산업 뿐만 아니라 기타 전후방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파급효과까지 고려했을 때 전체 생산 감소효과는 5조2526억원에 달하며, 3만4007명이 취업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연구진은 전망했다. 특히 시뮬레이션 결과 이보다 더 큰 파급효과가 발생할 확률이 6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 소비자만 게임 소비 덜 한다... 효과성도 의문
유 교수는 전국 20~59세 성인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이 게임 과몰입을 막는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설문 결과 질병코드 등록 후 응답자의 26.5%는 게임 이용시간이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고, 28.9%는 게임 구매 금액이 감소할 것이라 응답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나 주변 인식이 게임을 덜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한 비율도 각각 34.8%, 37.4%에 달했다.
하지만 설문대상을 게임중독 척도상 수치가 높은 '잠재적 문제이용집단' 130명과 '정상집단' 350명으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 오히려 잠재적 문제이용집단보다 정상집단 쪽이 소비에 영향을 더 받을 것으로 나타났다. 정작 개선하고자 하는 잠재적 문제이용 집단보다 정상 이용자만 게임 소비를 줄여 산업에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유병준 교수는 "정상 이용자 소비는 줄이고 과몰입군은 소비를 줄이지 않아 실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며 "정책 효과는 못내고 산업만 죽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경제 침체 효과와 사회적 비용 고려해야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앞선 연구결과 등을 고려했을 때 질병코드 등재에 따른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과 추가적인 규제 발생 등으로 인해 치뤄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유 교수는 "개인의 보호 논리에 치우쳐 거대한 경제 침체 효과와 사회적 비용이 간과된다면 심각한 경제산업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파급효과와 향후 전망을 고려할 때 피해는 더 심각하고 일자리 감소 효과도 큰 만큼 경제적 부의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6년 게임산업 규제에 따른 고용효과 분석 연구를 수행한 바 있는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실장은 "질병분류 도입은 기존 게임 산업 규제보다 고용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2만~3만5000명까지 고용 감소가 추정되고 연관산업까지 고려하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따른 사회변화 연구를 진행했던 이형민 성신여대 교수는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의료 비용과 부정적 인식에 따른 낙인효과로 인한 비급여 진료 등을 고려할 때 최소 12조원에서 최대 28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한국, 미국, 일본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질병코드 등재로 인한 낙인효과가 한국이 가장 커 도입되는 순간 더 큰 부정적 사회효과가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선 질병코드 등재로 인해 1131억6300만원의 사회적 의료 비용과 연간 약 7000억원의 의무 부담금이 발생하고, SNS 등 타 인터넷 산업까지 질병 분류가 확대될 경우 발생할 1416억원의 부담금까지 고려하면 전체 1조원에 가까운 간접적인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게임이 마약과 동급? 낙인효과로 인한 피해 막심
최승우 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질병코드 등재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되면 일방적인 편견이나 맹목적 비난을 받거나 범죄 원인 등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며 "사회적 낙인 효과로 인해 전체 종사자 8만5492명이 질병유발 물질 생산자라는 오명과 낙인이 찍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의료계에선 질병코드 등재를 해도 게임에는 영향이 없다고 하는데, 최고급 와인을 깨끗한 소변 검사컵에 주면 마시겠는가"라며 "게임이용장애라고 하는 순간 게임이 중독 유발물질이고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직접 안해도 위험하다는 인식을 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혁태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정책팀장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는 게임 사망선고와 같은 것"이라며 "게임 산업계에 우수한 전문인력이 공급되지 못해 한국 게임의 질적 양적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질병코드 등재에 대항하기 위해 민관이 국내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세부 정책을 수립을 추진할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줄 수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앞으로 다양한 정책을 통해 게임산업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