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 인터뷰
기후변화 문제 해결 위한 국제 협력, 모범사례 공유, 혁신 플랫폼 제시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

올봄, 모든 것이 멈추자 푸른 하늘이 돌아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를 벗진 못했지만, 지난해 기록적인 미세먼지로 눈뜨기조차 힘들었던 날들을 돌이켜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의 강력한 봉쇄 정책과 북서풍과 강수가 잦았던 기상 조건, 그리고 정부의 계절 관리제 시행까지 '3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실제 올해 초미세먼지 '좋음' 일수는 크게 늘었다.

하지만 대기 현상 등 사람의 힘이 관여할 수 없는 요소들이 더 컸다. 앞으로 코로나19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될수록, 역설적으로 다시 숨막히는 미세먼지 속으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러스 때문에 썼던 'KF 마스크'를 결국 또 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과 태풍 등 자연재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문제를 더는 미뤄둘 수 없는 이유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은 "코로나19가 극복되면 억눌렸던 경제 활동 욕구가 표출되고 에너지 생산과 공장 가동이 동시에 폭발하면서 거꾸로 미세먼지 유발 요인이 확대 될 수 있다"며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미세먼지 문제는 계속된다


지난해 정부는 미세먼지 문제를 사회적 재난에 포함시키며 국가적 의제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미세먼지 특별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직속 자문위원회인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를 발족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국민 공론화를 통해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가장 먼저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12월부터 3월까지 석탄화력발전 가동 중단 등 28개 이행과제를 담은 '고농도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제안했다. 계절 관리제는 올해 코로나19 여파와 맞물려 초미세먼지 배출량을 2만2000톤 가량 줄이는 효과를 봤다.

김 위원장은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와 경제 침체가 현재의 푸른하늘에 크게 기여했다"며 "코로나19 이후에도 푸른하늘을 유지하기 위해선 ‘녹색 재건(green recovery)’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왜 발생했는지, 미세먼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며 "코로나19의 원인을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인한 서식지 감소에서 찾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국제협력이 필수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

유엔 대사를 지낸 외교 전문가인 김 위원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초국제적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적, 전 지구적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만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월경성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선 국제협력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해 11월 국제포럼을 개최해 '미래를 위한 파트너십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는 '모범사례 공유 파트너십'을 주요한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안했다. 모범사례 공유 파트너십은 지난해 12월 유엔 결의안 전문에 공식적인 이행수단으로 채택됐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동북아시아는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대규모 국제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없어 이 정도 규모의 협력이 쉽지 않다"며 "국가마다 경제 발전 속도가 각기 다르고 전지구적 문제 해결에 대한 능력이나 의지에서도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공통 분모가 취약한 동북아 지형도에서 미세먼지 문제를 국제협력을 통해 해결하려면 '구동존이'(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는 것)가 필요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제시한 해법이 바로 모범사례 공유 파트너십이다.

김 위원장은 "한국, 중국, 몽골, 일본 등 이웃 국가들과 협력 기반을 조성하고 촉진하기 위해선 우선 각자의 모범사례 공유와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며 "모든 이해관계자가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혁신과 기술에 대한 모범사례 공유를 통한 파트너십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혁신역량, '모범사례'로 공유한다


김 위원장은 한국이 높은 과학기술 혁신역량과 연구개발(R&D) 투자를 바탕으로 전 세계와 공유할 기술혁신 모범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7일, 대기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한 유엔 공식 기념일인 '푸른 하늘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푸른 하늘의 날은 한국이 제안해 유엔에서 채택한 최초의 공식 기념일이자 국가 기념일이다.

이날 기념식에선 국가기후환경회의, 중소벤처기업부, 유엔환경계획(UNEP), 국내외 금융사 간 '푸른 하늘을 위한 혁신 플랫폼 파트너십'이 체결됐다. 이 파트너십은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그린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를 창출하고,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혁신과 기술을 진흥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7일 열린 세계 푸른 하늘을 위한 혁신 플랫폼 파트너십 서명식에서 강경화 외무부장관,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 등 참석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 =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지난 7일 열린 세계 푸른 하늘을 위한 혁신 플랫폼 파트너십 서명식에서 강경화 외무부장관,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 등 참석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 = 국가기후환경회의 제공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민간과 공공이 한자리에 모여 대기오염과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 '푸른 하늘을 위한 혁신 플랫폼'(Innovation for Blue Skies, I4BS)'을 구축했다. 지난 9개월 간 매월 한 차례 이상 정부 및 지자체, 학계, 연구계, 산업계, 금융계, 국제기구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또 덴마크, 스웨덴, 베트남 등 해외 정부를 비롯해 UNEP,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등 국제기구와 협력 네트워크를 맺었다. 특히 금융기관과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 기후기술 혁신이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펀딩을 통해 실제 사업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김 위원장은 "기본적인 콘셉트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국제기구, 국제적인 금융사들을 연계하는 플랫폼 구축"이라며 "국내외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대기오염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찾고 동시에 '그린 비즈니스'를 가능케하는 방식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이번 파트너십 참석기관들은 오는 11월 열릴 I4BS 프로그램에 적극 협조하고 I4BS 경연대회에 참가할 8개국 15개 스타트업의 기후기술 사업화를 위해 제도 및 금융적 솔루션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중장기적 방안엔 국민적 합의 필요


미세먼지와 기후변화가 당장 시급한 해결이 필요한 문제라는 공감대는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도 많다. 

탈석탄으로 가기 위한 감축 목표와 전환 과정의 에너지 믹스 개선은 어떻게 추진할 지, 에너지 생산비용 증가에 따른 공공요금 인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지, 영세 사업자가 주로 사용하는 노후 경유차는 어떻게 없앨지 등 하나하나 민감한 사안들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이런 중장기 정책을 제안하기 이전에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501명의 '국민정책 참여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국민 10만명 당 1명이라는 대표성을 지닌 501명의 국민정책 참여단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28개 중장기 과제 중 대표과제 8개에 대해 숙의를 거쳐 토론을 통해 결과물을 도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국민정책참여단은 당초 올 여름 대규모 토론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과 재확산이 이어지며 비대면 방식으로 방식을 선회했다. 오는 19일부터 전국 각지 50개 그룹으로 나뉘어 실시간 예비 토론을 거친 후, 종합 토론을 거쳐 국가기후환경회의 본회의에 의제를 정식으로 채택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국민정책 참여단 토론은 국내 비대면 화상 토론 중 가장 큰 수준이 될 전망"이라며 "단순히 참관만 하는 게 아닌 각 참가자들이 직접 토론에 참여해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 문제 해결이라는 포괄적인 명제는 수용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해집단 간의 이견이 크다"며 "하나하나 무게 있고 민감한 문제라 정부가 입장을 정해놓고 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국민과 산업계, 정부가 이견을 조율해야 하지만 결론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풀어내려면 결국 고통 분담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은...


김숙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은 1978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35년간 미국, 인도 캐나다 등 해외공관 근무를 포함해 외교 및 정보 분야에 근무한 직업외교관이다. 김 위원장은 2011~2013년간 주유엔대사로 재직하며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2013~2014) 진출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며, 2013월 2월 안보리 의장으로서 북한의 제3차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논의를 이끌었다. 그는 2012년 유엔의 지속가능개발정상회의(Rio+20) 준비위원회의 공동 의장 및 유엔여성기구의 집행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김 위원장은 공직생활 중 대부분을 한미동맹과 북한핵문제 등에 쏟았다. 2009~2011년간 국가정보원 제1차장으로 재직했고, 2008~2009년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서 6자회담 수석대표를 역임했으며, 2004~2006년 간 북미국장으로 재직 중에는 초대 방위비분담교섭 대사를 역임했다. 2013년 퇴임 후에는 2014~2015년간 스탠포드대학교 아태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현재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략기획위원장으로 재임중이며, 2019년 4월 창립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 재단'의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