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네이버 대표(왼쪽)와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 캐리커쳐 = 디미닛
한성숙 네이버 대표(왼쪽)와 여민수·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 캐리커쳐 = 디미닛

기자 중심의 뉴스를 지향하는 테크M이 한 이슈에 대해서 IT전문기자 세명이 서로 다른 시선에서 이슈를 분석하는 '세가지시선' 기획기사를 선보입니다. 이슈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각을 독자분들께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은 사전 논의 없이, 각자의 시각에서 이슈를 분석합니다. 사안에 따라 세명의 시선이 모두 다를수도, 같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시각이 살아있는 세가지시선에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는 전세계에 몇 안되는 '인터넷 독립국가'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 인터넷 기업을 통해 검색을 하고 쇼핑을 즐기며, 메신저로 의견을 나누고 인터넷 세상을 향유한다. 러시아와 공산국가 중국은 예외로 두겠다. 참고로 옆나라 일본도 야후의 일본 법인 야후재팬과 네이버 자회사 라인 메신저에 인터넷 주권을 넘겼다.  

이처럼 호시탐탐 국내시장을 노리는 외산기업을 상대로 치열한 혈투 끝에 생존한 토종 인터넷기업은 사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전긍긍이다. "댓글을 조작했네", "우리 기사는 메인에 사라졌네" 등등 공격 사례도 제각각이다. 네이버 전 부사장님이 국회의원이 돼 "혼쭐을 내주겠다"며 카카오 임원의 소환을 벼르는 '팀킬'도 눈에 띈다. 

핵심부터 말하면, 우리 모두 더이상 포털에 족쇄를 채워선 안된다. 정치권을 탓할 필요도 없다. 포털은 기업이다. 정치적 중립을 취해야할 법적 근거가 없다. 만약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국내 포털시장을 장악했다면, 미국에 본사를 둔 구글의 현지 경영진을 우리 국감장에 부르는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구글에게 시장을 내주고 자리를 비켜줘야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문제는 바로 포털 탓을 늘어놓는 이용자다. 


아고라를 기억하세요? 이젠 뉴스 댓글 달기도 어렵네 


지난 2004년 12월 문을 연 포털 다음의 '아고라'는 진보 성향을 지닌 네티즌들에게 '공론의 장'으로 불렸다. 특히 지난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발생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진원지로 지목될 정도로 진보 색채를 강하게 띄었다. 

이후 10년간 보수정권이 집권하며 정치권과 보수 색채 이용자의 십자포화를 맞은 아고라는 결과적으로 지난 2009년 다음 메인에서 사라졌고, 지난해 1월에는 아예 서비스를 접었다. 클릭이 몰려야 돈을 벌는 포털 입장에선 강력한 킬러콘텐츠를 포기한 셈. 이후 다음 포털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이용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소통의 창구를 잃은 이용자는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았다. 바로 네이버다. 

네이버 역시 국내 1위 포털로 진화하면서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정치권의 눈치를 살펴야했다. 사실 다음이 포털 시장을 주도하던 시절, 아고라가 싫은 보수 색채의 이용자는 네이버에 터를 잡았다. 그러나 다음이 무너지자 네이버는 보수와 진보가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정치의 장'이 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네이버 또한 트래픽으로 재미를 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네이버 또한 1위 포털의 비용을 치뤄야했다. 각 진영의 이용자를 등에 엎은 여야는 네이버에 융단폭격을 쏟았다. 이에 네이버는 지난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사태와 2018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겪으며 수차례 서비스를 개편했고, 아예 뉴스 편집에서 손을 뗐다. 네이버 입장에선 뉴스 콘텐츠를 통해 국내 1위 포털로 올라섰을 정도로, 애착이 컸겠지만 생존을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실제 네이버 뉴스는 특정 진영에 쏠리지 않도록 기계적 중립이 필수였고, 이는 곧 기업의 존립과도 연계가 됐다. 

 

사진 = 다음
사진 = 다음

 


겁에 질린 포털, 공론의 장은 어디로


트래픽은 이용자의 선택으로 이뤄진다.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민간기업을 겁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심지어 토종인터넷 기업은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기술을 꺼내며 외산기업들은 필요치 않은 추가 비용을 집행하고 있다. 국감장마다 CEO가 불려나가며 "기계적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애원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대관 업무를 맡는 이들은 어느 정당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여성 중심의 포털 커뮤니티 서비스 '미즈넷'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별도의 사이트를 열며 해방 공간을 찾았다. 이에 앞서 정부의 카카오톡 감청을 피해 러시아산 SNS로 망명을 떠났던 이용자들은 300만명에 이른다. 네이버가 기계적 중립을 꾀하면서 유튜브가 새로운 정치 공간으로 급부상한 것 역시 이같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이처럼 공론의 장에 제약을 가한다면, 국민들은 새로운 곳에서 의견을 개진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트래픽을 잃은 토종 포털은 맨주먹으로 구글-페이스북을 상대해야한다. 

인터넷 독립은 숭고한 것이다. 토종 인터넷기업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가총액 합계는 80조원에 육박한다. 고용규모는 수만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 개발자들로, 네이버-카카오를 떠난다면 고스란히 구글-페이스북으로 이직하게 될 것이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이용자들 스스로 포털의 목덜미를 내려놔야할 때다. 이제 우리 모두 '팀킬'을 멈추자.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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