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마감된 한국은행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 사업에 국내 주요 블록체인 기술 기업들이 대거 입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의 블록체인 계열사를 두고 있는 네이버 라인과 카카오는 물론 SK(주) C&C도 도전장을 던졌다. 다만 참여가 유력한 것으로 점쳐졌던 삼성SDS와 LG CNS는 주 제안사로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모의 실험 사업비는 약 50억원에 그친다. 사업비가 공개됐을때부터 금액이 너무 적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액수보다 시장을 선점한다는 차원에서 입찰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CBDC 관련 기술 능력이 중요한 이번 입찰에 블록체인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참여해, 사업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상당히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 능력에 90% 배점...꼼꼼히 본다
한국은행의 '입찰제안서 평가방안'에 따르면 기술 능력은 전체 평가점수의 90%를 차지한다. 입찰가격보다는 CBDC 모의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술 능력은 ▲전략 및 방법론 ▲기술 및 기능 ▲테스트·성능 및 품질 ▲프로젝트 관리 능력 ▲프로젝트 지원 방안의 5개 부문으로 구분하여 평가한다. 또 5개 항목 각각의 중요도를 감안해 개별 항목별로 점수를 배정한다.
가장 많은 점수가 배정된 항목은 '기술 및 기능(30점)'이다. 이 항목은 ▲아키텍처 요구사항 ▲기능 요구사항 ▲사용자 인터페이스 요구사항 ▲데이터 요구사항 ▲시스템 장비 구성 요구사항 ▲보안 요구사항 ▲CBDC 활용 시나리오 제언으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로 ▲클라우드 기반 개발 및 검증환경 구축 ▲가상자산 결제시스템 설계 ▲분산원장 규격 ▲CBDC의 제조·발행·환수·폐기 기능 ▲사용자인터페이스(UI)·사용자경험(UX) 등을 포함한다. 한국은행은 이를 포함 총 66개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하위 항목을 둬 기술력을 꼼꼼하게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를 바탕으로 제안서 평가위원은 각 평가항목별로 A~F로 등급을 평가, 각 제안서의 최종 기술 능력 평가점수는 세부 항목별 점수를 합산해 산정한다. 종합평가점수는 기술 능력 평가와 입찰가격 평가를 합산해 협상적격자를 선정한다. 협상적격자는 한국은행이 제시한 최소 요구 조건을 충족한 제안사 중 입찰가격이 사업예산 이하인 업체로서 기술 능력 평가점수가 배점의 85%(76.5점) 이상인 업체를 협상적격자로 선정한다.
블록체인 기업 격돌...승자는?
이번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 모두 꾸준히 블록체인 사업을 이어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먼저 카카오의 블록체인 전문 계열사 그라운드X는 지난 2018년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했다. 클레이튼 메인넷을 출시하고 CBDC부터 대체불가능한토큰(NFT)까지 블록체인 전 영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그라운드X는 이더리움 개발사 컨센시스(ConsenSys)와 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컨센시스는 이미 싱가포르, 호주, 태국 등 주요국의 CBDC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는 "기술 협력을 통해 클레이튼 성능을 대폭 강화해 CBDC를 발행하고 유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지난 2018년부터 블록체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라인은 블록체인 메인넷인 '라인 블록체인' 출시하고 일본에서 사업을 확장중이다. 라인도 지난 5월 글로벌 블록체인 결제 플랫폼 서비스 회사 누리플렉스와 중남미 및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양한 지역의 CBDC 플랫폼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최근에는 CBDC에 최적화된 '라인 파이낸셜 블록체인(LINE Financial Blockchain)' 플랫폼에 대한 소개 홈페이지 및 오픈소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더불어 SK(주) C&C도 올해초 블록체인 서비스 플랫폼 '루니버스' 운영사인 람다256과 '블록체인 엔터프라이즈 시장 확대를 위한 사업 및 기술 협력 추진 MOU'를 체결했다. 또 최근 '제로페이'를 서비스하는 한국간편결제진흥원과 손을 잡고 한국은행 CBDC 모의실험 입찰에 참여했다. SK C&C 관계자는 "이번 입찰에 참여한 것이 맞다"며 "한국간편결제진흥원과 협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빈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교수는 "한국은행은 이번 사업을 통해 CBDC를 발행하겠다는 것 같지는 않다"며 "먼저 연구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기업들이 CBDC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월렛 전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BDC가 들어갈 지갑(월렛)을 선점하고, 이를 통해 해당 분야에서 타 기업을 기선제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연구과제이긴 하지만 한국은행, 즉 중앙은행에서 하는 블록체인 사업인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SI 업체 빅3 가운데 SK(주) C&C만 주 제안사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참여가 유력해보였던 삼성SDS와 LG CNS는 주 제안사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삼성SDS와 LG CNS도 주 제안사 가운데 일부와 협업하는 형태로 사업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성우 기자 voiceacto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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