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포켓몬 고(GO)'라는 게임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보이는 가상의 캐릭터 '포켓몬'을 잡기 위해 사방을 휘젓고 다녔다. 심지어 희귀한 포켓몬을 찾기 위해 울릉도로 떠나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상 캐릭터들이 이젠 현실에서 살아 숨쉬듯 진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융합된 '메타버스'가 혁신 트렌드로 떠오르며 디지털 '인싸', 이른바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많은 팔로워와 팬을 거느리는 것은 물론 광고와 인터뷰, 심지어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이미 광고계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로 낙점했다.
'라방'으로 집들이 하고 '먹방' 광고 모델도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라인프렌즈 'BT21' 캐릭터이자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꼽히는 '치미(CHIMMY)'는 첫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1만8000여명의 팬들이 접속해 치미를 기다렸다.
화면이 켜지고 난 후 등장한 치미는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으로 전세계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또한 '랜선 집들이'를 해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낮잠을 자는 슈키(SHOOKY)와 알제이(RJ)가 먹다 남긴 나쵸를 보여주는 등 집안 곳곳을 보여주며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했다.
특히 첫 라방이라는 컨셉에 맞게 카메라를 거꾸로 들고 있거나 라이브방송을 종료하는 법을 몰라 팬들에게 나가달라고 하는 등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같은 BT21 캐릭터인 '알제이'는 지난해 '먹제이(MUK J)'란 부캐로 우동 먹방을 촬영해 조회수 500만회를 돌파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이마트 피코크 모짜렐라 크리스피 핫도그' 모델로 발탁돼 광고계약을 맺었다. 해당 영상은 공개 2주만에 조회수 100만회를 돌파했다.
라인프렌즈는 최근 버추얼 인플루언서 활동을 더 공격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오픈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BT21 캐릭터들이 직접 셀피나 쇼핑·먹방 인증사진, 운동하는 모습 등 일상생활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라인프렌즈 측은 "단순히 캐릭터 디자인을 개발해 상품이나 서비스에 넣어 판매하는 것을 넘어 스토리텔링 기반으로 캐릭터별 세계관을 꼼꼼히 설정했다"며 "메타버스 기반의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대에 발맞춰 BT21이 자연스럽게 버추얼 인플루언서로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왔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의 버추얼 크리에이터인 '세아' 역시 가상세계에서 연예인 못지 않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 게임사 스마일게이트가 만든 인공지능 유튜버 세아는 유튜브 채널 '세아 스토리'로 구독자 7만명 이상을 거느린 디지털 인플루언서다.
최근 세아의 공식 틱톡 채널에 올라온 '스우파 딥러닝 영상'은 곧바로 12만7000뷰를 돌파했다. 세아는 '스우파 노제님 안무 딥러닝 1트'라는 코멘트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엠넷의 예능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에서 화재가 된 안무를 소화했다. 지난 8월 틱톡 채널을 개설하며 남다른 춤실력을 선보였던 세아는 절도 있고 파워 넘치는 춤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며 틱톡커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아는 댄스에 진심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안무 외에도 다양한 얼굴 표정까지 선보이며 팬들에게 프로 춤꾼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세아의 팬들은 커뮤니티 상에서 '스우파에 노제가 있다면 우리는 세제가 있다' 등의 게시글을 남기며 세아의 활약에 힘을 불어넣어 줬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광고 시장의 미래
이렇듯 가상의 캐릭터들이 연예인 못지 않은 활동을 펼치자 국내·외 광고업계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광고의 미래'로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만든 '로지'는 6만명에 육박하는 SNS팔로워를 확보한 인플루언서로, 올 한해만 광고비로 1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로 등장하며 화제를 모은 뒤 반얀트리 호텔, 쉐보레, 구찌X삼성전자, 마틴골프 등 다양한 분야의 광고를 섭렵하며 대중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영원히 22살'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도 스토리텔링 면에서 연예인보다 MZ세대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간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해외에선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Brud)가 개발한 '릴 미켈라'가 지난 2016년 인스타그램에 데뷔한 뒤 30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대표적인 디지털 인플루언서로 꼽힌다. 캘빈 클라인, 샤넬, 프라다, 디올 등 유명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며 지난해에만 1000만달러(약 119억800만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지난 2018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발표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25인'에 방탄소년단과 함께 포함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디지털 인플루언서들이 광고 시장에서 인기를 얻자 유통업계도 직접 가상 모델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홈쇼핑 업계 최초로 가상모델 '루시'를 선보이며 '가상 쇼호스트'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CJ온스타일은 MZ세대 공략을 위해 가상 모델 '루이'를 활용해 상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사람 보다 낫네"
이처럼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의 저자 김상균 강원대학교 교수는 실존 인물 대비 '리스크'가 적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가 발생하며 개인별 정보소통량이 증가하다보니 실존인물이 과거 행한 잘못이 드러났다"며 "기업들도 초기 제작비용이 들지만 리스크가 적은 가상인간을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향후에도 논란없이 운영되기 위해선 '아실로마 AI 원칙' 같은 제작·활용에 대한 법제화 및 윤리규정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실로마 AI 원칙은 지난 2017년 스티븐 호킹, 일론 머스크, 알파고 개발책임자 데미스 허사비스 등 전문가들이 미국 캘리포니아 아실로마에서 만든 AI 연구에 대한 23가지 원칙이다. 이 원칙들은 연구이슈, 윤리와 가치, 장기 이슈 등 총 3개 범주로 구성돼 있다.
김 교수는 "가상인간의 제작과 활용에 대한 윤리규정이나 법제화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며 "더불어 홍보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