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의 성공적 기업공개(IPO)를 이끌어낸 류영준 카카오 대표 내정자가 결국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경영진 또는 이사회의 판단이 아닌 직원들과 주주들의 반발로 인한, 사실상 불명예 용퇴다. 류 내정자의 사퇴를 이끌어 낸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온'의 목소리에도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카카오는 10일 류 대표 내정자(현 카카오페이대표)가 자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공시했다. 카카오는 내부 논의와 절차에 따라 새로운 대표를 확정하는 대로 추후 재공시한다고 밝혔다.
앞서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이사회를 열고 여민수 현 카카오 대표와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를 공동 대표로 내정했다. 류 대표는 오는 3월로 예정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공동 대표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특히 류 내정자는 김 의장과 더불어 카카오톡을 키워낸 창업공신이자 정통 개발자 출신이라 내부에서의 기대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류 대표를 포함한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지난달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대표 자질 논란이 일었다. 류 대표를 포함한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은 상장 한 달만인 지난해 12월8일 주식 총 44만주를 대량 매도하며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류 대표는 지난달 8일 시간외매매로 카카오페이 주식 23만주를 매각했다. 1주당 매각 대금은 20만4017원으로, 총 매각 대금은 469억원이다. 이는 류 대표가 지난달 24일 행사한 스톡옵션 물량이다. 류 대표는 당시 1주당 5000원에 스톡옵션을 행사했는데, 이번 매도에 따른 매각 차익은 457억원에 달한다.
류 내정자를 따라 같은날 이승효 카카오페이증권 신임 대표(5000주), 이진 사업총괄 부사장(7만5193주), 나호열 기술총괄 부사장(3만5800주), 신원근 기업전략총괄 최고책임자(3만주), 이지홍 브랜드총괄 부사장(3만주), 장기주 경영기획 부사장(3만주), 전현성 경영지원실장(5000주) 등도 주식을 매각했다.
카카오 내·외부의 비판이 거세지자 류 내정자는 지난 4일 사내 간담회를 열고 "상장사 경영진으로서 가져야 할 무게와 책임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으며, 앞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류 내정자는 책임감을 느끼고 대표 내정자직을 내려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1월 들어 카카오 노조 '크루유니언'은 류 내정자의 용퇴를 촉구해왔다. 특히 최근 카카오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논란 확대를 피하고자 류 내정자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류 내정자의 자진 사퇴와 더불어 카카오 내부에서 촉발된 유연근무제 개편 가능성에도 귀추가 쏠린다.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에선, 카카오의 내홍에 대해 경영진의 스톡옵션 매도와 더불어 카카오가 추진하는 새 근무제를 갈등의 이유로 꼽는다. 재택을 중심으로 2년간 이어오던 유연근무제가 사무실 출근으로 전환될 기미를 보이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재택 대신 사무실 출근을 중심으로 한 근무제 개편(유연근무제 2.0)에 대해 직원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라며 "C레벨급 고위 임원이 출근제 개편의 이유로 타사의 사례를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이 오히려 논란으로 이어진 상황"이라고 귀뜸했다. 이어 그는 "유연근무제가 아닌, 우연히 사무실에 모두 모인 '우연근무제'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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