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워킹맘'이 가장 두려워 하는 방학이 됐어.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줘야 하는 공포의 방학. 게다가 하루종일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다양한 여가와 프로그램(?)을 짜야하거든. 아마 '라워킹맘'뿐만 아니라 모든 '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기일꺼야.
그래서 여름방학 때 아이들과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를 하나 들고 왔어. 사실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잖아. 자막을 읽을 수 있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아이와 보면 딱인 영화, 바로 '한산:용의 출현(한산)'이야.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순신 이야기
우선 이순신을 모르는 초등학생은 별로 없을거야. 역사를 배우지 않은 아이들도 이순신 이름은 알고 있더라고. 역사에 아무 관심조차 없는 '라떼워킹맘' 딸도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마치 친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처럼, 친근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더군.
이순신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니 군말 없이 따라나서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보며, 진짜 이순신이 대중적인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 이순신을 서사로 하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알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이순신 이야기인 '명량'이라는 영화를 재미없게 봐서 '한산'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어. 억지로 눈물이나 짜내지 않기를 바랐고, 아무리 상상력을 가미한다지만 역사 왜곡은 없기만을 바랐어. 나는 '명량'에서 그게 너무 불편했거든.
이보다 더 담백할 수 없는 애국심
나의 기우는 한산을 보는 내내 보기 좋게 빗나갔어. 우선 이순신을 너무 신처럼 그리지 않아서 좋았고, 감정 과잉이 없어서 좋았고, 개인적으로 너무나 궁금했던 '학익진'이나 '거북선'의 전투 장면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니, 가슴이 다 떨리더라고.
사실 일본군들이 이순신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하는데, '명량'에서는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더라고. 거북선도 분명히 상대가 두려울 정도의 활약이 있었을 것이고, 이순신의 병법 역시 놀라웠기 때문일텐데, 다른 콘텐츠들에서는 이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잖아. 그동안의 이순신을 소비하는 방식은 항상 '고뇌하는 영웅', '감정 과잉(?)의 영웅' 이런 느낌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번 한산에서는, 변요한이 연기한 일본 장수 와키자카가 더 많이 나오는 조금은 특이한 이순신 영화였지. '라떼워킹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출연진은 재미있게도 김성규가 연기한 '준사'였어. 일본 군인이었지만 이순신의 성품에 반해 '이중첩자' 역할을 한, 그동안 임진왜란을 모티브로 한 콘텐츠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였지.
이순신 이야기는 최대한 담백하게 그려졌고, 대신 그가 얼마나 뛰어난 전법을 가진 장수였는지가 제대로 그려진 영화이기에 왜 세계적으로 이순신이 최고의 해전 장군이라고 불리는지 알겠더라고. 영화 후반, 말로만 듣던 '학익진'을 눈으로 보는 순간 진짜 가슴이 뜨거워지더라.
상대가 눈치챈 작전을 역으로 이용해, 또다시 허를 찌르는 전술은 진짜 소름이 돋더라. 아군의 약점까지도 전술에 이용할 줄 아는, 이순신은 정말 명장 중의 명장이었어. 감정 과잉의 이순신이 아니라, 더욱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
압권인 해상 전투신,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다들 영화의 스토리에 감동해 있고, 함께 본 '라떼워킹맘' 딸도 기립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라떼워킹맘'은 기자잖아. 역사시간에 단어로만 들었던 '학익진'과 '거북선'을 실제로 구현해내고, 압도적이었던 해상 전투신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가 너무 궁금하더라고.
실제로 한산은 마지막 40분 정도의 해상 전투신이 다했다고 봐도 무방해. 그 전투신이 없었다면 한산 역시 그렇고 그런 이순신을 그린 영화로 끝났을 것 같아. 하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실제처럼 구현한 해상 전투신 덕분에 한산은 최고의 이순신 영화로 거듭난 것 같아.
'라떼워킹맘'의 기자정신을 발휘하게 만든, 몇 안되는 영화인 한산. 여름방학 때 부모님과 아이들이 손을 꼭 잡고 가서 봐도 좋고, 휴가 때 부모님께 보여드려도 효도할 좋은 영화라고 확신해.
이소라 기자 sora@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