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픽셀 폴드' 예상 렌더링 /사진=GSM아레나
구글 '픽셀 폴드' 예상 렌더링 /사진=GSM아레나


그동안 끈끈한 협력 관계를 과시하던 삼성전자와 구글의 파트너십에 금이 가고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스마트폰에 구글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의 '빙' 검색 엔진 탑재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가 하면, 구글이 직접 폴더블폰을 만들어 삼성전자와 시장에서 경쟁하려 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동고동락한 두 회사는 과연 정말 갈라설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삼성-구글 동맹에 금이 가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가 갤럭시 스마트폰의 기본 검색 서비스를 구글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의 '빙'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구글의 검색 엔진을 쓰는 대가로 구글에 매년 약 30억달러(약 4조원)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삼성전자가 빙으로 갈아탄다면 구글 매출에 크나 큰 타격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뉴욕타임스는 이 소식을 들은 구글 직원들이 '패닉'에 빠졌다고 전하며 "검색 시장 절대 강자의 첫번째 잠재적 균열"이라고 논평했다.

균열의 조짐은 스마트폰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오는 6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구글 I/O'에서 폴더블폰 '픽셀 폴드'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픽셀 폴드는 7.6형 내부 디스플레이와 5.8형 외부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으며, 최대 72시간을 지속하는 배터리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픽셀 폴드가 출시된다면 미국 시장에서 '갤럭시 Z 폴드' 시리즈와 직접적인 경쟁을 펼치게 될 전망이다.

제품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기 전에 픽셀 폴드에 대한 정보가 유출된 것에 대해 일각에선 구글이 검색엔진 교체를 검토 중인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펼친 노림수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신제품에 대한 정보 유출은 삼성이나 애플 제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지만, 이런 루머까지 나오는 건 그만큼 두 회사 간의 파트너십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얘기다.


하드웨어를 향한 구글의 야심

하드웨어를 향한 구글의 야심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구글은 2012년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직접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노렸지만 변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후 모토로라를 레노버에 헐값에 매각한 뒤 다시 2017년 대만 HTC의 픽셀 제조개발사업 부문을 인수하며 스마트폰 사업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6년 구글이 첫 픽셀 스마트폰을 내놓을 때만 해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최적화된 제품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지만, 막상 출시 이후에는 다른 제조사들 제품에 비해 특출나게 뛰어난 점이 없는 데다 가격도 비싸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지금까지 픽셀 시리즈가 구글과 삼성 사이의 큰 갈등 요인이 되지 못한 점도 시장에서 그다지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글 픽셀 생태계 제품들 /사진=구글 제공
구글 픽셀 생태계 제품들 /사진=구글 제공

하지만 2021년 자체 칩 '텐서'를 장착해 인공지능 기능을 강화한 '픽셀6'가 이전 시리즈를 모두 합친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구글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구글은 I/O 2022 행사에서 '픽셀7'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태블릿 등 모바일 제품을 대거 선보이며 하드웨어 생태계를 소개하는 데 공을 들였다. 삼성전자와 애플 같이 모바일 디바이스 생태계를 직접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애플이 부러운 구글

픽셀 시리즈는 순수한 버전의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에서 실행된다는 점에서 구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를 통해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 구글 포토, 구글 검색 엔진과 같은 자사의 소프트웨어 기능과 서비스를 직접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된다. 또 이를 통해 생성되는 이용자들이 데이터도 구글의 몫이 된다. 이런 픽셀을 통해 구글은 스마트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 이런 막강한 통제력을 갖춘 애플은 아이폰 생태계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 금융 등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검색과 유튜브 광고 수익에 의존하고 있는 구글로서는 좀 더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 마련이 절실한 상황인 만큼, 픽셀의 성장에 기대하는 바가 커지고 있다.

이런 구글의 전략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공유하는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만일 픽셀이 시장에서 점유율을 점차 확대하게 된다면 이는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하락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픽셀 폴드의 등장은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폴더블폰 시장에서 삼성과 구글의 주도권 다툼이 일어나게 됐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당장 픽셀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아성을 흔들 것이라 생각하긴 어렵다. 제 아무리 구글이라도 삼성전자 스마트폰 만큼의 제품 완성도와 글로벌 공급망 등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글은 픽셀로 일부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점유하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스마트폰 운영체제로 안드로이드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구글과의 협력을 포기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중요한 성장동력인 폴더블폰의 경우에도 새로운 폼팩터에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개발하기 위해선 구글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도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하는 구글과의 긴밀한 협업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구글 폴드의 등장 역시 삼성전자에게 득이 될 수 있다. 아직 폴더블폰 시장은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자릿수에 불과하다. 폴더블폰이 스마트폰의 대세로 자리잡기 위해선 시장에 더 많은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원하는 건 자신들이 개척한 폴더블폰으로 시장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것이며, 제품 간의 경쟁은 아마도 그 이후에 더 중요해 질 것이다. 삼성전자가 "애플이 폴더블폰을 만든다면 환영할 일"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글이 폴더블폰 시장에 진출한다면 삼성전자는 함께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다. 구글의 레퍼런스 제품으로 인해 폴더블폰에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진화가 가속화될 가능성도 크다. 또 구글의 하드웨어 사업이 성장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매출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구글 픽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텐서' 칩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더 큰 고객사를 두게 되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구글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당장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놓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제는 서로의 패를 유심히 살피면서 협력과 견제를 동시에 하게 될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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