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메타의 수장 팀 쿡과 마크 저커버그는 소문난 앙숙이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의 수장인 둘은 사용자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두고 계속해서 충돌해왔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018년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돌려 정치광고를 내보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이었다. 쿡은 이 때부터 페이스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페이스북에서 수천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까지 발생하자 본격적인 거리두기에 나섰다.
애플과의 악연 끊으려 '메타버스'로 승부수
쿡은 메타(페이스북)가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돈벌이를 한다고 저격했고, 저커버그는 애플이 시장 지배력을 악용해 파트너들을 억압하고 불공정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맞불을 놨다.
결과적으로는 애플의 승리였다. 애플은 지난 2021년 '앱 추적 투명성' 기능을 업데이트하며 다른 앱이 사용자의 데이터를 추적하려 할 때 추적 허용 여부를 사용자에게 승인받도록 했다. 이 정책은 개인정보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가 가장 큰 수익원이었던 메타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메타는 결국 2022년 2분기 사상 첫 매출 감소를 겪은 이후 계속해서 부진한 실적에 시달렸고, 주가도 폭락했다.
저커버그가 사명까지 바꾸며 메타버스에 집착한 건 애플에 대한 원한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모바일 시대 스마트폰이란 하드웨어와 앱 생태계를 장악한 애플의 정책 변경에 세계 최대 SNS인 페이스북이 한 순간에 추락하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저커버그가 아직 설익은 메타버스에 너무 앞서 투자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선점하지 못하면 지배당하는 냉혹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속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한 것도 이해가 된다.
최근 메타는 라이벌 '틱톡'을 견제하기 위한 숏폼 '릴스'가 자리를 잡으며 실적과 이용자수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메타버스는 지지부진 하지만 캐시카우인 광고가 살아나고 있고, 특히 최근 화두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으며 주가도 연일 상승세다.
정비를 마친 페이스북은 다시 역습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오는 6일(현지시간) 애플이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최초로 혼합현실(MR) 기기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한 발 앞선 1일(현지시간) 글로벌 1위 가상현실(VR) 헤드셋 '메타퀘스트'의 차세대 모델을 저커버그가 직접 소개하고 나섰다.
저커버그가 날린 '퀘스트3' 견제구
메타의 '퀘스트2'는 글로벌 판매량 1000만대를 넘어서며 VR 헤드셋의 대중화를 이룬 첫 제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덕분에 메타는 미국 가상현실 시장에서 90% 수준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대로 메타버스가 '차세대 인터넷'으로 제 궤도에 오른다면, 메타퀘스트가 '제2의 아이폰'이 될 것이란 기대를 할 만하다.
이런 메타가 애플을 견제하며 새롭게 내놓은 '퀘스트3'는 전작보다 40% 얇아졌고 해상도와 디스플레이가 크게 개선된게 특징이다. 퀘스트2가 잘 팔리긴 했지만 여전히 무겁고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에 신제품은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착용감을 개선했다. 여기에 차세대 퀄컴 칩셋을 사용해 그래픽 성능을 강화했고, 전면에 3대 이상의 카메라를 장착해 VR과 증강현실(AR)을 융합한 '혼합현실(MR)' 기기로 진화했다.
퀘스트3의 무기는 가격이 될 전망이다. 이 제품의 출고가는 499달러(약 66만원)로 알려졌다. 아주 저렴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앞서 내놓은 '퀘스트 프로'가 1499달러라는 높은 가격으로 외면을 받은 전적이 있어 가격 인상분을 최소화한 인상이다. 특히 애플의 새로운 헤드셋은 무려 3000달러(약 396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하다.
퀘스트3는 올 하반기 출시될 예정이다. 메타는 오는 9월 27일 개최하는 메타 커넥트 행사에서 퀘스트 3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정보를 굳이 먼저 공개한 건 명백히 애플에 대한 견제구로 풀이된다.
대중화 귀재 애플, 또 한 번 저커버그 발목 잡을까
메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헤드셋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대중화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왔다. 그렇게 선점한 시장의 선두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 현재 애플의 위상을 쌓은 비결이다.
이런 애플이 과연 오랜 기간 '유망주'에 머무르던 MR 헤드셋도 대중화시킬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VR 시장을 놓고 보면 애플이 메타에 도전장을 던지는 형태지만, 아직 이 시장은 스마트폰처럼 완벽히 대중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점유율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애플이 MR 헤드셋을 생태계에 잘 자리잡게 만든다면, 메타가 꿈꾸던 하드웨어 플랫폼 독립의 꿈은 한 번 더 미뤄질 수도 있다.
애플의 MR 헤드셋은 '리얼리티 프로' 혹은 '리얼리티 원'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스키 고글과 유한 디자인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전면에 카메라와 센서를 탑재해 가상과 현실 사이를 오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이 그동안 AR에 많은 공을 들여온 만큼, VR이 중심인 퀘스트와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아직 미지수인 완성도가 허들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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