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경 부회장'은 없었다. 그는 사장에서 곧바로 회장 자리를 꿰찼다. '오빠' 정용진 시대의 신세계가 아닌, 자신의 신세계를 열겠다는 정 회장의 야심이 느껴지는 행보다.
지난 30일 신세계는 정기인사와 더불어 계열분리를 본격화, 총괄사장의 타이틀을 9년째 이어온 정유경 사장에게 곧바로 회장 타이틀을 붙였다. 부회장을 건너띄고 곧바로 그룹의 대표격이 된 셈이다. 오빠 정용진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해 사실상 백화점의 주인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 특히 그는 1970년 이후 출생한 주요 재벌 대기업그룹 기업인 중 처음으로 여성 회장 자리에 올랐다. 범삼성가 3세 중에선 첫 여성 회장이다.
그는 지난 1996년에 조선호텔 상무로 입사, 이후 지난 2009년 신세계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줄곧 백화점 사업 부문을 주도해왔다. 특히 큰 갈등 없이 오빠 정용진 회장과의 교통정리를 통해 안정적으로 계열분리를 이뤄냈다는 평가다.
지난 1997년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기준 그룹 전체 매출이 약 71조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유통기업이다. 이명희 회장 체제로 이어오다 정용진-정유경 남매 경영 체제로 전환,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를 맡아 운영해왔다. 사실 신세계그룹의 계열분리는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이마트가 신세계에서 인적 분할, 이미 남매의 갈길은 정해져있었다. 지난 2016년에는 두 사람이 가진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을 맞교환, 얽혀 있던 지분 구조를 정리하기도 했다. 당시 정용진 회장은 신세계 지분 7.31%를 정유경 사장에게, 정유경 사장은 이마트 지분 2.52%를 정용진 회장에게 양도했다. 이명희 총괄회장과 정재은 명예회장의 지분 증여, 주식 추가 매입 등을 통해 양측의 갈등 없이 승계가 이뤄졌다.
다만 이를 신세계그룹이 13년 만에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이제 맏아들인 정용진 회장은 공식적으로 이마트를 통해 유통 3사와 복합쇼핑몰, 이커머스, 호텔, 건설을 맡게 된다. 주류와 야구단 역시 정용진 회장의 몫이다. 이커머스 자회사인 SSG닷컴의 경우, 이마트와 신세계가 양분하고 있지만 추후 이마트쪽으로 정리될 공산이 크다는게 유통가의 대체적 관측이다.
신임 정유경 회장은 신세계를 통해 백화점과 면세점, 패션·뷰티 등의 사업을 이끌게 된다. 두 사람의 중첩된 리더십이 정리, 각자의 색깔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정 회장은 이날부터 뷰티전략테스크포스(TF), 디자인 전략을 담당하는 비주얼전략TF 등을 신설, 본격적인 회장 경영 체제에 돌입한 모습이다.
현재 정용진 회장은 이마트 지분 18.6%, 정유경 회장은 신세계 지분 18.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모친 이명희 그룹 총괄회장은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각각 10.0% 보유하고 있다. 추후 승계와 계열 분리, 지배구조 개편 마무리 과정에서 이 총괄회장이 보유한 양사 지분이 각각 증여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계열 분리 완료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 3대 주주인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존 주주들의 승인 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계열분리 심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세계그룹이 삼성에서 계열 분리 됐을 당시에도 4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편 현재 이마트 부문의 자산총계는 약 43조원 규모, 백화점은 19조원 규모다. 지난 매출액은 이마트가 29조원, 백화점은 6조원 규모지만 영업이익은 백화점이 6000억원대, 이마트는 400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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