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40대 중반 아저씨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닐때 친구 집에서 '뿌요뿌요2'라는 게임을 처음 접했습니다. 아버지가 사준 컴퓨터로 '랩터'라는 게임도 해봤습니다. RPG만들기라는 게임을 통해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죠.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를 접하면서 머드게임 '단군의땅', '쥬라기공원'을 알게 됐습니다. 분당 10원 과금 외에 수십만원의 전화비 때문에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PC방을 처음 접했고, 커맨드앤컨터 레드얼럿, 워크래프트2 등을 친구들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PC방 '알바'였던 '데미소다' 형이 추천해준 '리니지'도 해봤습니다. 당시 레벨 제한이 18이었고, 단풍나무 막대를 사용해서 싸울아비 장검을 무한 복제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을에 '장로'가 나타나면 모든 사람들이 몰려들어 장로를 잡았죠.
그 이후엔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 카오스, 오디션, 카트라이더, 마구마구...PC방과 함께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본 스타리그 결승 임요환-장진남 선수의 대결은 저를 e스포츠에 매료되게 만들었죠. 그런 저의 첫 직업이 게임전문매체 기자였던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굳이 이렇게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지도 않을 제 얘기를 늘어 놓는 이유는 넥슨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영화 제작사 '사이드미러'와 손잡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3부작 때문입니다.
1부는 '세이브 더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PC패키지 게임의 태동을 이끈 국내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1부는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을 받아 사전 상영회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3회차 전석이 매진되며 게임과 영화팬들에게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죠.
그리고 넥슨은 지난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현장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2부 '온 더 라인' 사전상영회를 열었습니다. '온 더 라인'은 바람의나라와 리니지를 시작으로 90년대 후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온라인게임과 개발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게임산업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는, 운 좋게도 1편과 2편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1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게임 '신검의 전설'을 개발한 남인환을 비롯해 초기 패키기게임 개발자들의 얘기가 담겼습니다. 이원술, 서관희, 김동건, 이은석 등 당대 최고의 스타 개발자들이 등장해 과거를 회상합니다. 단군의땅의 장인경, 김지호, 바람의나라의 송재경 등의 모습은 당시 그 게임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2편에서는 왜 사람들이 온라인게임에 열광했는지에 대해 다룹니다.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게임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IMF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전국적으로 PC방이 성행하면서 게임산업의 전성기가 열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다큐에 등장한 게임 유튜버는 "컴퓨터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게임을 한다는 것 만으로도 설레였다"고 말했습니다. 게임 안에 경제 시스템을 도입한 '거상', 게이머에게 게임 내 권력을 쥐어준 '군주 온라인', 게임 내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연주하는 '마비노기'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지금 게임에서 '재미'라고 부르는 요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개발자들의 끊임없는 시도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다큐를 보는 동안 예전 10대~20대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가 게임을 왜 좋아했고, 게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게임이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 그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아직 편집단계인 3편은 한국 게이머들 특유의 게임문화를 조망한다고 합니다. 언제 공개될지 모르지만 저는 3편도 공개되면, 바로 관람하고 싶습니다. N차 관람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다큐를 제작한 박윤진 감독은 "3편 편집도 마무리 단계로 들어섰다. 1, 2, 3부가 모두 완성되면, 넥슨 측과 협의해서 최대한 많은 분들이 보는 방향으로 공개하려 한다"며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넥슨은 게임산업 역사를 기록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도에 위치한 넥슨컴퓨터박물관입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는 컴퓨터의 역사, 게임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즐길 수 없는 서비스가 중단된 게임도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어릴때부터 넥슨 게임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뽑아볼 수 있습니다.
올해 지스타에서도 넥슨은 게임 산업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줬습니다. 지스타 전시부스 중앙에 창립 30주년을 맞은 넥슨의 역사를 기록하고, 어떤 게임들이 있었는지 전시했습니다. 게임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전시하고, 개발진의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넥슨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김정욱 넥슨코리아 대표는 "이런 영화를 제작한 것은 넥슨이 가지는 책임감도 있었다"며 "그 책임감은 더 커져 가는 것 같다. 지금처럼 게임 주변이나 사회 속에 게임이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이런 넥슨의 행보는 지금은 고인이 된 故 김정주 창업주의 의지가 반영된 행보로 보여집니다. 고인은 생전에 여러차례 특정 게임만 기억하지 말고 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사가 많이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했었습니다.
곧 재창간 5주년을 맞는 테크M에게도 재창간 당시 축하를 전하면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욱 대표는 "개인적으로 1부에 우리 창업주에 대한 얘기가 더 많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며 "창업주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마음도 들더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내년 2월이면 故김정주 창업주의 3주기 기일입니다. 개인적으로 게임 산업을 일궈내고 게임산업 역사를 기록하려고 노력한 그를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다큐의 '외전'으로라도 그를 추억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산=허준 기자 joo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