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테크M
/사진=테크M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전향적인 결정을 선고했다. 탄핵과 위헌정당해산 등 중대한 권한을 가지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법률의 위헌성을 지적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판단의 근거 중 하나로 '과학적 사실'을 제시하고 있는바 이는 과학기술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과학적 '사실'과 '주장'의 경계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지 판단할 때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을 근거로 검토해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이번 결정의 전제가 된 기후위기의 위험성과 실재성도 헌법재판소가 이를 과학적 사실로 인정한 결과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후변화는 허상에 불과하다며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기도 하는바, 그렇다면 헌법재판소가 어떤 기준으로 과학적 '사실'과 과학적 '주장'을 구분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하여 전문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과학기술계에서 널리 인정되는 합의에 기대어 과학적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있고 국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합의'를 과학적 사실의 인정 기준으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이번 결정은 IPCC 보고서에 근거하여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며 대기 중 온실가스 축적에 비례하여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한다는 점을 인정하였고,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결정과 UNEP의 배출격차보고서도 과학적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근거로 받아들였다.

반면 청구인이 탄소예산 소진 시점에 대한 과학적 추정을 근거로 감축목표 상향의 필요성을 주장한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국가 간 공평한 분담 기준에 관하여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있고 국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합의가 존재하지 않'고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의 수치를 정할 때 '국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합의 또는 사법기관에서 원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만한 국내 기관의 공개적인 산출 절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감축목표가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기여해야 할 우리나라의 몫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하여 판단하기는 어렵다'라는 결론이다.

일응 합리적인 기준으로 보이지만, '국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합의' 또는 '사법기관에서 원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만한'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인지는 불명확하다. 헌법재판소는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에 참여한다는 점을 반영하여 IPCC,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UNEP 합의를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합의'로 인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과학기술계에서 널리 인정된 사실이나 합의가 국제기구의 선언으로 명확하게 공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신뢰할 만한 수준의 과학적 사실은 상당히 제한적으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국제환경법의 사전예방원칙과도 상충된다. 사전예방원칙은 '심각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피해의 위협이 있는 경우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예방적 조치를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는 반면, 헌법재판소는 국제정치적으로 공식 선언되지 않았다면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위헌의 근거로 원용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조차 '(감축목표 수치가) 위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일 뿐 최선이라는 취지는 아니'라고 언급된 것을 보면, 헌법재판소가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과학적 사실을 인정하여 기후위기의 불가역성과 위험성을 간과할 것이 우려된다.


녹색기술과 법제도의 선순환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할 때 과학적 예측, 산업에의 영향, 외교적 상황, 사회경제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정부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였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 등 관련 기술'과 '국내 산업, 특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업종 및 지역에 미치는 영향'도 감축목표를 설정할 때 고려되는 주된 요소인데, 실제로 소송 과정에서 피청구인은 우리나라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로 인하여 감축목표 달성에 큰 부담이 있다고 호소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도 이를 고려하여 정부의 재량권 범위를 넓게 인정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녹색기술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다. 녹색기술을 통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을 절감하면 정책입안 단계에서 정부의 부담이 완화되고, 감축목표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심사 과정에서도 입법자 및 정책입안자의 재량권 범위가 보다 엄격하게 인정되어, 장래 유사한 헌법소송이 제기된다면 보다 전향적인 판단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즉, 녹색기술은 그 자체로 기술적 혁신일 뿐 아니라 정책입안과 사법심사에서도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열쇠이다. 

이미 이번 결정을 통하여, 녹색기술이 법제도 마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에 대하여,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을 2026년 2월 28일까지 개선할 의무를 부과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의 취지를 반영하여 개선입법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앞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혁신이 기후위기 대응에 실질적·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기술혁신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과학기술계로서는 앞으로의 정책과 법제도에 기술혁신의 성과가 적절히 반영되도록 입법부 및 정책입안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필요적절한 연구 결과, 기술의 잠재력과 한계, 과학기술계 전반을 아우르는 일치된 의견 등을 활발하게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방대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법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기후변화와 관련한 과학적 사실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인정하는 한계가 우려된다. 한편 과학기술계는 입법부 및 정책결정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기술혁신의 성과가 제도적으로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이예인 알더블유이 리뉴어블즈 코리아 변호사
정리=남도영 기자 hyun@techm.kr


<Who is...>이예인 알더블유이 리뉴어블즈 코리아 변호사

이예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기, 수질, 폐기물, 기후변화, 화학물질 등 다양한 환경 분야 법률 업무를 수행하여 왔으며, 현재 탄소중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해상풍력발전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다. 환경·에너지 분야 외 입법·정책 및 비교법에 관심을 가지고 개별 행정 영역에 적용되는 법원칙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