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e스포츠 종주국이다. 게임으로 스포츠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고, 이를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하나의 문화로 만든 시작은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의 문화 중 K팝과 K콘텐츠보다 먼저 세계를 호령했던 것은 사실 e스포츠였다.
e스포츠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정식 스포츠로 인정 받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미 아시안게임은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받아들였고, 한국에서는 이제 e스포츠로 병역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철옹성 같던 올림픽 위원회(IOC)도 움직였다. e스포츠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검토하겠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국가 대항전으로 열리는 e스포츠 올림픽을 시범적으로 개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스포츠 종주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이같은 움직임이 뿌듯해야 하는데, 이를 웃으면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면 e스포츠가 세계의 중심 문화로 올라가는 순간에 대한민국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목'이다. e스포츠 문화 자체를 키워낸 것은 대한민국이지만, 아쉽게도 그 문화를 선도한 e스포츠 종목들은 모두 외국 게임이었다. 전세계적인 e스포츠 종목에, 대한민국 게임은 없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흐름이다. 향후 e스포츠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거나, 올림픽 형식의 국가 대항전 대회가 열리게 될 경우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종목을 가진 게임사이다. 즉 대한민국은 e스포츠 종주국이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반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이런 조짐이 보인다. 국가 대항전을 준비하는 기관들은 게임사와의 협의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최고의 인프라와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세계적으로 중요한 e스포츠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는 사라지도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배틀그라운드라는 세계적인 게임이 있고, e스포츠 종목으로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올림픽 정신과 '총싸움'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아, 크래프톤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은 모양이다.
이런 부분은 정부가 나서서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게임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기조는 '진흥'이다. 게임 산업을 키워 미래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굳건하다. e스포츠도, 국내 리그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 IOC 주도하에 국가대항전이 만들어질 때 '총싸움'이 왜 종목에 포함돼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크래프톤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
스포츠 외교를 통해 이 부분을 적극 어필해 한국 게임사가 개발한 종목이 국제 대회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적극 움직여야 한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처럼 말이다.
장기적으로는 e스포츠 종목으로 성장 가능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게임사를 적극 지원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e스포츠 리그를 개최하는 게임사에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