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워크에 '울고' 코로나에 '맞고'
사면초가 '비전펀드' 과연 진짜 위기일까?
닷컴 버블로 시장이 어렵던 시절, 알리바바의 마윈이랑 딱 5분 대화하고 우리 돈 200억을 투자했다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이후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로 대박을 내면서 59조를 벌었다는 건 정말 유명한 투자 스토리다. 손정의 회장의 10년 앞선 투자 안목이 유명해진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무려 100조 달러 짜리 ‘비전펀드’ 만들어서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소프트뱅크가 위기'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투자했던 위워크에는 소송까지 당했다. '1조엔(15조원) 영업 적자'라는 기사도 연일 쏟아져 나온다. 궁금해진다. 소프트뱅크 그리고 비전펀드의 미래는 정말 암울한가?
'통신회사'에서 '투자회사'로... 쏠쏠했던 비전펀드 수익
소프트뱅크는 미국 3대 통신사인 스프린트(티모바일과 최근 합병했다)와 일본 통신사 소프트뱅크, 야후 재팬을 갖고 있는 일본 회사다. 본업보다 더 유명한, 어쩌면 본업이 된듯한 100조 규모 비전펀드로는 투자를 한다. 비전펀드에서 투자한 회사만 88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쿠팡, 위워크, 우버 등 유명한 회사들도 있다. 사실 2018년에는 본업보다 투자로 돈을 더 쏠쏠하게 벌기도 했다. 총 영업이익 2조3500억엔 중 비전펀드 수익이 1조2600엔으로 약 50%를 차지했을 정도니 말이다.
우버, 위워크 실망에 코로나19까지... 사면초가 '소프트뱅크'
문제가 시작된 건 2019년부터다. 손정의 회장은 '공유경제'와 '인공지능'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여왔다. 먼저 문제가 터진 건 공유경제 쪽이다. 우버, 그리고 위워크가 문제였다. 투자한 금액만 11조원이었던 우버는 우여곡절 끝에 상장했지만 주가가 생각만큼 뒷받침되지 못했다. 2018년 적자만 3조원. 적자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최근 주가는 더 하락했다.
더 심각한 건 위워크다. 위워크에도 5조원 넘게 투자를 했다. 상장 전 기업가치 57조원(470억 달러)으로 인정받던 위워크는 적자는 둘째치고 경영자 자질 논란에 휩싸이며 상장에 실패한다. 최근 위워크가 손정의 회장을 고소한 것도 '약속했던 투자를 철회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13일에 발표한 2019년 매출 예측은 이런 위기감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매출이 9조6000억엔에서 6조1000억엔으로 떨어지고, 영업이익은 적자다. 적자 규모도 1조3500억엔으로 예측된단다.
사실 갑자기 나온 뉴스는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 이미 2004년 상반기 이후 15년만에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는 뉴스도 쏟아져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터진 코로나19로 공유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며 손실이 더 커진 것으로 추측된다. 투자 실패라면서 무디스는 소프트뱅크 신용등급을 두단계나 강등했다. 결국 보유하고 있던 알리바바 지분을 파는 등 위기 진화에 나섰지만 난관 돌파가 쉽지 않아 보인다.
비전펀드, 비전 있다? 없다?
'비전펀드 이대로 안된다' 이런 여론이 많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손 회장이 비전을 회복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기사 말미엔 이런 말을 남겼다. 손정의 회장이 예전엔 혁신적 기술로 인류에 도움을 주는 투자를 했다면 최근에는 너무 앱이나 서비스, 투자 수익률에 치중한 투자만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전펀드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더라도 투자자에게 현금(배당금)을 돌려줘야 하는 구조를 가졌다. 욕심이 과하면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 있듯이 수익률에 치중하다보니 '산' 대신 '나무'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블룸버그는 SMBC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서 '현재 경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밖에 없었던 손실'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염병 때문에 경제가 멈춘 상황에서는 승차 공유도 오피스 공유도 잘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이유에서다.
투자한 모든 기업이 힘든 건 아니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기업용 메신저 슬랙의 경우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사용량이 급증하기도 했다. 한 투자전략가는 "취약한 포트폴리오의 기업을 없애고 선두주자들과 함께 버티는 적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손정의 회장, 자산가치 하락 '처음 아니다'... 그의 비전은 어디에?
사실 그가 더 큰 방점을 찍어둔 건 '인공지능'이다. 이미 많은 인공지능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비전펀드 2호'도 AI에 주력할 계획도 밝힌 바 있다. 그는 미래의 인터넷을 인공지능으로 보고 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다. 자율주행차도 인공지능에서 응용된다. 모든 것이 인공지능에서 파생된다는 시각이다.
비전펀드는 '데이터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꿈꾼다. 소프트뱅크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이런 뜻이 잘 담긴 듯 하다. 모두 인공지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위워크나 우버 같은 공유경제 회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차나 사무실을 공유하면서 모여드는 플랫폼에도 인공지능이 숨어있다.
이쯤되면 손정의 회장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는 이미 2000년대 자산의 99%를 날린 경험이 있다. 놀라운 건 그 직후 알리바바에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0여년 후 막대한 투자수익을 손에 넣었다. 알리바바는 여전히 소프트뱅크의 주요 캐시카우다. 당시 인터넷 기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때 그가 한 말은 "나는 비전이 있다"였다.
지난 2월 실적 발표 때도 웃으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혹독한 겨울 뒤에 봄이 온다". 최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보고 느껴라"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은 "조류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조류가 그의 방향으로 달라졌는지 아닌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신지은 기자 sophie@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