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 님 /캐리커쳐=디미닛
최인아 님 /캐리커쳐=디미닛

 

내게 좋은 책이란 다음에 읽을 책을 알려주는 책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듯 모든 아웃풋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만들어진다. 저자 역시 선배, 동료, 혹은 후배들의 지식과 경험, 통찰로부터 시작한다. 책엔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그가 무엇으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아이디어를 발효시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책 속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책들 덕분이다.

나는 줄을 치며 읽는 편인데 저자의 뛰어난 생각이나 표현에도 밑줄을 긋지만, 그가 읽었다고 언급하는 책에도 줄을 긋는다. 그 책을 이어서 읽는 거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두어권의 책을 동시에 혹은 연달아 읽으며 저자간의 생각과 의견을 연결하고 비교해 보기도 한다. 같으면 같은대로 다르면 다른대로.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은 후자였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을 먼저 읽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신작이 기다려지는 저자였고 몇년만에 새로 낸 '타인의 해석'도 재밌게 읽었다. 물론 평소 내가 갖고있던 질문과 닿아있는 주제라 더 그랬다. 사람을 무얼 보고 믿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사람이 말하고 행하는 것 중에 진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어떻게 보고 판단해야 하는지 등등…

제일기획 시절 200여명 조직의 리더가 되고 또 400명 넘는 조직을 맡은 후 점점 더 중요해진 질문이었다. 함께 일을 하자면 사람을 믿어야 하는데 특히 서로 엇갈리는 두사람과 의견이 있을 때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기 어려웠고 그것을 알고 판단하는 것은 중요했다.

또 하나. 나와 얽힌게 없는 사람, 정보가 없는 사람에 대해선 아주 정확하게 그 사람의 면모를 파악하곤 했는데 함께 하는 일이 늘고 관계가 생기면 오히려 그 사람이 무얼 생각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금 하는 말이 우리 전체를 위해 하는 말인지 자신의 이익을 포장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친해질수록 점점 더 알기 어려웠고 무엇이 진심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의 안팎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니까.

책을 읽기 전 이런 질문이 내게 오래 있었으므로 '타인의 해석'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긴 글을 읽기가 점점 더 버겁다 여겼는데 아주 몰입해서 읽었다. 글래드웰은 우리가 타인의 진심과 실제를 자주 놓치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잘 속는 이유는 우리 뇌가 그 사람(Stranger)이 진실을 말할거라고 기대하도록 세팅되어 있고 속 마음은 투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또 다른 이유 하나도 덧붙이는데 내겐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을 실제와 다르게 왜곡해서 본다


많이 끄덕거리며 읽은 후 사놓은지 오래인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펼쳤다. 아, 여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단지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점이 다를 뿐. 스웨덴의 저명한 통계학자이자 의사인 한스 로슬링은 우리가 세상을 실제와는 다르게 왜곡해서 본다고 진단한다.

그 이유를 열가지쯤 말하는데 글래드웰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우리 뇌가 그렇게 디자인 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그러니까 개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자각과 분발이 더욱 필요한데) 우리 본능이 그렇다는 것을 직시하고, 세상을 사실에 입각해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내내 주장한다.

그럼 우리의 본능은 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도록 작동하는 걸까? 우리는 왜 그렇게 디자인된 걸까? 저자는 이유에 대해서는 드문 드문 말할 뿐 명확히 설명하진 않지만 이렇게 짐작해 본다. 우리 조상은 수십만년간 초원에서 지내며 온갖 어려움을 뚫고 살아남아 지금의 우리로 진화했는데, 이 허약한 몸을 가지고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에게 잡아 먹히지 않아야 했고, 갑작스런 기후변화도 견뎌야 했으며 굶주림도 이겨내야 했다.

사방천지에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이었는데 그런 일들은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긴 시간 숙고할 겨를이 없었을 터였다. 또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도 끊임 없이 판별해야 했을 거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언제나 그렇듯 우리를 지금 여기에 데리고 온, 혹은 성공을 안겨준 모든 것이 앞으로도 쭉 함께 가거나 미래에도 성공 방정식은 아니어서 늘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재구성 해야 하고 벼려야 한다.

우리는 늘 문제와 도전 속에 산다. 해법은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므로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이냐를 알아차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본능을 거슬러 더더욱 애써야 할 수밖에. 내 안에서 두려움이 올라오거나 마음이 급해질 때 혹은 덥석 진실이라 믿고 싶어질 때 나의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 지금 이 생각과 마음이 나의 뇌가 세팅된대로 인식하기 때문은 아닌지부터 점검해보면 되겠다.


의심보다는 믿는 것이 대체로 승률이 높다


두 저자가 전하는 굿 뉴스가 있다. 우선 자기 자신부터 들여다 보며 내가 하고 있는 인식을 의심해 볼지언정 의심보다는 믿는 것이 대체로 승률이 높다는 것, 우리 인간은 의심보다는 신뢰에 바탕해 여기까지 왔다는 메시지. 'Factfullness'의 저자 식으로 말하면 뉴스에서는 끊임 없이 이 세상의 어두운 면을 발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

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글래드웰 책의 제목은 ‘타인의 해석'이고 여기서 ‘타인'은 'stranger'의 번역이다. 그런데 제목에서는 'Stranger'를 타인으로 번역했지만 본문에선 '낯선 사람'으로 주로 번역했다.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하며 읽었다. 또 'Factfulness'는 번역하지 않고 영어 제목을 그대로 썼다. 풀이하자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 혹은 '사실에 근거해 생각하고 행동하기' 쯤이 될 것 같다.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우리 말의 형용사는 발달했지만 개념어는 약한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그래서 번역서의 경우 원서외 비교해 보면 대개 페이지 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오리진이 약해서가 아닌가라고 짐작한다.

왜냐하면 오리진이란 그 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 시작점인데 그것들은 새로운 관점, 새로운 개념에 기반한다. 우리는 팔로어(Follower)로서의 세월이 길었고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낸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개념이 약한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며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나와 같은 질문을 품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글=최인아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Who is> 최인아 님은?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광고 일을 오래했다. 현재 선릉과 역삼 GFC에서 '최인아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혼자의서재'와 '최인아책방 북클럽'도 진행하고 있으며, 책·강연·콘서트 등을 통해 독자에게 지적이고 우아하며, 충만한 시간을 선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