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를 단순히 문화 콘텐츠로 보는 것이 아니라, 4차 산업 혁명을 이끌 핵심 산업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 e스포츠 업계에서도 수많은 수치로 증명된 산업으로서의 e스포츠 가치를,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시킬지 고민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e스포츠가 진짜 산업으로 인정 받는 일은 아직 멀고도 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수의 끝판왕(?)으로 평가 받는 우리나라 공식 기관에서 가장 먼저 e스포츠의 산업적인 측면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곳이 등장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e스포츠 업계보다도 더 발 빠른 행보입니다.
남다른 시각으로 e스포츠를 바라보고 있는 곳은 바로 경기도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산업에 이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성남 시장이었던 이재명 도지사가 '판교'로 몰려든 게임사들을 관심 있게 지켜봤고, 그로 인해 파생된 e스포츠 산업 역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결과인 듯 합니다.
이재명 도지사의 특명(?)을 받은 경기도 경제실 임문영 미래성장정책관은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온라인 1세대였던 임 정책관은 나우콤(현 아프리카TV) 등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선도하는 기업에 종사하면서 한국의 발전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향후 미래 가치에 대한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정치외교학과 학생이 컴퓨터 학도가 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입니다.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학교를 잘 다니던 그가, 지금은 전혀 상관 없는 컴퓨터 공학도가 된 사연 말입니다. 누가 보면 위인전에서 인용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정도의 반전입니다.
문과에서 이과로, 그것도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 곳에 그가 관심을 가지게 된 사연을 그는 '행운'이라고 말했습니다. 깨어있는 지도자를 만난 것이 첫번째 행운이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길에 우연히 산 책을 만난 것이 두번째 행운이라고 말입니다.
"당시 컴퓨터 한대가 500만~600만원 정도 했습니다.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이셨지만 기술 부분에 관심이 많으신 교수님이셔서 학과 사무실에 컴퓨터를 가져다 놓으셨어요. 처음엔 신기했는데 만지면 만질수록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내려가는 길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책을 한권 샀거든요. 권력이동(Power Shift)이라는 지금도 유명한 저서죠. 이 책을 읽고 난 뒤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후 서울로 와서 컴퓨터 공학도처럼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수님과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임문영 정책관은 정치나 외교를 하고 있었겠죠.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을 임 정책관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 도지사로부터 시작된 e스포츠 사랑
경기도가 처음부터 e스포츠에 관심이 높았던 것은 아닙니다. 성남시장 시절, 판교에 많은 게임사들이 들어오고 e스포츠라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이재명 도지사가 새로운 육성 산업으로 e스포츠를 지목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재명 도지사님이 성남시장 시절에는 e스포츠를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 현상으로 봤다면 지금은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e스포츠를 콘텐츠가 아닌 미래성장산업과에서 다루게 된 것이고요.
저 역시 e스포츠는 이제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미래를 이끄는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산업으로 육성하고 접근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기도는 앞으로도 e스포츠를 산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생각입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e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e스포츠를 콘텐츠의 한 종류로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콘텐츠 진흥원 등에서 e스포츠를 다루는 것이겠죠. 경기도는 e스포츠 종사자들보다도 한발 빠르게 e스포츠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보수적인 집단이라 생각되는 행정부가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단순히 도청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e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서, 남들 다하니까 하는 그런 차원에서 e스포츠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재명 도지사님부터 이미 e스포츠는 미래산업이라고 판단하고 있고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길을 경기도가 앞장서고자 합니다."
프로게이머 재취업 교육-아마추어 유망주 지원 사업
경기도는 현재 프로게이머 및 아마추어 게이머들의 재취업 교육 및 아마추어 유망주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e스포츠 업계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지자체가 직접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기도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작년부터 프로 및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직업 전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데이터 분석가 과정, 스트리머 양성 과정, 콘텐츠 제작자 과정 등 총 3개 과정에서 60명을 교육하였고 올해는 데이터 분석가 과정을 제외한 2개 과정에서 54명을 대상으로 교육 중에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온라인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경기도는 대신 유명 스트리머와 영상 편집자 등을 강사로 모집해 수강생을 지도하는 등 e스포츠 선수들이 은퇴 이후 연관된 다른 직업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비용이 들지만 민간기업에서는 하기 힘은 아마추어 유망주 육성 사업 역시 경기도가 도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프로 시장 또한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아마추어 유망주 선수 26명을 선발해 기량 향상, 홍보, 교육, 장비, 법률, 트라이아웃 등을 지원해 국내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제 11회 대통령배 KeG 4위, 한화생명 e스포츠 고교챌린지 우승 등을 일궈냈죠. 그 덕에 6명이 프로구단에 입단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올해는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카트라이더 등 세종목에서 26명을 선발했습니다. 이번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e스포츠와 정치, 정책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스포츠와 정치 그리고 정책이 무슨 관련이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산업은 정부의 지원이 중요합니다.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산업에서는 더욱 그러하죠.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사업이 정부의 규제 정책 하나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우버 택시나 '타다' 사업이 그랬죠. 그리고 최근 블록체인 업계도 정부의 규제안 발표로 시장이 많이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미래 산업이라고 포장하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위원 즉 정치자들이 만드는 법은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게임이나 e스포츠 산업은, 아직까지 학부형들에게는 '기피 대상'인 것 같아요. 내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아직 흔치 않으니까요. 인식 변화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요.
그래서 행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규제보다는 미래 산업을 이끌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육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경기도뿐만 아니라 많은 지자체가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경기도는 앞으로도 e스포츠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e스포츠 전문가는 아니지만, 하이텔과 나우콤(지금의 아프리카 TV), iMBC를 거친 디지털 전문가 임문영 정책관은 그렇게 새시대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산업에 뛰어든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다른 사람이 아직 발을 들이지 않는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더 고민해봐야겠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먼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를 향한 경기도의 진심에 관심 가져 주시고 많은 응원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