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내권 글로벌 에너지 프라이즈 심사위원장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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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40개 주요국 기후정상회의에서 주요국들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대폭 상향 조정해 발표했다. 미국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50~52%, 영국은 2035년까지 1990년도 대비 78% 감축을 제시했다. 또 유럽연합은 당초 40% 감축 목표치를 55%로 높였고, 일본은 46%를, 캐나다는 40~45%를 감축 목표치로 발표했다.

이들이 조기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표명하며 의욕적인 자발적 감축 목표치를 선언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이런 의욕적인 목표치들이 과거 실패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몇 가지 교훈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탄소 누출'과 '국내법 적용'을 보라

기후변화 목표치 설정의 첫 번째 교훈은 '탄소 누출(Carbon Leakage)' 문제다. 현재 발표되고 있는 목표치들은 생산 기준 목표치인데, 문제는 특정 국가의 생산기준 감축 목표치가 지구 차원의 총량 감축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철강 산업이 중국이나 한국으로 이전되면 유럽의 생산기준 배출량은 감소하지만, 중국과 한국에서 배출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풍선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강, 시멘트, 등 주요 에너지 집약 산업별 탈 탄소 로드맵에 대한 국제적 합의와 함께 소비기준 감축 목표치 설정이 필요하다.

두번째 교훈은 자발적 장기 목표치들이 실제로 이행 되기 위해서는 국내법으로 구속력 있는 산업 부문별 세부 감축 이행 조치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치 없이는 감축 목표치 이행을 담보할 수 없다.

1992년에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은 2000년까지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수준으로 안정화 시킬 것을 규정한 바 있다. 또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2012년까지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서 5.2% 감축하기로 규정했다. 이들 목표치는 국제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적 의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구속력 있는 국내법적 강제 이행 조치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말,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 총회에서 130여개국이 넘는 선진국과 개도국들은 2020년까지의 과감한 감축 목표치를 의욕적으로 서약한 바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당시 서약한 목표치를 2020년에 달성한 나라는 없었다.


'생산'과 함께 '소비'도 함께 고려해야

온실가스 감축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평가되는 영국의 2020년도 이산화탄소 배출은 1990년도 대비 51%나 감축됐다. 대단한 실적임이 분명하나 흥미롭게도 이러한 감축 수치는 영국의 국내총생산(GDP)기준으로 한 것으로, 영국이 엄청난 양을 수입해 소비하는 다양한 공산품에 내재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포함한 총소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기준으로 1990년 수준에서 19% 줄었을 뿐이다. 이 마저도 2007년까지는 오히려 12%가 증가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로소 감소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수입 소비재에 내재된 이산화탄소의 1인당 배출량은 1992년 1.7톤에서 2007년 5.1 톤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배출량이 대폭 감소했다는 것은 영국의 온실가스 감축이 상당 부분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금융 등 서비스 지식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 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풍력 위주 에너지 전환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덴마크의 경우에도 국내총생산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기준으로 1990년 대비 40% 감축됐으나, 국내총소비 기준으로는 2018년에 16% 감소했을 뿐이다.

영국이나 덴마크가 국내총생산 기준 40~50%의 배출량을 감축했다고 지구 차원에서 그만큼의 배출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영국과 덴마크가 담당했던 생산부문 배출량을 지구상의 어느 다른 나라가 대신 배출했기 때문이다. 지구 차원에서의 배출 총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종 소비 기준의 배출량이 감소해야 한다. 영국과 덴마크의 실질 감축 기여는 생산 기준의 40~50%가 아니라, 소비 기준의 16%와 19%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기후악당?

중국은 2006년도부터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추월해 현재 세계 1위 배출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미국의 거의 2배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가 가장 높고, 1인당 배출량도 2016년 12.1톤으로 미국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대로면 2030년에는 미국을 추월해 10대 선진국 중 1인당 배출량 1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보도 되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한 것은 상당 부분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국들이 선도하던 조선, 철강, 중화학 에너지 집약 산업이 대거 이전된 풍선효과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석탄 위주 에너지 구조 등 문제는 있지만,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값싼 화석연료인 석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즉, 우리의 과도한 석탄 의존도 결국은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 구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선진국 중에서도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의 석탄 비중이 높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한국이나 중국의 생산 부문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에너지 비율의 제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기후악당'이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는 것 만은 아니다. 중국이 생산하는 상당 부분의 공산품들이 싼값에 수출돼 선진국 소비자들에 의해 최종 소비되는 상황에 생산기준 배출량을 근거로 중국에 손가락질을 하는 것 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중국의 2018년도 이산화탄소 배출량 99.6억톤 중 실질적인 중국 내 소비에 따른 배출량은 89.6억톤이며, 10억톤은 해외로 수출됐다.


'지구 차원'의 감축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생산기준 감축 목표치 기준에 의해 지구 차원의 배출 총량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주요 개도국들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생산부문 에너지 효율이 동시에 향상돼야만 한다. 생산 부문의 에너지 효율 향상이 주요 경제국에 한정 되어서는 탄소 누출만 촉발 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철강산업이 고가의 탈 탄소 기술 채택으로 원가가 상승하면,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더 싼 가격에 수출하는 여타 개도국들의 철강 생산이 늘어나게 될 소지가 크다.

물론 탄소 누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 국경세'가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개별 국가들이 사후에 도입하는 일방적인 조치여서 국제적인 협력 보다는 무역 분쟁과 갈등을 촉발할 소지가 크다. 따라서 개별 국가들이 각 국가별로 감축 조치를 취한 후 사후에 각국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도입해 갈등을 조장하는 일방적인 탄소 국경세 부과 보다는, 주요 에너지 집약 업종별 2050년까지의 탈 탄소 로드맵의 합의를 추구하는 사전적인 국제적 협의가 보다 바람직하다.      

아울러 지구 차원의 총량 감축을 담보하기 위해서도 현재의 생산기준 감축 목표치를 소비 기준 목표치로 전환하는 방안이 고려 돼야 하며, 각국이 발표한 '넷제로(Net Zero) 2050' 목표치를 이행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국내 이행 조치들도 반드시 국제적으로 공표·서약 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글=정내권
정리=남도영 기자 hyun@techm.kr


<Who is> 정내권 글로벌 에너지 프라이즈 심사위원장은?

정내권 위원장은 초대 기후변화대사, UN ESCAP 환경개발국장, 유엔사무총장의 기후변화 수석 자문관, 외교부 국제경제국장 등을 역임한 환경외교 전문가다. 1990년대 지구환경 보전을 위한 공공기술이전을 제안하고, IPCC 기술이전 보고서에 책임 저자로 참여해 2007년도 IPCC가 수상한 노밸평화상의 사본을 받았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를 경제성장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녹색성장' 개념을 2005년 유엔 체제 내에서 최초로 주도했으며, 현재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2002년도에 설립해 '에너지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글로벌 에너지 프라이즈(Global Energy Prize)의 심사위원장으로 탈 탄소 에너지 전환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독자 여려분께 알립니다

지난 3월부터 테크M은 각 분야의 프론티어 역할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인류 생존의 문제인 기후변화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의제인 탄소중립에 대한 이슈를 살펴보는 '탄소중립과 혁신' 기획 연재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필진들을 통해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에 대한 국제적 의제와 기술혁신,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아젠다들이 제기됐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해 드렸길 바라며 '탄소중립과 혁신' 필진은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뒤 하반기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과 원고 작성에 수고해 주신 필진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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