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기준' 공개
상생 취지 불구하고 업계 "산업 특성 이해 못해" 지적
역차별에 이중규제로 산업 생태계 발전 저해 가능성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정보기술(IT)서비스 일감을 외부에 개방하도록 하는 '일감 개방 자율 준수 기준'을 공개했다. 그간 '일감 몰아주기'로 공정위의 눈총을 받아 온 삼성SDS, SK㈜C&C, LG CNS 등 그룹 내 IT서비스 계열사와의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고 중견·중소업체와의 상생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기업 생존은 물론 국내 소프트웨어(SW) 업계 경쟁력 전반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7일 공정위는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기준'을 공개했다.

공정위 측은 IT서비스 산업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합리적 비교·분석 없이 관행적으로 IT서비스 계열사를 대상으로 사업을 발주하고 재계약 하는 등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어 이번 기준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롯데쇼핑 ▲이마트 ▲삼성SDS ▲LG CNS ▲현대오토에버 ▲롯데정보통신 등 대기업집단 소속 주요 발주기업 및 IT서비스 기업 9곳이 참여했다.


공정위 "중견·중소기업에도 공정하게 일감 개방해야"

공정위가 발표한 기준안은 ▲절차적 정당성보장 ▲일감 나누기 확대 ▲거래 효율성 및 전문성 제고 ▲공정거래를 통한 상생 ▲거래 과정의 객관성·투명성 확보 등 5가지 기본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발주기업이 준수해야 하는 세부기준을 살펴보면 신규 일감을 발주하거나 기존 계약을 갱신할 경우 '합리적인 고려와 비교'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수의계약 대신 경쟁입찰을 우선 고려하고, 계열사가 아닌 외부 기업에 거래 조건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 또 발주 지침을 마련해 업무 처리의 적정성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기준안'/사진=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기준안
2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기준안'/사진=IT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기준안

IT서비스 기업들에게는 사업을 수주받은 후 타 업체에 일괄 하청을 맡기는 등 거래단계만 추가하는 방식을 지양할 것을 요구했다. 또 협력회사들과 공정거래 및 상생협력할 것을 주문했다.

과기정통부는 자율준수기준에 따라 일감이 개방될 경우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사업용 표준계약서'를 4종을 제시했다. 계약서는 ▲개발 구축 사업 표준계약서 ▲유지 관리 사업 표준계약서 ▲공급 구축 표준계약서 ▲유지관리 표준계약서 등이다. 대기업집단 발주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대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기준을 마련했다고 과기부 측은 설명했다.


IT서비스 업계 이중규제 우려 "산업 발전 저해 될 것"

공정위는 이번 기준안이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불이행에 따른 제재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 공정위는 이번 자율준수기준 마련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참여 기회가 확대돼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의도와 다르게 IT서비스 업계는 이번 기준안 마련이 산업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나온 결과물이자 이중규제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 핵심기술과 기밀사항을 다루는 대기업 IT서비스 산업 특성상 보안이 극도로 필요한 분야라 외부 기업에 내주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이미 대기업의 공공입찰이 제한된 상태에서 내부거래까지 제한되면 생존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특히 공정위는 향후 이번 자율준수기준에 적극 동참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용 표준계약서를 활용한 기업에게 공공SW 사업 입찰시 기술성 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업계는 이번 기준안이 사실상 강제적 성격을 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일감을 내놔도 대기업에서 활용하는 기술적 수준을 맞출 수 있는 IT서비스 업체는 사실상 외국계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 밖에 없어 상생 취지와 달리 결국 소수만 득을 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대기업 시스템통합(SI) 기업은 태생적으로 내부 데이터와 핵심기술을 다루는 조직인 만큼 일감 개방을 추진하는 자체가 아이러니"라며 "자율적으로 준수하면 된다고 하지만 기준안에 포함된 내용 중 일부가 공시사항과 기존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등 가산점 제도와 연동되기 때문에 이는 이미 강력한 규제라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 한쪽에서는 디지털 전환을 강조하고 SW경 쟁력 강화를 외치는 반면, 공정위는 사실상 규제를 마련하는 등 정부 기조가 방향성을 잃은 것 같다"며 "상생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정밀한 분석과 연구를 바탕으로 발전적 규제가 반드시 따르는 조치가 취해져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목소리를 좀 더 내줬으면 한다"며 "업계 발전을 위한 상생이 아니라 일부 기업만 특혜를 보는 역차별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기업들은 SW 원천기술을 보유한만큼 결국 기업의 발전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며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을 위해 일감을 몰아주게 되면 결국 전체 산업의 기술적 평균치가 낮아지게 돼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