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부터 화재까지...대기업도 예외없었다
쓴맛 본 만큼, 와신상담 기회로 삼아야
정부-국회도 관련 제도 개선 속도낸다

지난 2020년 이후 사실상 외부활동이 어려웠던 팬데믹은 올해 들어 진정되기 시작했다. 닫혔던 하늘길은 다시 열렸고, 기업들도 잇따라 출근 정상화를 외치며 팬데익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 2022년은 이른바 '엔데믹' 원년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유동성 축소 현상이 벌어졌고,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시계제로' 상황에 앞다퉈 지갑을 닫고 있다. 테크M은 엔데믹 원년을 맞은 지난 1년간 주요 테크기업들의 활동을 정리한다. 유례없는 위기 상황이 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팬데믹과 엔데믹 속에서도 존재감을 뽐낸 테크기업들이 내년에도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전화위복' 행보를 보이길 바라본다. <편집자 주>


"요즘 다들 혁신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올해 무슨 혁신이 있었던 거야?"

앞자리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친구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진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과 눈빛에 가득 서려있는 의문을 보고는 나름의 답을 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돌이켜보면 전세계적 감염병과 싸워온 지난 3년여간, 혁신은 곧 디지털전환(DT)과 동일시 돼왔다. 메타버스부터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다양한 분야에서 신기술과 서비스들이 쏟아져나왔고, 국가 및 기업의 생존은 기술력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그러던 중 올해 발생한 전국적 '먹통' 사태 및 대기업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 등 사건·사고들은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SW·보안 등 안정성을 담보하는 기반 기술이 바로 서야만 혁신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올해는 2023년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해였다.

지난 10월 화재가 발생한 SK(주) C&C 판교 데이터센터/사진=김가은 기자
지난 10월 화재가 발생한 SK(주) C&C 판교 데이터센터/사진=김가은 기자

해킹부터 화재까지, '쓴맛' 본 2022년

올해 정보기술(IT) 업계는 수차례 위기를 겪었다. 대다수가 DT의 근간을 이루는 SW 및 보안, 인프라 미흡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특히 그간 관련 기술 및 설비에 대한 투자를 잘하고 있다고 여겨졌던 국내 대기업들에서 이같은 사건·사고가 발생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지난 2월 카카오와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서비스 클레이스왑은 불특정 해커 집단으로부터 '보더 게이트웨이 프로토콜(BGP) 하이재킹' 공격을 받아 각각 서비스 장애 및 22억원 어치 가상자산을 탈취당했다. 

불과 한 달 뒤에는 해킹 그룹 '랩서스(LAPSUS$)'가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 기업 엔비디아(NVIDIA)에 이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공격해 스마트폰 소스코드 및 임직원 계정 정보를 빼돌렸다.

지난 3월 랩서스가 올린 LG전자 해시리스트/사진=랩서스 텔레그램방 캡처
지난 3월 랩서스가 올린 LG전자 해시리스트/사진=랩서스 텔레그램방 캡처

국민이 직접적 불편을 겪은 일도 발생했다. 지난 9월 개통된 보건복지부 '차세대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오류 탓에 업무 현장과 수혜를 받아야 하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안겼다. 현재까지도 조치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월에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카카오 대다수 서비스가 '먹통'에 빠지기도 했다. 양측 모두 문제가 있었는데, SK㈜ C&C의 경우 데이터센터 설계 및 설비 점검·준비 미흡, 카카오는 재해복구(DR) 체계 확립 미비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와신상담'으로 삼아 2023년 도약

업계에서는 이같은 사건·사고들을 단순히 시시비비를 가리고, 책임질 주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쓴맛'을 본 만큼, 이를 '와신상담'의 기회로 삼아 내년을 비롯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정부와 기업들은 빠르게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보안의 경우 기존 방화벽 중심의 경계형 보안을 버리고, 끊임없는 인증과 검증, 권한 차등부여 등을 통해 안정을 도모하는 '제로트러스트' 아키텍처를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클라우드를 포함한 SW의 경우 다소 홀대받았던 과거와는 달리 DT 구현 및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적 요소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데이터센터 설계 및 재난재해 발생시 대비에 대한 부분도 이제 하나의 역량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업계 관계자는 "2022년은 유난히 기술적 측면에서 일이 많았다"며 "기술적 혁신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수반된 일종의 과도기로 보고 있으며, 이는 향후 IT산업 전체를 발전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국회도 소매걷고 나선다

정부와 국회 또한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섰다. 과기정통부는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 중인 '디지털플랫폼정부'에 적용할 핵심 기술로 제로트러스트를 낙점했다. 또 '제로트러스트·공급망 보안 포럼'을 발족해 국가 표준화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 네이버 등 국민 다수가 사용하는 디지털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내년 1분기까지 수립할 예정이다. SK㈜ C&C에는 배터리 모니터링 시스템 및 소화 설비 구축, 물리적 공간 재배치 등 방안 마련을, 카카오에는 서비스 다중화 및 사고 발생 고지 체계, 피해 구제원칙 등을 요구했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사진=김가은 기자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사진=김가은 기자

국회는 이른바 '카카오 먹통 방지법'이라 불리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법 일부개정안 등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도 재난 수습·복구를 위한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을 수립·시행 의무가 부여된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나라가 세계 모범이 되는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SW역할이 중요하다"며 "정부는 튼튼한 SW 생태계 구축 및 민간 디지털 혁신 움직임이 지속력과 파급력을 높일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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