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한파 속, 구조조정 나서는 스타트업 수두룩
투자유치는 커녕,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
투자업계는 '기술'에 주목...내년엔 '옥석가리기' 본격화

지난 2020년 이후 사실상 외부활동이 어려웠던 팬데믹은 올해 들어 진정되기 시작했다. 닫혔던 하늘길은 다시 열렸고, 기업들도 잇따라 출근 정상화를 외치며 팬데익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 2022년은 이른바 '엔데믹' 원년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유동성 축소 현상이 벌어졌고,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시계제로' 상황에 앞다퉈 지갑을 닫고 있다. 테크M은 엔데믹 원년을 맞은 지난 1년간 주요 테크기업들의 활동을 정리한다. 유례없는 위기 상황이 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팬데믹과 엔데믹 속에서도 존재감을 뽐낸 테크기업들이 내년에도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전화위복' 행보를 보이길 바라본다. <편집자 주>


요즘 길에는 크게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거나 목도리부터 패딩, 장갑, 모자 등으로 중무장하고 불어오는 칼바람을 견뎌내거나. 이는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와 닮아있는 구석이 있다.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는 한기가 스미다못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유동성이 넘쳤던 지난해, '봄'을 만끽했던 때와는 달리 투자시장에 '삭풍'이 불며 자금줄이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넘어 아예 폐업하는 스타트업도 부지기수다.

이처럼 녹록치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패딩, 장갑, 모자 등 방한용품으로 중무장한 듯한 스타트업들이 있다. 바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이다. 벤처캐피탈(VC)을 비롯한 투자기관 또한 2023년 주요 투자처로 기술력이 있는 기업들을 꼽고 있다.


'와르르' 무너진 스타트업 생태계

넘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단기간 내 가파른 성장을 거둔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화된데다 기준금리 인상이 장기화되며 투자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친 탓이다.

이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한때 기업가치 1000억원을 달성했던 신선식품 유통 플랫폼 정육각은 이달 초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현금 유동성 위기에 처한 탓이다.

앞선 지난 4월 정육각은 초록마을 M&A를 위해 인수자금 900억원 중 약 500억원을 회사 보유현금과 차입금(370억원)으로 충당했다. 외부 조달 자금이 목표치보다 크게 낮았기 때문이다.

정육각 홈페이지 화면/사진=정육각 홈페이지
정육각 홈페이지 화면/사진=정육각 홈페이지

여기에 올해 대거 확충한 인력도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돌아왔다. 업계에 따르면 정육각은 지난 3분기까지 약 70억원을 인건비로 지출했다. 전년 대비 약 22억원이 증가했다.

위기를 맞이한 곳은 정육각 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수산물 당일 배송을 강점으로 내세운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 '오늘회'는 서비스 중단과 함께 전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한 바 있다. 또 유명 유튜버 450여명을 품으며 국내 최대 MCN으로 꼽혔던 샌드박스 네트워크 또한 구조조정과 함께 e스포츠 운영사업 종료, 커머스 부문 매각을 결정했다.

배달 대행서비스 '부릉', 새벽배송 등과 함께 인공지능(AI) 운송관리 솔루션 '부릉 TMS'를 개발·제공하던 메쉬코리아 또한 한때 기업가치 1조원으로 평가받았으나, 최근 자금 사정이 악화되며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섰다.

아예 간판을 내린 스타트업들도 부지기수다. 국내 1호 미디어 스타트업 '닷스페이스'를 시작으로 ▲모바일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유저해빗' ▲패션 플랫폼 '힙합퍼' 등이 대표적이다.


기술력 기준 '옥석 가리기' 본격화

다만 모든 스타트업들이 휘청이는 건 아니다. VC를 비롯한 투자사들은 오히려 경기침체로 '알짜배기'를 골라내기 수월해졌다고 판단 중인 것으로 보인다. 즉,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기준은 바로 '기술력'이다.

실제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 통합 플랫폼 '모두의 충전'을 운영하는 스칼라데이터는 최근 GS에너지로부터 3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또 디지털 신약 개발 스타트업 '갤럭스' 또한 지난 9월 21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엑스와이지 또한 자동화 푸드로봇 기술력을 인정받아 최근 100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 네이버와 카카오 또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스타트업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커머스와 콘텐츠 부문에서, 카카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주목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박재욱 컴업 2022 자문위원장(쏘카 대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왼쪽부터) 박재욱 컴업 2022 자문위원장(쏘카 대표),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제공

현재 네이버는 패션 콘텐츠 플랫폼 '온더룩', AI 마케팅 자동화 기업 '유니드컴즈' 등과 협력을 논의 중이다. 또 AI기반 오디오 솔루션 기업 '가우디오랩', 3D 패션 시뮬레이션 엔진 개발 기업 '지이모션' 등 콘텐츠 스타트업과 메타버스 사업 고도화를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카카오는 올해 투자한 43개 스타트업 중 16곳이 디지털 헬스케어 및 서비스 분야다. 앞서 카카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강화를 위해 카카오헬스케어를 신규 법인으로 분리한 바 있다. 또 12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도 참여하는 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VC들은 2023년 주요 투자처로 '기술'을 가진 회사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IMM인베스트먼트와 LB인베스트먼트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및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반도체, 등 테크 분야를 내년에 주목할 산업 키워드로 지목했다. 다올인베스트먼트는 블록체인 인프라 기반 웹3.0 스타트업을, KB인베스트먼트는 AI와 로봇 등을 꼽았다.

업계는 내년에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중앙은행 등 전세계 각국에서 긴축기조 유지를 선언해 유동성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5200억원이었던 중소벤처기업부 모태펀드 출자 예산 또한 내년에는 40% 축소된 3235억원이 될 예정이다.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생존'은 2023년에도 스타트업 업계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다.

김가은 기자 7rsilver@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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