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는 실력만 좋다고 무조건 '레전드'가 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스토리 라인이 탄탄해야 하고, 이슈거리가 생겨야 하며, 위기에서 팀을 구해내는 극적인 연출도 필요합니다. 다양한 상황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레전드'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카트라이더 리그에서는 몇 안되는 '레전드' 선수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최고는 문호준이죠. 물론 문호준은 우승 횟수만으로도 충분히 '레전드'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문호준에게는 다른 선수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그 '무언가'는 바로 '극적인 승부'에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문호준이 잠시 다른 종목으로 외도했다가 카트라이더 리그에 복귀하고 나서부터는 유독 '극적인' 장면을 자주 연출합니다.
그는 최근 쉽게 우승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승하거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유영혁과 0.05초 차이로 승리한 경기를 떠올리면 쉬울 것입니다. 원래 카트라이더는 소수점 첫번째 자리까지 표기됐지만 이 승부 때문에 소숫점 둘째자리까지 표기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카트라이더 드리프트 리그로 바뀐 뒤 문호준의 실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퇴를 선언한 뒤 1년을 쉬고 복귀했으니, 전성기 실력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의 '레전드' 기질은 어디 가지 않은 듯 합니다. 문호준은 개막전에서 아마추어팀에게 패한 뒤 또하나의 우승 후보인 성남 락스를 상대로 에이스 결정전에 출격해 개인전 디펜딩 챔피언 '루닝' 홍승민을 꺾고 팀에게 승리를 안겼습니다.
드리프트 리그에서는 '루닝'의 실력이 더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문호준의 승리는 더욱 극적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전드'는 이럴 때 승리를 하는 법입니다.
"스피드전을 쉽게 이이고 아이템전에서 패한 뒤 에이스 결정전을 치를 것이라 예상했는데 반대의 결과가 나왔어요. 당황하기도 했지만 어쨌건 승리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승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지난 개막전에서 아마추어 팀에게 패한 것이 정말 쓰라렸어요. 다행히 그 상황을 좋은 계기로 받아 들였어요. 오늘 패하면 2패로 정규시즌 순위 방어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 죽기살기로 덤볐거든요."
아마추어 팀과 상대했던 개막전에서 문호준은 에이스 결정전에 '가드' 최영훈을 내보냈습니다. '가드'의 경우 에이스나 러너(앞에서 달라는 포지션)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에이스 결정전 출격은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운동장 트랙이었기 때문에 딱히 뛰어난 선수가 있지 않았어요. 누구와 붙어도 승부는 5대5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어요. 모두 하고 싶지 않아 해서 '가드'가 나가게됐죠. 패했지만, 그 상황에서 나서준 것에 대해 동료들 모두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레전드'로서 문호준은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다른 종목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지만은 않았을 듯 합니다.
"카트라이더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올림픽이 추구하는 비폭력적인 게임이잖아요. 룰을 몰라도 모두가 볼 수 있고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정식 종목이 되면 대표로 나가고 싶고, 금메달은 무조건 딸 수 있다는 확신이 들거든요. 후배들에게도 꼭 그런 기회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문호준은 마지막으로 팬들의 응원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문호준은 "다음 경기가 강팀인 리브 샌드박스전인데 꼭 이길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며 각오를 밝혔습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