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애플했다. 애플이 인공지능(AI) 시스템 '애플 인텔리전스'를 들고 나오자 이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AI 지각생'이라 불리며 주춤했던 주가가 지난 10일 세계개발자대회(WWDC24) 다음날부터 급등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마이크로소프트에 뺏겼던 시가총액 1위 자리까지 탈환했습니다.
13일(현지시간) 애플 주가는 전일 대비 0.55% 오른 214.24달러를 기록하며 시총 3조2852억달러를 달성, 같은 날 시총 3조2820억달러를 기록한 마이크로소프트를 지난 1월 이후 5개월 만에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습니다.
애플 주가를 이끌고 있는 건 AI를 기반으로 아이폰 판매량이 다시 상승세를 탈 것이란 전망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은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 15 프로' 이상 기종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올해 출시될 '아이폰 16' 시리즈가 현재 가장 많이 사용 중인 아이폰 11·12·13 기종 보유자들의 교체 수요를 자극하며 '슈퍼사이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와우' 없어도 괜찮아…애플은 애플답게
애플이 AI 전략을 처음 선보인 순간에는 시장에서 '와우' 포인트가 없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미 발표 내용을 시장에서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천히 뜯어보고 나니, 애플이 "우리만 할 수 있는 AI"라고 자평한 내용들에 어느정도 수긍하는 모습입니다.
애플의 AI 전략은 ▲통합 ▲보안 ▲효율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메타처럼 생성형 AI 모델 개발을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자사 디바이스에서 구현할 AI 기능에 맞춤형으로 작고 효율적인 모델들을 만들어 온디바이스 기반으로 작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애플은 이런 생성형 AI 기능들을 음성 비서 '시리'를 비롯한 앱 생태계 전반에 녹아들도록 했습니다. 앞서 AI 디바이스 '래빗 R2'가 생성형 AI 기반으로 앱 내 동작들을 자연어로 컨트롤하는 '거대액션모델(LAM)'이란 개념을 내놓은 바 있는데, 애플이 이를 아이폰에 구현한 것입니다.
애플은 아이폰에 축적된 개인 데이터를 불러와 생성형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신 이런 데이터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철저히 신경썼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생성형 AI 서비스도 기기 내 개인 데이터를 불러오는 시도를 하지 못했는데, 자체 칩부터 운영체제(OS), 플랫폼, 앱 생태계까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애플만이 가능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민한 장사꾼 팀 쿡
스마트폰에서 생성형 AI 모델을 기기 내부에서 완벽하게 구동하는 데는 아직 성능 상 한계가 존재합니다. AI 기능들이 가장 최신 모델에만 적용된 것이 이런 허들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앞으로 AI 스마트폰은 더 강력한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탑재한 프로세서와 대용량의 램(RAM)을 탑재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품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되고, 매출 증대로 이어질 공산이 큽니다.
더 큰 AI 모델을 사용하려면 결국 클라우드 서버를 거쳐야 합니다. 애플은 자체 칩 'M' 시리즈로 구성된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사용자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는 구조로 AI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입니다. 다른 경쟁사들이 AI 모델 학습과 추론을 위해 엔비다아 칩으로 구성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짠돌이'로 알려진 팀 쿡의 경영 마인드가 엿보이는 전략입니다.
애플은 오픈AI와 제휴해 '챗GPT'도 아이폰에 탑재했습니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오픈AI에 사용료도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신 오픈AI는 수십억명이 사용하는 아이폰에 탑재됐다는 것만으로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글이 아이폰에 검색 엔진을 탑재하기 위해 매년 애플에 거액의 돈을 지불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용자가 챗GPT 유로 모델에 가입하면 애플은 앱 수수료까지 받게 되겠죠. 역시 장사 수완이 좋습니다.
계속해서 승승장구 할 수 있을까?
애플의 AI 전략은 참 애플답습니다. 스티브 잡스 시절 말고 팀 쿡의 애플 말입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새로운 기능은 없지만, 애플 디바이스에 가장 효율적으로 녹아들어 수익을 뽑아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증권사들의 호평을 받으며 주가가 상승하는 이유도 이런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타가 엄청난 AI 투자로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보이자 주가가 꺾인 것과는 정확히 대비되는 흐름입니다.
그렇다고 모든게 애플 마음대로 흘러갈까요? 앞서 오픈AI와 구글은 보고 듣고 말하는 AI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런 기능들이 제대로 구현되기 시작하면 스마트폰 대신 스마트 글래스나 다른 형태의 AI 전용 디바이스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애플은 이런 멀티모달 AI 서비스의 등장에 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계속 외부에서 힘을 빌려와야 한다면 혁신을 주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지도 모릅니다.
애플의 경쟁상대인 삼성전자는 전혀 다른 방향의 생태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출장길에 올라 메타, 아마존, 퀄컴 등 빅테크 수장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삼성의 강점을 살려 삼성답게 미래를 개척하자"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기술기업들과 손잡고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혁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AI 시대로 갈수록 한 기업이 모두 잘 하기는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고, 결국엔 더 많이 협업하는 자가 승리하게 될 것이란 전략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가 올해 AI 폰을 선도적으로 선보이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것도 이런 개방형 혁신의 효과였습니다. 자체 AI '삼성 가우스'와 구글의 '제미나이', 퀄컴의 칩셋 등을 빠르게 결합한 덕분에 성공적으로 AI 스마트폰 시대를 열 수 있었습니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내놓을 당시 메타나 구글, 넷플릭스 등으로부터 전용 앱을 공급받지 못한 바 있습니다. 강력한 하드웨어 플랫폼으로 앱 생태계까지 장악하고 있지만, 독단적인 정책으로 인해 파트너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AI가 또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지 가늠하기 힘든 만큼, 장기적으론 폐쇄적인 애플과는 상반된 유연하고 확장 가능한 삼성 생태계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