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위한 대규모 공청회가 열렸지만 찬성과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양측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패널들은 합리적 토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날선 표현이나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부는 이번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와 관련해 당장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을 도입할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가 열렸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강유정, 기획재정위원회 임광현,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전진숙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3개 상임위 소속 의원 4명이 공동 주최했다.
공청회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질병분류(ICD)에 등재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여부를 두고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며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WHO는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ICD-11을 발표했는데, '통계법'에 따라 이번 KCD 개정에 ICD-11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 이슈는 문제가 불거진 2019년 당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켰다. 이에 국무조정실이 민·관협의체를 꾸려 논의를 진행했지만 5년이 지난 현재까지 마땅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며 사회적 논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공청회는 질병코드 도입을 두고 찬성과 반대 입장을 보이는 전문가들을 초빙해 양측 입장을 들어보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찬성 측에서는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해국 카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반대 측에서는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장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참석했다. 하지만 상반된 입장을 가진 양측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도 다소 날선 표현으로 사안에 대한 입장을 드러냈다.
찬성 측, 게임 중독성·사행성 우려 강조...英·美 사례 언급도
찬성 측에서는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해 발생하는 사회적 담론과 관련해 게임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개인에 대한 측면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강조했다. 그간 질병코드 이슈가 이해관계자들 간 갈등으로 비춰지며 소모적으로 다뤄졌다는 이유에서다.
찬성 측 이해국 교수는 "(게임은) 일반적 상품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문화적, 산업적 가치 측면에서도 일반적 상품을 능가한다고 보지만 중독 위험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게임을 유해한 콘텐츠라고 하지는 않지만 게임 내 사행성 콘텐츠는 유해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며 "디지털 미디어가 가지는 부작용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교수는 "게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중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을 대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문체부가 운영 중인 게임과몰입 힐링센터 운영 등 현재의 체계만으론 충분하지 않기에 적절한 체계를 갖춰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공중보건체계의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이상규 교수는 반대 측에서 우려하는 사회적 낙인 효과 등에 대해 합리적인 진단 과정이 수반된다는 취지를 예시로 설명했다. 이상규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진단은) 게임에 대한 조절능력 상실, 게임에 대한 생각과 집착하는 부분, 일상에 문제가 생기는 부분 등 ICD-11 진단기준을 적어도 1년 이상 지속하는 경우 내릴 수 있는 것"이라며 "진단을 위한 여러가지 방법이 있고, 이에 맞는 치료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2018년 ICD-11이 나온 이후 진단툴에 대한 안정성 연구도 진행돼 왔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게임에 대한 국가적 접근은 영국이나 미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 측, 사회·경제적 영향 지적...진단 주체 따른 유병률 편차 도마에
반대 측은 질병코드 도입 자체를 반대하기 보다 도입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를 위한 담론의 장이나 관련 연구도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사례도 예시로 들었다.
박건우 뇌신경센터장은 "무조건적인 등재보다 등재에 따른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다"며 낙인효과를 중심으로 우려를 전했다.
박건우 센터장은 "(게임이용장애가) 공식 질병으로 분류되면 건강하게 게임을 이용하는 이들이 부당하게 평가받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ICD-10에서도 해로운 게임을 이용하는 상황이 정의돼 있는데 임상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굳이 다시 질병코드로 빼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 DSM과 WHO ICD 체계가 정신건강의학분류체계에서 가장 핵심이고, DSM이 ICD에 많은 영향 주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미국이 DSM에서 아직도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보며 (ICD체계를 반영한) 개정에 나서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문석 교수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WHO ICD-11을 KCD에 관행적으로 등재하기 보다 충분한 연구와 논의, 합의 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조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코드가 KCD에 등재됐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의학적 측면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또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며 "청소년의 80% 정도가 게임을 이용하는 상황에 사회정책적 합의나 인과적 관계 규명도 아직 부족하다"고 짚었다.
진단의 객관성 담보 문제에 대해서도 "메타연구에서도 최근 연구에 진단법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진단 대상이나 척도에 따라 유병률의 편차가 크다고 보고 있다"며 "청소년 게임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됐는데 정책적 측면에서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박현정 통계청 통계기준과장은 "내년 7월에는 KCD 9차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는 ICD-10이 기준이며 현행 국제기준인 ICD-11은 KCD 10차 개정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내년으로 예정된 KCD 개정이 사회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ICD-11 도입과는 별개라는 설명이다. 통계청은 현재 ICD-11 도입을 위한 번역 및 시스템 개발 연구 용역을 추진하며 충분한 준비를 이어갈 방침이다.
임경호 기자 lim@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