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협회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분류한 것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WHO에 촉구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분류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세계보건기구(WHO)에 제출했다고 12일 밝혔다.

WHO는 국가 간 건강 정보를 표준화하고 일관된 데이터 수집·보고·분석을 지원하기 위해 WHO-FIC(WHO Family of International Classifications)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플랫폼을 이용하면 누구나 국제질병분류(ICD) 체계에 대한 일부 수정, 추가, 삭제 등 개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의견서는 크게 3가지 관점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분류가 부당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우선 의학적 관점에서 게임이용장애는 특정한 게임이용행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ICD-11은 게임이용행동을 정의하지 않아 게임이용장애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짚었다.

또 게임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적 행동에 게임이용이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가 현재까지의 연구로는 불분명하다는 점, 문제적 게임이용은 1~2년 사이 자연적으로 해소되는 현상이므로 게임이용이 치료가 필요한 병적 중독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ICD-11에는 게임이용장애 외 도박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됐는데 게임이용이 도박만큼 위험한 행동인지, 다른 행동들은 게임이용과 비교해 확연히 안전한 행동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 등을 문제로 제기했다.

협회는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원인과 치료법이 불명확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할 경우 극심한 사회 혼란이 유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가나 e스포츠 분야 등 폭넓게 활용 범위를 고려할 때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

지난 9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에서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반대 측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임경호 기자
지난 9월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에서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반대 측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임경호 기자

아울러 보건의료 현장에서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는 대신 게임이용 자체를 통제하는 잘못된 개입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법적인 관점에서는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과 결합해 게임 등급 심사 강화, 게임이용시간 제한 등 비합리적인 규제의 근거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런 배경 속에 협회는 게임이용장애처럼 논란이 있는 질병코드가 포함된 ICD 도입 시 일부 코드를 제외하고 도입할 수 있도록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WHO는 회원국이 최신 ICD를 도입하도록 권장 중이다.

강신철 협회장은 “게임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보편화된 문화로, 산업 측면에서도 오랜 시간 국가 경제에 기여해왔다”며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질병코드를 ICD-11에 등재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상당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한국표준질병분류(KCD) 도입 여부를 두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청 등 유관부처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가 2019년부터 관련 논의를 이어오고 있지만 5년 넘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로 예정된 KCD 10차 개정 초안 작업에도 관련 내용이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임경호 기자 lim@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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