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게임 인구는 약 33억명으로,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 수치는 지난 2015년 20억명에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게임 산업 규모는 올해 2820억달러(약 405조원)에 이를 전망이며, 2027년에는 5220억달러(약 75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 역시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고 각광받는 엔터테인먼트로 손꼽히는 게임을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제조사들과, PC 시장에서 윈도 운영체재(OS)와 경쟁하고 있는 애플은 '비전프로'로 확장현실(XR)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런 강력한 경쟁 환경에서 애플을 승리로 이끌 중요한 카드 중 하나가 바로 '게임'이다.


"비전프로 살려라" 소니와 협력 타진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의 애플 소식통 마크 거먼은 애플이 비전프로에 '플레이스테이션 VR2' 컨트롤러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초 소니와 만나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애플 비전프로는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차세대 디바이스지만, 3500달러에 달하는 가격을 합리화시킬 '킬러 콘텐츠'를 내세우지 못하며 올해 50만대 이하의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거먼은 이런 부진의 이유 중 하나로 '게임 디바이스로서의 실패'가 가장 눈에 띄는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XR 시장은 개화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나마 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메타 퀘스트'와 같은 제품들은 다양한 게임 지원을 가장 큰 매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진=애플 제공
/사진=애플 제공

비전프로의 경우 이런 게임 디바이스의 강점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조작체계에 있다. 비전프로는 별도의 컨트롤러로 조작하는 경쟁 제품과 달리, 오로지 사용자의 시선과 손가락 제스처로 작동한다. 물론 미래지향적인 인터페이스지만, 일상 조작보다 정교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게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사용자들의 평가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별도의 컨트롤러를 필요로 하지만, 애플은 이를 직접 만들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콘솔 시장의 강자인 소니와 손잡고 플레이스테이션 VR2에 포함된 컨트롤러를 비전프로와 연결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정교한 조작이 가능한 이 컨트롤러는 게임 뿐만 아니라 생산성 작업과 미디어 편집 등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전프로 사용자 입장에선 반길 만한 소식이다.

거먼은 "애플과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 VR2 컨트롤러 지원에 관해 몇 주 전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현재는 출시가 연기된 상황"이라며 "(계획이) 갑자기 폐기되지 않은 한 언젠가는 발표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앱 마켓 통한 게임 생태계 전략, 또 통할까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게임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애플 앱스토어 매출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 수준으로, 올 3분기에만 39억달러(5조6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막대한 수익은 애플이 게임을 위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도 앱스토어 수수료로만 벌어들이는 돈이다. 애플은 이런 기적같은 일이 비전프로에서도 일어나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아이폰에 게임을 공급하고자 하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애플 생태계로 스스로 걸어들어왔지만, 불확실한 전망과 크지 않은 사용자 기반을 가진 비전프로를 위한 게임을 개발하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애플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상당한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먼은 "애플이 애플TV 플러스 영화와 쇼에 투자하는 돈의 10%만 투입했어도 비전프로는 더 나은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왼쪽)와 애플 앱스토어 /사진=디디다 컴퍼니 제공
구글 플레이스토어(왼쪽)와 애플 앱스토어 /사진=디디다 컴퍼니 제공

사실 애플은 앱스토어 생태계에서도 상당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앱스토어 수수료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앱 개발사들은 수수료에 반발해 집단 소송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게임사들 역시 한국모바일게임협회를 통해 애플, 구글의 앱마켓 수수료에 대한 집단조정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모바일 생태계에서 게임을 비롯한 앱 유통을 장악하던 애플의 독점을 무너뜨리기 위한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애플은 게임 생태계 내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 내에서 게임만 따로 다운로드하고 구독을 관리할 수 있는 새 전용 앱을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앱은 앱스토어와 게임센터 기능을 통합한 형태로, 앱스토어와 애플 아케이드 게임을 모두 포함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게임 이용자 잡아라

게임 이용자들은 여전히 애플에게 중요한 소비자층이다. 이런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플 앱스토어는 중국 게임 개발사 호요버스의 게임 '젠레스 존 제로'를 차세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한편, 국내에선 연말까지 함께 팝업스토어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젠레스 존 제로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이 선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특별 에디션은 '아이폰 16 프로', '아이폰 16', '에어팟 4' 등 애플의 최신 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애플이 국내에서 특정 게임사와 손잡고 제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애플의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호요버스의 또 다른 인기 게임 '원신'과 협업한 마케팅 행사와 갤럭시 모바일 제품의 한정판 에디션을 여러 번 선보인 바 있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골수팬'을 거느린 팬덤형 게임이 스마트폰 시장의 새로운 경쟁 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게임은 제품 성능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테스트 무대와도 같다. 고사양 게임이 원활히 구동되는 모습에서 사용자들은 해당 제품의 성능에 신뢰를 보내게 된다. 애플은 최신 'M' 시리즈를 탑재한 신형 맥 제품군에서도 게임 지원을 확대하며 사용자들에게 성능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출시된 초소형 PC '맥미니'는 모니터와 TV에 연결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콘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발맞춰 최근 애플은 게이밍 기어 전문 브랜드 커세어와 협력해 맥과 호환되는 기계식 키보드와 마우스를 애플스토어에 선보이기도 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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