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토종 코인'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사어(死語)'에 가깝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각종 블록체인 컨퍼런스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혁신적인 토큰 이코노미'를 내세우며 코인을 발행하던 풍경이 흔했다. 그러나 지금, 그 열기는 차갑게 식었다. 토종 코인은 김치 코인이라는 비아냥 섞인 조롱을 당하며, 대부분 시장에서 사라졌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당국에 혼이 날까 두려워, 토종 코인을 외면한 지 오래다.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토종 기업의 토큰 발행을 사실상 금지했다. 설사 발행한다 해도, 국내에선 제대로된 토큰 이코노미를 구현하기 어려웠고 가상자산공개(ICO) 규제로 기업들 대부분 해외에서 토큰을 발행, 우회적인 방법으로 국내 거래를 도모했다. 사행성 논란을 빌미로 한 P2E(Play-to-Earn) 게임 규제로 토종 토큰 이코노미는 더욱 좌절을 겪는다. '게임은 오락이지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라는 오래된 인식이 법과 제도로 굳어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P2E 분야에서 한국은 철저히 소외됐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웹3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경쟁 수단 중 하나를 잃었다. 블록체인을 단순히 '투기판'으로만 규정한 정책은, 실제로는 스타트업의 혁신과 글로벌 진출을 가로막는 족쇄가 됐다. 반면 해외 기업들은 토큰을 활용한 사용자 보상 시스템, 탈중앙화 네트워크 구축, 크로스보더 결제 솔루션 등을 앞다퉈 실험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이제 미국에선 웹3 기업들의 기업공개(IPO)가 잇따르고 있고, 주식시장만큼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2021년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직상장하며 전 세계 가상자산 기업의 '정상 진입'을 알린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비트코인 채굴 기업,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들이 속속 IPO에 성공했다. 이제 하버드대학교까지 코인 ETF 상품에 투자하는 시대다. 이는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규제 틀 속에서 혁신이 시장과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 투자자는 여전히 해외 거래소에서 발행된 외국 코인에 투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국내 자본과 기술이 해외 코인의 시가총액을 불려주는 데 쓰이는 셈이다. 국내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이 오히려 해외 자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해외 코인의 '러그풀' 및 사기 행위 단절, 해외 거래소를 통한 자금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코인 시장의 과열과 불법 행위는 규제 대상이 맞다. 그러나 지금처럼 '금지' 위주의 일괄 규제는 건전한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조리 막아버린다. 기술적 잠재력까지 함께 묻히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인터넷 규제 및 골목 상권 침해를 이유로 플랫폼 기업을 검열하던 시절과 다르지 않다. 탐욕의 끝에 혁신 기업이 탄생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웹3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세계 기업들은 이미 토큰을 기반으로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제 한국도 투자자 보호와 혁신 촉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합리적 규제 프레임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또 한 번, 미래 산업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게 될 것이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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