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 법집행기준 마련 특별팀(TF)'을 발족하고 1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합니다. 아니, 도대체 IT 플랫폼이 뭐라고 TF까지 만들면서 규제를 하려고 한다는 걸까요? 대기업들 갑질 규제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한탄하는 IT 스타트업계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기차역의 플랫폼처럼, 사업자와 소비자가 서로 갈아탈 수 있다는 의미로 조금 멋있게 '플랫폼' 사업자라고 보통 부르지만, 조금 더 쉽게 와 닿는 우리말로 바꾸면 이런 온라인 플랫폼, 또는 IT 플랫폼 사업자들은 사실 '목'을 잡은 사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색의 네이버, 메신저의 카카오, 독점 논란 속에 있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를 비롯해, 인터넷(특히 스마트폰)을 통해 사업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려는 모든 IT 스타트업들은 사실 스스로 '목 좋은 곳'이 되기 위해서 사업자들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열심히 길을 내고 있는 것이죠.
목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한 길은 험난합니다. 소비자들은 아무리 길이 반듯하고 잘 만들어져 있다고 그 길로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잔디밭을 둘러 멋진 길을 만들어 놓아도 사람들은 결국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가장 빠른 길로 다니기 시작하고 거기에 길이 생깁니다. 빠르고 편리한 것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요즘 소비자들은 가장 빠른 길을 만들어 놓아도 재미가 없으면 가지 않습니다. 길가에 볼 거리도 만들고 이벤트도 하고 뭔가 '힙'한 느낌도 줘야 합니다. 주변에 또래들이 많이 다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재들이 다니는 길이라는 소문이 나면 최악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시간과 돈과 머리를 짜내는 창조의 고통을 거쳐 비로소 사람들이 바글바글 다니는 재미있고 빠르고 편리한 길을 만들어서 이제야 그 길목에 가게를 지어서 물건이라도 좀 팔아볼까 하는데, 갑자기 정부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잠깐, 너희들 갑질이야."
힘들게 버티다가 이제 본전 좀 뽑아 보겠다는건데, 길 만드는데 한푼 보탠 적도 없는 정부가 무슨 논리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걸까요?
쉽게 말하면, 이런 IT 플랫폼들이 하는 일이 혼자만 그런 일을 하는 정부와 비슷해져 버렸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 원래 오랜 옛날부터 길을 까는 일은 주로 정부 혼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철도를 까는 일도, 누구로부터 누구에게 편지나 소포를 배달하는 일도, 사람들 사이에 전화나 통신을 연결해 주는 일도 말이죠.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든 사람들이 바글바글 많이 다니는 길이 생기면 정부는 그 옆에 싸움 나지 않게 뚜벅뚜벅 포졸들 보내고 세금 걷을 방법을 궁리해 왔으니, 좀 억울하더라도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현대 민주국가의 정부는 미리 만들어 놓은 법이 아니면 국민에게 뭘 못하게 할 수 없다는 헌법 아래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런 법은 원래 없었다!"
글=천준범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Who is> 천준범님은?
법무법인 세움의 파트너 변호사다.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연수원 35기)했다. 주요 업무는 M&A, 공정거래, 경영권 분쟁, 주주간 분쟁이고 위메프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IT기업의 일상적 법률자문도 많이 하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한국경쟁법학회 정회원이며, 한국프롭테크포럼 법률지원단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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