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 수수료 논란이 일으킨 '갑질' 나비효과
#플랫폼은 왜 소상공인에게 갑질하는 악당이 됐나
#'갑질' 프레임 씌워 규제하기 보단 공정한 '룰' 마련해주길
독과점 플랫폼에 대한 입점 소상공인의 거래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힘의 불균형이 커졌고,
이는 불공정한 '갑을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불공정행위를 유발하는 갑을관계가 계속돼서는
플랫폼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이 어렵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9일 '플랫폼 분야 반경쟁행위 유형 및 주요쟁점' 심포지움에서 플랫폼 업체와 입점업체 간 관계에 대해 이 같이 언급하며 "플랫폼 분야에서 지켜야할 시장의 룰과 규칙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발언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25일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내년 상반기 중 제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약자인 '을'의 위치에 놓인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 기업의 '갑질'을 막기 위해 별도 법을 만들겠다는 취지입니다.
배민 수수료 논란으로 촉발된 '갑질' 프레임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온라인 플랫폼인 배달앱의 경우 결제자가 2018년 1월 533만명에서 지난해 7월 945만명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결제금액은 2960억원에서 6320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자 언제부턴가 '플랫폼이 갑'이란 프레임이 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갈등은 지난 4월 배달앱 '배달의민족'이 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입점업체들은 코로나19 상황에 수수료 부담이 커진 반면, 배민은 가만히 앉아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치권까지 나서 배민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자영업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배민을 저격하며 '공공배달앱' 공약이 난립했습니다.
그동안 '유니콘'을 키우겠다며 플랫폼 기업들을 밀어주던 정부도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앞서 '타다'가 택시기사들의 일자리를 뺏는 주범으로 지목됐고, 배민 역시 정부가 보호해야 할 소상공인의 고혈을 짜내는 '악당'으로 떠오르자 플랫폼에 대한 시각이 '진흥'에서 '규제'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갑질'을 한 자는 누구인가
배달의민족이 수수료 체계를 개편한 건 정말 '갑질'이었을까요? 입점업체들의 불만은 배민이 도입한 정률제 수수료 방식이 이전 정액제 광고 모델 보다 요금을 더 내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런 불만은 주문량이 많은 큰 업체일수록 컸습니다.
수수료 개편 이전 방식인 '울트라콜' 역시 문제점을 지적 받던 제도였습니다. 일부 규모가 큰 업체들이 광고상품을 다수 구매해 해당 지역 카테고리에서 노출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배민은 입점업체들이 반발하자 결국 한달도 못돼 수수료 개편을 전면 철회했습니다. 소상공인 피해를 앞세웠으나 결국 배민 수수료는 신규, 영세 업체들보단 목소리가 큰 대형 매장이나 대기업 프렌차이즈 매장 등이 유리한 방식으로 원상복귀됐습니다. 과연 갑질을 한 건 누구였을까요?
혹자는 플랫폼 업체들이 앱 하나 만들어놓고 생산자와 소비자 중간에서 통행료나 받는다고 비판합니다. 플랫폼이 발전해 영향력이 커지면 곧바로 '갑질'이라 지적합니다. 그럼 배달앱이 사라지면 수수료 부담이 없어져 외식시장이 더 윤택해질까요?
일각에선 배달앱을 쓰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고, 일부 지자체는 수수료 없는 공공배달앱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배달료나 음식값이 내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소비자 부담과 불편만 커졌다는 얘기입니다. 일부 매장에선 전화 주문 처리가 힘들어지자 다시 배달앱을 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플랫폼은 수수료만 떼가는 중간상이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한 곳에 모아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시키고, 새로운 시장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급자는 더 많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고,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배달앱이 생긴 후 소비자들은 수많은 종류의 음식을 집에서 간편하게 시켜 먹을 수 있게 됐고, 전단지를 돌리거나 자체 배달인력을 두기 어려웠던 작은 가게도 배달로 승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배달시장이 커지며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고, 자율주행 배달로봇 등 신기술 개발도 활발해졌습니다.
플랫폼이 수수료를 받는 걸 '갑질' 한다고 몰아세우는 건 플랫폼을 눈에 보이는 '앱' 하나 정도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플랫폼을 단순한 중간상이 아니라 시장을 주도하는 한 축으로 바라보고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갑질-보호' 프레임 대신 '공정-투명' 원칙 지켜주길
플랫폼은 태생적으로 독점을 지향하고,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불공정행위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창업 초기 '악마가 되지 말자'(Don't be evil)를 모토로 삼았던 구글마저 이를 제대로 지키기 어려워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도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어 우리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을 플랫폼의 '갑질'로 프레임을 씌워 규제를 마련하겠다는 공정위의 시각은 우려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공정한 '룰'이 생긴다면 이는 플랫폼 업계에도 오히려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를 통해 입점업체들과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당당하게 사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플랫폼과 입점업체 사이를 갑을관계로 규정한다면 제도는 보호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사회에서 갑을관계는 개발 경제시대를 거치며 발생한 뿌리 깊은 병폐입니다. 고도성장 과정에 과실을 따 먹기 위해 대기업은 관청에 청탁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에 매달리는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이제 막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을 동일선상에 두고 규제한다는 건 맞지 않습니다.
공정위가 '갑질'과 '보호'의 시각이 아닌, 생산자-플랫폼-소비자가 동일선상에서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주길 바랍니다. 플랫폼은 악당이 아닙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