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참여 제한 7년 '승자 없는 게임'

#신기술이 '뉴노멀' 되는 시대

#'디지털 뉴딜' 앞서 새로운 생태계 조성해야


교육부가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일명 '차세대 나이스(NEIS)' 구축 사업에 대기업을 참여시키기 위해 '3전4기' 도전에 나섰습니다.

지난 2013년 대기업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제한 제도가 시행된 이후 삼성SDS, LG CNS, SK C&C 같은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회사들은 공공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지난 7년 간 중소·중견 IT기업들이 정부 사업을 담당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신청을 하면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기업 참여제한 예외사업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위원회는 해당 사업이 예외 요건인 국가 안보에 관련된 사업이거나 신기술이 적용되는 사업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합니다.

교육부는 앞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업으로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3번을 신청했는데 모두 반려됐고, 결국 사업을 더 키워 지난달 30일 신기술 적용 분야로 4번째 신청을 했습니다. 교육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수업 등 디지털 역량에 대한 수요가 커진 만큼 신기술을 더 도입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대기업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죠. 어떤 수를 써서라도 대기업이 꼭 사업을 맡아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대기업은 왜 공공 사업에서 쫓겨났나


교육부는 확실하게 사업을 믿고 맡길 대기업 참여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나이스가 워낙 중요한 시스템이기도 하고, 이전 시스템에서 오류 사고가 났을 당시에도 대기업이 100억원대 비용을 들여 수습해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다만 예외사업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 원한다고 무작정 허가해 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나치게 많은 예외를 허용하다 보면, 법의 취지 자체가 퇴색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가 시행된 건 당시 IT서비스 시장이 대기업 계열사들이 독식하던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IT서비스 계열사를 두고 그룹사의 IT시스템 구축과 유지보수를 맡기고 있습니다.

기업 기밀이 들어있는 IT시스템을 경쟁사 손에 맡길 수 없다는 논리였지만, 지나친 일감 몰아주기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활용돼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민간 시장에는 중소·중견 기업들이 진입할 수 있는 틈이 거의 없었습니다.

자연히 중소·중견 기업들은 공공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대기업 계열사들이 저가로 사업을 수주해 하청업체들의 공급 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어 대기업 참여제한이라는 '초강수'를 쓴 것입니다.


대기업 사라진 공공시장…아무도 웃지 못했다


그럼 대기업 참여제한이 시행된 이후 지난 7년 중소·중견 기업들의 사정은 좀 나아졌을까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중소·중견 기업은 2018년 기준으로 전체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의 92.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0년 23.6%였던 점을 보면 대기업이 빠진 자리를 중소·중견 기업들이 메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견기업들은 공공시장에 집중하느라 민간매출이 오히려 감소하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하청을 받아 일을 한 중소기업 영업이익률 역시 급감했습니다. 결국 대기업 참여 제한으로 중견기업 일부에서 양적성장이 이뤄졌으나, 전체적으로 수익성은 하락하고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기업들 역시 공공 부문에서 빠진 실적을 채우느라 오히려 내부거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공공 부문에서 대기업들의 레퍼런스가 없어지면서 전자정부 수출도  2015년 6300억원대에서 2018년 3000억원대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결국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당초 의도했던 중소·중견 소프트웨어 기업의 성장과 IT서비스 시장의 왜곡을 해소하려던 의도를 살리지 못하고 '모두가 지는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손질 공감대


이처럼 3000억대 규모의 '대어'인 나이스 사업을 계기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에 대한 실효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중견기업들은 그동안 수익성이 악화된 건 공공사업을 위한 투자 때문이며, 이제야 시장에 안착하기 시작했는데 또 다시 성급하게 제도를 바꿔선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개선해도 전면 참여는 적절치 않고 여전히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대기업은 발주처인 정부 부처가 저렇게 강하게 대기업 참여를 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점점 신기술 중심으로 변화하는 IT환경에 대응하려면 자신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도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워낙 평행선이라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듯 싶습니다.

무조건 풀어주자니 다시 대기업이 독식하는 시장으로 회귀할 것이란 우려가 있고, 계속 묶어두자니 '디지털 뉴딜'처럼 앞으로 대형 사업이 많이 나오는 마당에 중소·중견 기업만으로는 역량이 부족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상생이 답…생태계 전략 다시 짜야


결국 제도 개선에 앞서 '상생'이 답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대기업도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할 수 없고, 그렇다면 동등한 입장에서 대기업과 중소·중견 기업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는 게 '윈-윈'하는 길입니다.

정부 사업은 그 자체로 수익성이 높은 사업은 아닙니다. 대신 이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 등의 신성장동력을 만드는 마중물이 되는 게 가장 좋은 방향입니다. 과거 LG CNS의 교통카드 사업의 해외 진출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사업에만 기대 생존하는 '좀비기업'을 만들어선 좋은 정책 취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대기업의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소·중견 기업이 협업해 더 완성도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통해 수출을 활성화해 전체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서로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대기업 참여를 법으로 막아서 될 일은 아닙니다.

'신기술 적용'이 대기업 참여 예외 요건인 것도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뉴노멀'과는 맞지 않는 모순입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 이른바 신기술은 최근 발주된 차세대 사업이라면 한 줄 정도는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요소입니다. 더 이상 이런 신기술 도입을 요건으로 대기업 참여를 예외로 둔다면 이번 나이스 사업처럼 기업들의 사업 예측성 면에서 계속 혼란이 예상됩니다.

이런 신기술 분야에선 연구개발(R&D)이나 전문인력 채용에 여력이 있는 대기업 참여 기회를 오히려 더 넓히고 중소·중견기업과 협업 전선을 펼치는 것이 앞으로 국운을 좌우할 디지털 뉴딜 추진에 맞는 생태계입니다.

상생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대중소 간 불신이 팽배한 소프트웨어 시장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대기업은 규모에 맞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정부는 더 공정한 룰과 집행력을 보여줘야 중소·중견기업들도 안심하고 사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번 나이스 사업은 여러모로 상징성이 큰 만큼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는 식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중견 기업이 상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사례가 되길 기대합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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