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링, 금융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시스템 
디지털 자산 표방하는 기업일수록
기술 보다는 금융 및 법적인 부분을
얼마나 잘 구조화했는지 여부가 중요

권용진 님 /캐리커쳐=디미닛
권용진 님 /캐리커쳐=디미닛

'클리어링(clearing)'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청소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금융에서는 증거금 담보 선도 계약 이자 지불 등등으로 복잡하게 꼬여 있는 장부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간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하는 기업이나 기관을 클리어링 하우스, 즉 '청산소'라고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러한 클리어링 개념이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금융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스템 중 하나이며, 많은 기관들이 투자를 많이 하고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분야다. 이런 장부 관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증권 거래는커녕 일반적인 금융 업무도 불가능해진다.

쉬운 예로 신용카드나 OO페이 같은 페이먼트 회사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신용카드 회사가 모든 사람들의 거래를 즉각적으로 처리하고 상대방에게 대금을 지불하면 속도나 안정성 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하루동안 거래를 계속 모아두었다가 특정 시점에 '맥도날드에 10억 지불', '스타벅스에 8억 지급' 이런 식으로 정산을 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를 클리어링이라고 한다.

얼핏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복잡한 거래가 엮이기 시작하면 어려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람이 미국에서 여행 온 마이클이면, 당장 대금에 외환 문제가 혼용되고 결제한 당시와 정산할 당시의 환차이가 심해지면 신용카드 회사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클리어링 하우스 역량, 여러 시나리오에서 문제없는 정산


주식이나 파생상품과 같은 거래는 단순 대금 지불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렇기에 거래를 하는 거래소에서 클리어링 하우스 역할을 겸하고 있다. 미국은 시카고 선물 거래소(CME) 같은 곳이, 한국은 한국거래소(KRX)가 청산소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증권으로 불리는 채권, 외환, 주식, 파생상품 등은 다양한 실시간 거래를 하도록 발전했기 때문에 이러한 클리어링 하우스가 굉장히 잘 발달돼 있다. 클리어링 하우스의 역량은 단순히 정산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나리오에서도 문제 없이 정산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위에 외환 문제가 생기는 것 처럼, 올해 초에 있었던 유가 선물 유동성 문제로 선물 증거금이 대량으로 부족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정산소는 미수금을 대량으로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거대 거래소나 국가 기관이 클리어링 하우스를 맡는 이유 중 하나다.


클리어링 시스템을 어떻게 법적 테두리 안에서 개발할 수 있는가


이제 디지털 자산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많은 프로젝트나 기업들이 다양한 자산을 디지털 자산화한다고 말한다. 연예인을 지분화 하거나 특허, 부동산 그리고 재능 등을 거래 가능한 레벨로 만드는 것이 디지털 자산 혁명의 비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의 핵심 기술은 단순히 스마트 컨트랙트 상의 알고리즘이나 기술로 장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클리어링 시스템을 실제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개발을 하는 것이 선제 조건이다.

만약에 특허를 지분화 한다면, 어떤 사람의 특허 지분이 다른 사람에게 거래됐을 때 어떤 식으로 클리어링을 할 것인가. 부동산을 분할 거래한다면 등기를 실시간으로 클리어링 시킬 것인가. 중간에 신탁사를 통해 클리어링을 대행한다면 이를 스마트컨트랙트와 어떻게 연동 시킬 것인가.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디지털 자산을 표방하는 기업일수록 기술적인 부분 보다는 금융 및 법적인 부분을 얼마나 잘 구조화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결국은 클리어링의 문제다.

 

글=권용진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권용진 님은?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과학과 응용수학을 복수 전공한 후 뉴욕에서 퀀트 애널리스트로 경력을 쌓았다. 퀀트 인공지능과 고빈도매매(HFT) 시스템을 대중에게 전하고자 다수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현재 디지털 자산 증권사 비브릭의 전략이사를 맡고 있다.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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