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이 처음 유행했던 2000년대 초반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다면, 아마 최근 PC방에 들어서면 놀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PC방은 음식점이나 카페를 연상케 할 정도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시설로 우리를 반기기 때문이죠.
분위기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예전 PC방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바로 장비입니다. 예전의 경우 PC가 존재하고 초고속 인터넷선이 깔려있다는 것 만으로도 존재 이유가 충분했죠. 하지만 요즘 PC방은 최신식 컴퓨터와 엄청난 성능의 게이밍 기어들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셋팅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것입니다. 컴퓨터는 돈을 투자할 수 있지만, 게이밍 기어 및 컴퓨터 주변 기기까지 풀세트로 장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10년 전, 이런 시장 변화를 단번에 알아채고 게이밍 기어 산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점유율 1위를 단단히 지키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최근 코스닥에 상장하며 관심을 모았고, 글로벌 진출에도 성공했으며 이제는 e스포츠 산업에도 발을 뻗은, 앱코가 그 주인공입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싶었던 청년
오광근 앱코 대표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참 힘든 사람입니다. 코스닥에 상장한데다 글로벌 진출까지 진행했으며 최근 소형 가전 시장까지 뛰어들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대표가, 너무나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 회사의 대표가 제품 안에 녹아 든 기술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자신이 눈으로 보고, 발로 뛰어 얻은 결과가 아니면 승인하지 않았던 그의 꼼꼼함이 앱코가 업계 1위를 지켜내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발로, 손으로 일하는 '진짜 대표'였습니다.
"1995년 용산 전자상가에 입점한 한 회사에서 사원으로 시작한 것이 컴퓨터와 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운이 좋게도 수입이나 유통 등 다양한 부분을 경험할 수 있었고, 일을 진행하면서 점점 내 브랜드를 만들어 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최종적인 꿈이 있었기에 오 대표는 사원이지만 마치 그 회사 오너처럼 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야 많은 것들 배울 수 있고 궁극적인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그는 꿈을 이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현장에서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현장에서 답을 찾다
그의 도전이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엔비디아 그래픽 카드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일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브랜드를 사와서 다시 판매하는 것은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심한 끝에 그는 PC케이스를 만드는 사업을 기반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겠다는 꿈을 조금씩 실현시켜 나갔죠. 오대표가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느끼고 배운 모든 것을 브랜드를 만드는데 투자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답은 현장에 있더라고요. 2014년 PC방 문화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고, 게이머들도 점점 게이밍 기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죠. 기존 PC방 사장들 역시 장비에 대한 눈이 점점 높아지는 고객들의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지금이 나에게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PC방 사장님들을 정말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만원짜리 키보드를 쓰다가 몇만원짜리 기계식 키보드를 들여 놓을 생각을 하니 사장님들이 얼마나 머리가 아팠겠어요. 게다가 기계식 키보드의 경우 고장이 잘 나기 때문에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았어요. 시장은 변화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고가의 장비로 다 바꿀 수도, 그렇다고 안 바꿀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놓인 분들이 많았어요."
멈추지 않은 도전
오 대표는 기계식이 외부 환경에 취약하고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을 극복한다면 PC방 게이밍 기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죠. 내구성 좋고 견고하지만 가격도 저렴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바쳤습니다.
결국 그는 완전 방수 광축 키보드를 개발해냈습니다. 납땜 방식이 아닌 메인보드 방식으로 키보드를 제작했기에 대량 생산이 가능했죠. 기존에 10만원 가까이 주고 구매해야 하는 키보드를 40%의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혁신이었죠.
이미 PC방 업계를 모두 장악한 앱코는 이대로만 가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낸 기업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 대표는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죠. 현장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그 부분에 도전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PC방이 타격을 입으면서 오 대표 역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죠. PC방에 가지 못하는 개인이 직접 게이밍 기어를 구매하는 시장이 커질 것을 예상한 오 대표는 손쉽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마케팅과 유통과정을 집중했습니다.
또한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고 e스포츠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한국 토종 브랜드의 우수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를 보유한 한국 게임단과 손을 잡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이죠.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해 내고, 직접 발로 뛰는 오대표의 도전정신과 우직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자
이제는 쉴 법도 한데, 오 대표는 또다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습니다. 생활 가전 시장에 '감성'이라는 무기를 안고 뛰어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게이밍 기어 시장을 제패했던 AS 및 생산과 유통 라인, 그리고 마케팅 노하우가 있었기에 충분히 해 볼만 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생활 가전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곳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어요. 특히 우리는 AS에 집중했죠. 이는 게이밍 기어를 만들 때도 통했던 전략이었는데, 생활 가전에서도 이 전략이 잘 통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중소기업에서 판매하는 생활 가전을 한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오 대표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 역시 중소기업에서 만든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매해 사용했지만, 고장으로 인해 결국 AS를 포기하고 제품을 폐기한 기억이 있습니다. 생산 라인은 한국에 있지만 AS 센터가 해외에 있어, 고장 수리에 한달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중소기업 시장에서 사후 서비스 라인까지 완벽하게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앱코는 생산 라인과 AS 라인이 함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술을 우리가 고민하고 만들어낸 것이기에 AS 역시 대기업 못지 않은 속도를 자랑하죠. AS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면 소비자는 그 제품을 다시 찾기 마련입니다. 아까부터 계속 말하지만 '기본'에 정말 충실한 기업은 몇 없기에, 저희의 전략이 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일 전에 출시한 제품의 성능까지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꼼꼼한 오 대표 덕에, 직원들은 진땀을 빼지만 소비자들은 즐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찾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답과, 오 대표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한 직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업계 1위 앱코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상장을 하면서 주주들에게도 가치 있는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주하지 않는 회사, 도전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끄는 회사로 키워가도록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죠. 앞으로도 앱코의 행보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저는 현장에 있을 것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열어 둘 것입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