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디미닛
그래픽=디미닛

 

제2의 김범수-이해진으로 불리던 권도형의 테라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어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의 큰 손으로 급부상했으나, 이젠 스테이블코인-탈중앙 인프라의 한계를 드러낸, 실패작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물론 이들의 도전을 폄하해선 안된다는 것이 블록체인 개발업계의 중론이다. 당장 수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으나, 블록체인 대중화에 앞서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혁신의 사나이들이 또다시 판을 뒤집을 반전카드를 내놓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마케팅-언론도 필요없다? 탈중앙 기치 내건 '도권'의 실험 

한국인 개발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테라'는 사실 초국적 형태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기반 코인 루나와 산하의 앵커프로토콜, 미러프로토콜 등을 모두 더한 공급량 기준 시가총액은 100조원을 넘기기도 했다. 코인을 담보로 맡겨두는 예치량도 이더리움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이미 테라는 미국에서도 주류 플레이어로 불렸다. 테라를 주도한 인물은 개발자 출신의 권도형, 신현성 씨다.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신직수 씨의 손자로 소셜커머스업체 '티몬'의 창업자로 잘 알려진 신 씨는 티몬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며 줄곧 블록체인 '테라'의 대외 활동을 담당했다. 반면 개발 총괄을 맡은 권씨는 테라 운영사 테라폼랩스의 대표직을 맡아 줄곧 테라의 큰 방향성를 주도해왔다. 그는 대원외고를 졸업한 후, 스탠포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미국 굴지의 IT 기업 등을 거쳐 와이파이 공유서비스 애니파이를 내놓기도 했다. 이후 신씨와 의기투합, 테라폼랩스를 창업해 가격변동이 크지 않은 '스테이블코인' 테라와 '마이닝 토큰' 루나를 내놨다. 

이름도 어려운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으로 미국 달러와 1대1로 가치가 고정된 것이 특징이다. 루나를 연동, 추가 발행하거나 소각하는 형태로 달러와의 연동 관계(페그)를 이어온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다른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들은 1대1 달러 페그를 유지하기 위해 달러 채권이나 어음 등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해왔지만 테라는 자체 알고리듬을 통해, 쉽게 말해 코인을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왔다. 이에 전통 금융권 시각에선 뱅크런 우려를 제기했지만, 테라는 탈중앙 알고리듬을 방패삼아 끝없이 덩치를 불렸다. 

사실 테라는 사업 초기, 결제 사업에 공을 들이다 '다단계' 라는 외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코인을 통해 코인을 버는 이른바 합성자산 시장에 뛰어들어 코인판을 흔들었다. 합성자산 트레이딩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러프로토콜과 20%의 고정 금리를 지원하는 앵커프로토콜 등을 앞세워 몸집을 불려나갔다. 이같은 비현실적인 투자이익 구조는 테라 생태계가 끝없이 팽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코인 활황기에 접어들며, 기존 금융권과 제도를 부정하고 탈중앙을 앞세운 테라 블록체인의 슬로건 덕에 별도의 마케팅 없이도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했다. 특히 권 대표는 국내외 언론과도 선을 긋고, 트위터를 통해 소통을 이어가 '한국판 일론머스크'로 불리기도 했다.

 

CI=테라
CI=테라

 


파국으로 치닫는 테라의 혁신...고점대비 10분의1 토막났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테라의 루나 가격은 개당 1만4000원대로 고점대비 10분1 토막 수준까지 급락한 상태다. 3일전까지 개당 가격은 8만원선을 유지했으나, 이제 1만원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외거래가는 이미 9~10달러까지 밀렸다. 

잘 나가던 테라가 5월 들어 급격히 무너진 이유는 사실 외부의 특정세력이 테라의 스테이블코인 UST를 대량 매도, 일종의 패닉셀을 불러일으킨 탓이다. 특정 국가의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코인시장은 이미 다수의 해외거래소에서 선물 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에 외부 자본의 인위적 공격을 대항할 수 있는 규제가 없는 탓에 소위 '작전' 공격을 당하면 버텨내기 어렵다. 업계에선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테라 블록체인 붕괴를 위해 투입, 테라의 달러 연동시스템을 뒤흔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가격 급락을 예측한 특정 세력이 UST를 대대적으로 매도하며 달러 연동 체계를 흔들었고, 이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며 동시에 연쇄 매도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라 기반으로 발행된 무수한 코인들도 일제히 매도물량이 늘어나, 테라 블록체인은 말 그대로 붕괴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일각에선 테라 내부의 코인 대출 시스템을 활용, 대출을 받아 거듭 루나 하락에 배팅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업계 한 관계자는 "UST를 소각해서 루나를 민팅하고, 루나를 팔아서 원금 회수를 하는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UST와 루나 모두 하방 압력이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테라 블록체인 역시 트랜잭션이 마비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 역시 "사실 테라의 구조는 폰지 구조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도 "테라가 보여준 사례와 일궈놓은 일들을 폄하해선 안되지만, 줄곧 부정적인 시각으로 테라를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테라를 직접 거론, 대대적인 규제를 천명한 만큼 테라 블록체인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빠졌다. 테라 기반 코인을 사들인 미국인 투자자도 적지 않은 탓이다. 당장 테라를 타깃으로 한 규제가 등장할 공산이 크다. 이에 테라가 4조원이 넘는 거액을 투입해 달러 연동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미국 금리인상 여파로 비트코인 시세 또한 흔들리고 있는데다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인식까지 얹어져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외부 투자 유치설도 잠잠해진 상태다.  

코인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 상황이 좋고, 테라에 대한 수요가 계속 많아진다면 현 상황이 문제 없겠지만, 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결과적으로 뱅크런이 급속도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면서 "담보가 안전하게 보장된 형태로 모든 테라 소유자들이 팔고 나올 수 없는 구조고, 루나 가격이 급락해 테라 스테이블코인 시총보다 낮아지면 투자자들은 더욱 겁을 먹고 매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결국 테라 생태계는 루나의 가치보다, 테라 스테이블 생태계 성장에 달려있는 것"이라며 "담보를 가지고 있는 은행들도 가끔 방자하게 운영을 해 뱅크런이 일어나는 케이스가 있기 때문에, 아예 담보자체가 없는 알고리즈믹 스테이블코인 역시 이 리스크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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