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 사고가 일어나면 주요 사인은 심정지로, 골든타임은 4분
경찰청, 인파관리 대책 TF 구성...위험경보시스템 마련할 계획
'스마트치안 빅데이터 플랫폼'에 도입해 확장, 고도화해야
대한민국 응급외상체계를 이끈 양대 산맥이 있습니다. 민(民)에서는 이국종 의학박사, 관(官)에서는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입니다. 윤 센터장은 지난 2019년 설 연휴 기간이던 2월 4일 국립중앙의료원 자신의 집무실에서 책상 앞에 앉은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심정지 업무상 과로사'로 판명된 고인의 책상 위에는 '지역외상체계 태스크포스(TF)'의 거버넌스 조직도가 놓여 있었습니다. 2021년 대한응급의학회는 '윤한덕 공로상'을 제정하고, 고(故) 윤 센터장은 민간인으로서는 36년 만에 국가유공자에 지정됐습니다.
필자는 2018년 보건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의 지역외상체계 구축시범사업에 응급의학과/외과 의사와 소방청, 소방본부, 국가 응급의료 컨트롤타워인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차출된 범정부 TF 총 23명의 연구원들 중 지역외상거버넌스를 담당하는 경영학자로 투입됐습니다. 킥오프 미팅에서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TF팀 팀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의사 윤한덕'이었습니다.
코드블루(Code Blue), 심정지 환자 발생 응급코드
지금도 당시 권역외상센터 대회의실에서 '뚜~ 뚜뚜~ 코드블루! 코드블루!(심정지 환자 발생 응급코드)'라는 경적과 함께 스피커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에 브리핑하던 하얀 가운의 의사들이 응급실로 뛰쳐 나갔다가, 얼마 뒤 피가 흥건히 묻은 초록색 수술복으로 돌아와 회의를 속개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역외상체계 TF의 프로젝트는 중증 외상 환자가 최적 시간 내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전국적으로 확산 가능한 권역외상체계 기본모델'을 국내 최초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TF팀의 지상목표는 외상환자 발생 시 가용한 데이터와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를 기반으로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를 포함한 모든 수송 자원을 활용해 이송 시간 최소화와 신속한 전원(轉院) 조치 및 심정지 응급처치인 CPR(심폐소생술), AED(자동심장충격기) 교육훈련의 일상화로 ‘예방 가능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회의 시작과 끝에 우리가 외친 슬로건은 언제나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였습니다. 슬로건을 외칠 때면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필자의 20대 시절, 해병대와 특전사 훈련으로 소문난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서 고급인명구조원 자격증 딸 때가 생각나서 그런지 '인명과 구조'에 대한 노이로제성 집착이 불쏘시개였나 봅니다.
프로젝트 완수 후 정부는 TF 프로젝트 수행 전년도인 2017년도에 20%에 달하는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이 수행을 마친 2019년 15.7%로 개선됐다고 발표했고, 저희가 발간한 응급의료체계 백서와 지역외상체계 진료지침, 교육자료는 현재 인천시와 제주도 등에서 지역화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태원 밤거리에 울려 퍼진 "군대 다녀오신 분!"
지난 10월 30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환자의 119 신고 접수부터 병원 이송까지 평균 2시간 34분 44초가 소요됐고,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평균 1시간 38분 19초가 걸렸습니다. 이로 인해 전체 사상자 중 80명이 외상성 질식으로 인한 심정지 상태로 이송됐고, 40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로 이송됐습니다.
참사 사망자는 156명으로 대다수가 질식에 의한 외상성 심정지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협소한 도로와 몰린 인파, 불법주정차와 구급차 부족이라고는 하지만 참담할 정도로 너무나도 늦은 조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 간호사님, 간호조무사님, 의사 선생님들 도움이 필요합니다!"
"......구십팔!, 구십구!, 백!. 백 하나, 백 둘....!!"
아비규환인 이태원에 울려 퍼진 절규입니다. 압사 사고가 일어나면 주요 사인은 심정지로, 골든타임은 4분입니다. 이때 CPR, AED 같은 응급처치가 생사를 좌우합니다.
패닉 속 인류애의 발현이 있었습니다. 구급차 주변 길바닥 위의 희생자들과 부상자들 바로 앞까지 밀려온 인파와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시민들은 손에 손을 잡아 팔을 뻗어 인간 폴리스라인을 형성해 연쇄 사고를 대비했습니다.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아닌 일반의 남자들이 부상자들을 곁부축으로 안전지대로 대피시켜 두고선, 아스팔트 바닥에 지지한 자신의 무릎이 나가든 말든 필사적으로 CPR을 해댔고, 그 옆에서 여성분들이 1분에 100~120번 해야 하는 심폐소생술의 카운트를 목젖이 찢어져라 외쳤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 외신이 들썩였고, 해외에서는 "어떻게 일반인들이 CPR을 할 수 있지?"라는 댓글에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그래"라는 답글들이 달렸습니다.
위치정보와 드론 이용한 다중밀집도 분석 '치안 빅데이터 플랫폼' 적용 시급
치안(治安)은 말 그대로 '안전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경찰대학 '스마트치안지능센터'가 구축한 경찰청 '스마트치안 빅데이터 플랫폼'은 CCTV, 교통 상황 등 민간과 경찰, 공공의 치안 데이터가 융합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험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대국민 안전 시스템으로, 치안 대응 주체의 과학적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경찰청은 인파의 밀집 상황에 대비하는 '인파관리 대책 TF'를 구성해 대규모 인파가 특정 장소에 모였을 때 밀집도에 따른 위험성 측정용 도구를 개발하고 과학적인 '위험경보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범정부 응급의료체계 TF에서 거버넌스를 설계한 연구자로서 단호히 말씀드립니다.
이번에 경찰청이 발족한 '인파관리 대책TF'의 '위험경보시스템'은 경찰청 '스마트치안 빅데이터 플랫폼'에 장착돼야 합니다. 아울러 교통카드와 휴대폰 위치정보, 지능형 폐쇄회로, 드론을 활용해 리얼타임으로 다차원적 분석을 통한 위험성 감별, 예측 및 경고를 발신하는 EIS(응급정보시스템)가 개발돼야 합니다.
혹여나 곧 만들어질 '위험경보시스템'을 '경보 문자 발송'에 한정 짓거나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 얹겠다는 여유로운 발상이 추호라도 있다면, 이는 옥상옥(屋上屋)의 전시행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실내 밀집도가 높아가는 계절입니다. 야외보다 갇힌 공간에서의 다중밀집 상황이 더 위험하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진정 시민의 안전을 다스리려 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위험경보시스템'을 기(旣) 경찰청 '스마트치안 빅데이터 플랫폼'에 도입해 확장, 고도화할 것을 간곡히 제언드립니다.
참사 고인들과 윤한덕 센터장님을 기리며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고인들과 대한민국 '예방 가능 사망률'을 낮추려다 심정지 과로사로 돌아가신 윤한덕 센터장님을 기리며, 필자는 기성 작가로서 3년째 집필하고 있는 '윤한덕 TF'의 실화를 그린 '코드블루' 작업에 박차를 가하려고 합니다.
재난 발생 시 생존 가능성이 있는 중환자 우선의 구조 및 분류와 처치, 이송이 효율적으로 관리돼야 하는 대한민국 응급의료 시스템의 실제가 국가적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 고취에 일조할 것이라는 신념에서입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국민 모두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엄중한 시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칼럼을 마칩니다.
글=박세정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박세정 님은?
현재 한국NFT거래소(KNX)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블록체인 융합기술개발사 퓨처센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국방기술학회 공동의장 및 한국자금세탁방지학회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으며, KAIST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편집위원, 경찰대학 자치경찰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블록체인제너레이션> <스타트업노트> <미친 꿈은 없다> 등이 있다.
관련기사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중간언어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기하학과 전쟁사(史)
- [테크B CON] 韓 NFT 학회 이끄는 박세정 KNX 대표 "NFT의 선한 영향력 보아야"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문화제국주의 vs 기술제국주의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보이스피싱, 테크놀리지와 심리학의 어두운 결집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스타트업 트릴레마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디지털네이션 캄보디아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FTX 평행이론과 마사지(massage)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SK루브리컨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편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SK루브리컨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편
- [박세정의 테크인문학]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와 디지털노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