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포츠 종목이든 '레전드'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레전드'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일정한 자격이 있죠. 각 종목마다 '레전드'의 조건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레전드' 선수가 없는 종목은 없습니다.
e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스타크래프트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수많은 '레전드' 선수가 존재합니다. 국산 종목인 카트라이더 리그나 배틀그라운드 리그, 던전앤파이터 리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만나볼 선수는 이제 2년차된 '신예 리그'인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리그(KRPL)에서 활약 중인 선수입니다. '런민기' 민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레전드' 반열에 들어선 락스 게이밍 '쫑' 한종문입니다.
1년 전에는 '특급 신예'였던 '쫑'
KRPL이 시작된 2021년만 하더라도 '쫑'은 이름 없는 신예선수였습니다. 이미 수퍼 스타였던 '런민기' 민기와 '동이' 신동이, '제임스' 김홍승 등에 팬들의 이목이 주목됐고 '쫑'은 '동이'와 함께 팀을 이룬 선수 중 한명일 뿐이었죠.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팀전이었습니다. '쫑'은 팀전 스피드전에서 항상 선두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덕분에 중계진에게 계속 이름이 언급됐고, 팬들은 조금씩 '쫑'이라는 이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쫑'이 팬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팀전 에이스 결정전에서 최고의 선수였던 '런민기'를 잡아내면서부터입니다. '쫑'은 단숨에 특급 신예로 떠올랐고 팀전에서 최고의 요주 인물이 됐습니다.
이후 '쫑'은 팀전에서 승승장구 했습니다. 소속된 팀을 3연속이나 우승시키며 '팀전 최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이는 이미 '레전드'로 불리던 '런민기'조차도 해내지 못한, 오직 '쫑'만이 가진 기록입니다.
개인전 우승에 대한 간절함
KRPL은 팀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팀전에서만 잘하는 선수에게 '레전드' 호칭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KRPL나 카트라이더 리그 모두 개인전과 팀전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지만 '레전드'라는 호칭을 붙입니다.
이미 팀전에서는 최강자였던 '쫑'에게 개인전 타이틀은 탐날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동료인 '씰' 권민준이 개인전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욱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팀전에 중점을 두고 연습을 해왔지만, 개인전에 대한 욕심도 지울 수 없었죠. '런민기'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레전드' 선수가 되고 싶었고, 그러러면 팀전을 넘어서는 개인전 활약이 필요했으니까요."
실력을 인정 받은 선수라 하더라도, 신기하게 '우승'이라는 타이틀은 쉽게 가져지지 않습니다. 다양한 리그에서 최강자 중 우승 타이틀이 없는 선수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팀전 탈락이 오히려 기회였다
개인전과 팀전을 동시에 진행하는 KRPL에서 양대 리그를 우승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카트라이더 리그조차 문호준만이 양대 리그 우승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닐' 리우창헝의 경우 팀전에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대리그 으승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번 시즌 '쫑'은 아쉽게 팀전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SGA 인천을 비롯해 게임코치에게 일격을 당하고 말았죠. 4연속 팀전 우승의 꿈은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팀전에서 탈락하고 난 뒤 좌절을 많이 했어요. 동료들에게 미안했고 내가 더 잘했어야한다는 죄책감도 들었고요. 과연 내가 개인전 연습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계속 좌절하고 있을수만은 없더라고요. 어쨌건 저에게는 개인전이 남아있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꼭 개인전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죠."
'쫑'은 개인전 우승을 목표로 그동안 팀전 연습을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개인전 맵들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전 우승을 위해 열심히 달렸습니다. 개인전 우승 타이틀이 팀전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전 우승 후 흘린 뜨거운 눈물
그리고 결국, '쫑'은 목표대로 개인전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개인전 2회 연속 우승 '런민기'를 비롯해 디펜딩 챔피언 '씰', 이번 시즌 특급 신예로 떠오른 '베가' 이진건 등을 모두 물리친 값진 결과입니다.
그는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쁨을 만끽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팀전 탈락의 죄책감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정말 복잡한 감정이었어요. 제가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갔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값진 결과였기에 기쁘기도 했지만, 팀전을 탈락한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죠.
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진짜 기쁘니 눈물도 나오네요. 내년에는 25살이라 사실은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프로게이머 사이에는 25살이 '마의 나이'여서 그 시간이 지나면 실력이 준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를 잘 잡아서 기뻤고, 많은 관중들 앞에서 차지한 우승이라 더욱 뜻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고, 미안하고, 고맙고 뿌듯하고. 온갖 감정이 다 들었어요."
진짜 '레전드'를 향해가는 '쫑'
팀전 3회 연속 우승, 개인전 1회 우승. 커리어로만 보면 이제 그가 '레전드'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팀전과 개인전이 동시에 치러지는 리그에서, 이같은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매번 팬들도, 저도 아쉬웠거든요. 팀전 우승만으로 제가 최고의 선수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더 간절했고요. 개인전 우승 이후 제 팬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는 명실상부 KRPL 최강자입니다. 앞으로 그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하는 선수들이 많을 것입니다. KRPL에서는 '런민기'를 이미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기록들에 제 이름을 세기고 싶어요. 다음 시즌에는 개인전과 팀전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응원해 주시고 KRPL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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