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데뷔 후 16년 동안 한결같이 한눈팔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 선수라면, '레전드' 호칭이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성적도 좋다면 더욱 완벽한 자격조건을 갖춘 것이겠죠.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유영혁은 2007년 데뷔 후 한번도 리그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카트라이더가 흥했을 때도, 잠시 주춤했을 때도 유영혁은 언제나 팬들을 위해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런 유영혁이, 잠시 우리 곁을 떠납니다.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일각에서는 은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그는 아직 카트라이더 리그를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최근 주춤했던 유영혁, 그래도 여전히 '레전드'

카트라이더 안에는 문호준과 유영혁의 캐릭터를 딴 카트가 존재합니다.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엄청난 업적을 쌓은 두 선수에게 바치는 '헌정 트로피' 같은 것입니다. 17년의 카트라이더 리그 역사 중 넥슨이 인정한 '레전드'는 문호준과 유영혁 두명 뿐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유영혁은 2007년 데뷔 후 줄곳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최근에는 팀 에이스 자리를 노준현, 이재혁 등에게 내주긴 했지만 유영혁은 언제나 팀을 든든히 지켜내는 맏형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실 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유영혁인지 모르고 본 카트라이더 예선에서, 그의 주행은 특급신예가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피지컬에서는 여전히 정상급 선수입니다.

유영혁/사진=이소라 기자
유영혁/사진=이소라 기자

"e스포츠가 '정신력'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어요. 손은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머리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잡 생각이 너무나 많았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서 연습실만큼의 실력이 대회 때 발휘가 안되더라고요."

유영혁의 손은 그대로지만, 그의 머리 속은 이미 '레전드'로서의 책임감, 무게감 그리고 아쉬움 등 다양한 감정으로 가득차 있어 보였습니다.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게 되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감정이 그를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더 자신감을 가지고 밀어 붙였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였을지 궁금하긴 해요. 여전히 카트라이더가 재미있고, 열심히 연습하면 잘할 자신도 있는데 최근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속상하더라고요."


드리프트로 새롭게 시작되는 리그 이야기

유영혁은 올해 중순 즈음 군 입대가 예정돼 있습니다. 카트라이더:드리프트(드리프트) 정규시즌이 9월에 시작되기 때문에 유영혁은 팀에 피해가 될 수 있어 현재는 선수가 아닌 파트너 스트리머로 아프리카TV와 게약을 연장했습니다.

"카트라이더의 명맥을 잇는 드리프트이기 때문에, 팀전에서의 합이 무척 중요하거든요. 9월에 정규리그를 치르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선수로 재계약 하는 것은 동료들과 팀을 위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아쉽죠. 전환기라는 중요한 시점에서 군입대를 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속상하더라고요."

인생의 절반을 넘게 카트라이더 리그와 함께 했던 유영혁. 그래서 카트라이더와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드리프트를 새롭게 만나 적응을 해나가면서도, 또 드리프트와도 잠시 이별을 고해야 하는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군 제대 후에도 드리프트 리그로 다시 돌아오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입대 전까지, 드리프트와 관련된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고요. 팀전은 함께 할 수 없지만 개인전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고 있어요. 최대한 제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드리프트와 많은 인연을 맺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유영혁은 군 제대 후 드리프트 리그가 활성화 돼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이 몸담았던 곳에 대한 자부심을 계속 느낄 수 있도록, 드리프트가 카트라이더 리그의 명맥을 잘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힘들었던 순간 버티게 해준 팬들의 응원

유영혁은 실력에 비해 저평가 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사실 유영혁의 전성기시절은 문호준과 박인수의 전성기 시절 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 카트라이더 리그가 암흑기를 맞이했습니다.

유영혁/사진=이소라 기자
유영혁/사진=이소라 기자

"제가 실력이 가장 절정에 올라와 있을 때 카트라이더 리그가 잠시 중단됐어요. 그리고 다시 리그가 열렸을 때는 이벤트 리그 형식으로 리그가 개최됐죠. 개인전이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다 보니, 개인전 우승 기록이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저평가 되는 것이 속상할 법도 하지만, 유영혁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의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무뚝뚝하기도 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보니 팬들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돌아보면 힘들 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팬들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팬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 같거든요. 너무 감사 드려요."


아직 끝나지 않은 '레전드' 유영혁의 도전

유영혁은 지금의 헤어짐이 '은퇴'가 아닌 '새로운 도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군 입대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드리프트 씬에서 팬들과 함께 할 생각이 있기 때문이죠.

"군대에서 제대했는데 실력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코치나 감독 등 어떤 형태로든 리그에 있고 싶어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카트라이더 씬이니까요. 카트라이더 리그의 역사가 드리프트로 이어진다고 하니, 그곳에 제 이름을 올려야죠."

유영혁은 최근 드리프트 연습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영혁의 인생을 함께 할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카트라이더 '레전드'로서 가지는 당연한 사명감일 것입니다. 

"아직은 아쉬운 점이 있지만, 계속 업데이트를 해나가면서 재미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어요.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군대에 입대하기 전, 이벤트 리그에서라도 우승하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웃음)."

유영혁은 여전히 차분했고, 말수가 적었지만 눈빛 만큼은 2007년 데뷔했을 당시 그대로였습니다. 그의 군입대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확신이 드는 눈빛이었습니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더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돌아올테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드리프트에서도 '유버스'가 있었으면 좋겠네요(웃음)."

유영혁/사진=이소라 기자
유영혁/사진=이소라 기자

이소라 기자 sor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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