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스테이블코인 속도 내야...민주당 '디지털자산 혁신 법안' 공개
한국은행 "원화 스테이블코인 민간 발행 신중해야"
스테이블코인 발행요건 명시, 자본금 '5억→10억' 2배 상향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혁신 법안 공개 설명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서미희 기자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혁신 법안 공개 설명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서미희 기자

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입장 차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서두르는 것과 반대로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외환시장 안정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통화 정책을 주도하는 한국은행은 민간 시장을 통한 유동성 확장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정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추진...내달 '디지털자산혁신법' 발의

정부와 여당은 국제적인 흐름에 맞춰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지난 10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대표 발의하며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선제적으로 나섰다. 해당 법안은 자기자본 5억원 이상, 전문 인력 및 전산 시스템을 갖춘 법인이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민주당 의원들은 늦어도 내달 중 '디지털자산 시장의 혁신과 성장에 관한 법률(가칭:디지털자산 혁신법)'을 정식 발의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정무위원회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디지털자산 혁신 법안'의 주요 조문 및 핵심 쟁점에 대해 소개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게 될 이 법안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틀을 명확히 규정한 점이다. 특히 은행법, 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기존 금융법에서 분리해 '디지털자산혁신법'에 따라 규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핀테크 기업 등 비금융기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가능해질 수 있다.

해당 자산을 발행하고자 할 경우 최소 자기자본 10억원을 갖추도록 규정했다. 이는 기존 민 의원 안에서 제시된 5억원보다 두 배로 상향된 수치로, 책임성과 안전성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통화주권 훼손 우려..."제도 설계에 직접 참여할 것"

반면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 연일 경고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 75주년 기념사에서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통화의 대체 기능을 가질 수 있다"며 "외환시장 규제를 우회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제도 설계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첫 사례다.

/ 사진=한국은행 홈페이지
/ 사진=한국은행 홈페이지

이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 발행 수익(시뇨리지)을 민간에 집중시키고, 자본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그는 "민간이 대규모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저해되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도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한국은행 입장에선 통화정책 주체인 만큼, 상대적으로 관리가 힘든 비은행권의 무분별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리스크로 여기고 있다. 특히 코인 발행사가 직접 국채 등을 보유할 경우 통화량 조절에 활용될 유동성 자산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블록체인 시장은 국경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외국 위기가 국내에 빠르게 전이,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여당의 한국은행 달래기?! 발행잔액·준비자산 확보가 관건

이같은 한국은행의 신중한 입장을 감안한 듯, 내달 중 발의될 '디지털자산 혁신 법안'은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단순한 자본 요건을 넘어 발행잔액과 준비자산의 비율을 1:1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포함됐다.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의 미상환 총액을 상회하는 준비자산을 확보해야 하며, 발행 확대 시 자기자본도 함께 늘려야 하는 구조다.

발행자의 준비자산 규정, 유지 의무도 명시됐다. 준비자산은 가치가 안정된 디지털자산과 동일한 특성을 가진 자산으로 구성돼야 하며, 총가치는 발행된 해당 디지털자산의 상환되지 않은 총잔액과 같거나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준비자산은 이용자가 상환을 요청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준비자산에 대해 매월 1회 이상 감사보고서와 매년 1회 이상 외부감사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유희준 한국은행 디지털화폐기술팀 팀장/ 사진=이성우 기자
유희준 한국은행 디지털화폐기술팀 팀장/ 사진=이성우 기자

이러한 요건은 최근 한국은행이 지속적으로 제기한 스테이블코인의 시스템 리스크 우려와도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해당 법안에는 한국은행의 역할도 명시됐다. 한은은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금융감독원에 검사 요청을 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받는다. 특히 긴급 상황 시 금융위원회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고, 금융위는 이에 대해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조재우 한성대 교수는 "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기 밥 그릇 챙기기'로 비춰진다"면서 "스테이블코인 관련해선 없던 이야기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닌 만큼 한국은행과 정부는 원만한 조율을 거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백서' 공시 서류 규정 마련...심사 주체, 금융당국 아닌 '법정협회'

이번 법안에는 기존 증권신고서와 유사한 '백서'라는 공시 서류 규정도 마련했다. 백서에는 디지털자산의 발행자 및 운영자에 관한 정보, 디지털자산의 용도나 목적, 또는 기능에 관한 정보가 기재된다. 총 발행량 및 유통량 계획, 사업계획에 관한 정보도 써야 하며 기술·보안, 이용자 보호 장치에 관한 정보도 기재 대상이다.

심사 주체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가 오갔지만 디지털자산의 특성을 고려해 금융당국이 아닌 '법정협회'가 담당하는 것으로 했다. 해외 발행 디지털자산의 경우 국내 당국에서 실사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진실성 확인도 '무한 입증' 굴레에 빠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디지털자산 발행시 심사대상인 백서의 경우 기존 증권신고서와 달리 아직 사업의 실체가 없는 초기 아이디어 단계에서 미래 청사진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백서에 대해서는 증권신고서 심사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규율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이유로 협회로 하여금 형식적 심사를 수행하게 하고 사후적으로 발행자에게 공시서류의 내용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책임있는 공시를 유도하고자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미희 기자 sophia@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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