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 왜 자국 플랫폼이 필요한가' 정책토론회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이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악화시키고 국가 AI 경쟁력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24일 디지털경제포럼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주최로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AI 강국, 왜 자국 플랫폼이 필요한가' 정책토론회에서 이승엽 부경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시장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겠다는 온플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해외 법률 재정 사례, 역차별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섣부른 제정 추진은 제고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온플법 재정시 해외 빅테크 역차별 심화...AI 투자 의지 꺾인다"
온플법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들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입점업체들과의 '갑을관계'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현재 범여권을 중심으로 국회에 발의된 온라인플랫폼법안은 시장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정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를 지정해 사전규제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온플법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한 법안이다. EU는 DMA를 통해 역내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대상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규제하고 있다. 다만 이런 사례 역시 자국 플랫폼을 규제하기 보단 해외 빅테크의 시장 장악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또 자국 플랫폼이 경쟁력을 갖지 못한 유럽과 달리, 국내 플랫폼들은 국내 시장에서 해외 빅테크들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상황도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DMA는 구글, 아마존,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플랫폼 사업이 유럽 내 디지털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제한할 목적으로 시행됐다"며 "미국의 경우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 중국 플랫폼 기업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규제 입법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시장 상황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 제정 사례를 참고해 국내에 도입한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며 "유럽의 경우 규제 초점이 자국 플랫폼에 맞춰진 게 아니고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소규모 기업을 육성하는 데 방해요소가 되는 해외 플랫폼에 대한 규제에 맞춰져 있는 데, 우리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온플법을 제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온플법 제정이 국내 플랫폼 기업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막대한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에 투자할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전 규제 방식의 온플법보다는 기존 공정거래법, 전자상거래법 등의 개정이나 사후 규제 중심으로 시장 질서를 유도하는 게 합리적이란 조언도 내놨다.
그는 "온플법 제정 이후 해외 사업자를 규제할 수 있느냐도 문제"라며 "국제 통상 마찰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해외 기업데 규제가 적용될 수 있을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규제 대상을 사전 지정하는 측면에 있어 매출이나 이용자 규모 등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료를 정확하게 제출할 지 의문이며, 우회적인 방식으로 매출을 축소해 신고하는 등의 방법들도 있기 때문에 사전 규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플랫폼이 국가 AI 경쟁력 확보에 유리"
이날 토론회에선 자국 플랫폼 경쟁력이 AI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도 발표됐다. 이번 연구는 OECD 회원국 및 파트너국 중 33개국을 대상으로 자국 플랫폼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검색엔진 및 모바일 앱 점유율과 AI 기술수준, AI 생태계 발달도 등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한국은 자국 검색플랫폼 점유율이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4위권으로 나타났고, 모바일 앱 경쟁력은 중국, 미국 다음 3위권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국가 AI 기술수준은 7위권으로, 자국 플랫폼 점유율 상승은 AI 기술 역량 강화와 스타트업 투자 유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의 AI 활용 및 관련 시장 형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번 연구를 맡은 곽규태 순천향대학교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현재 잘 나가는 AI 기업 대다수는 플랫폼 기업으로, 자국 플랫폼 기업의 기술이 뒤처지고 자국민이 서비스에 더 늦게 노출되면 전체 산업이 열위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플랫폼이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에 부정적인 일부 요소 때문에 플랫폼 성장을 막으면 AI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고찰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플랫폼 기업은 자국 인터넷 기반 산업 성장을 촉진하고 로컬시장의 안정성 유지에 기여한다"며 "AI 국가 역량의 핵심자원은 대규모의 데이터로, 데이터 생성, 수집, 관리의 중심은 플랫폼으로 AI와 결합하려는 비즈니스 시도에 대해 자국 플랫폼이 있는 게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거버넌스 측면에서 자국의 정체성과 정보주권을 보호하고 AI 시대 핵심 자원인 자국 데이터의 축적과 보호, 플랫폼에 대한 안정적인 통제 권한 측면에서도 자국 플랫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해외 빅테크와 무역 분쟁 우려 때문에 마음대로 교섭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자국 플랫폼을 유지하는 것이 보완재로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적절성 상실한 온플법 제정 신중해야...소상공인 위한 다른 대안 필요"
이날 토론에선 자국 플랫폼 및 국가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온플법 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다만 온플법의 본래 취지인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적절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정환 고려대학교 교수는 "온플법 이면에 깔린 전제는 '플랫폼이 갑'이라는 생각이지만, 온플법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자국 플랫폼이 사라져가는 중"이라며 "해외 플랫폼을 규제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황에 자국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괜찮은 기업들이 점차 보이지 않은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온플법 이전에 모바일 인앱결제 수수료 논란이 있었을 때도 논의는 많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결국 늘어난 수수료를 고스란히 이용자들이 부담하고 있다"며 "자국 플랫폼을 잃어버리는 건 '디지털 노예'가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준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AI 경쟁력은 플랫폼 점유율보다는 데이터가 잘 흐를 수 있게 만들 수 있나가 더 중요하다"며 "이용자가 원하면 데이터를 옮겨갈 수 있는지, 공공 데이터는 잘 공유되는지, 데이터를 연결할 때 빅테크에 의존하지 않고 혁신에 참여할 수 있는 지가 시사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상공인과 입점업체를 보호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며 "규제가 반드시 혁신을 저해하는 지에 대한 실증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데이터 접근권, 알고리즘 투명성 등 사용자 권리에 대해선 강력히 규제하고, 그 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시도에 대해선 혁신할 수 있도록 차등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용국 동국대학교 교수는 "이용자 관점에서 국가 AI 경쟁력을 위해 자국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타당성이 있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자국 플랫폼을 갈라파고스적 시각으로 보는 측면이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트럼프 정부의 자국 이익 경쟁 등을 보면서 자국 플랫폼의 필요성을 어필할 수 있는 논리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소상공인 보호나 상생 저하 측면에선 더 갈등이 심해지는 양상"이라며 "경제가 좋을 땐 낙수효과나 상생 호혜 효과가 컸지만, 최근 경제가 좋지 않아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일부에게 몰려 이익이 공유되지 않는다는 사회 인식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하태현 세종대학교 교수는 "온플법은 규제 성격이 강하다"며 "규제 보다는 플랫폼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가야지 패널티를 주는 식으로 벽을 치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같은 맥락에서 '자국'이란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며 "안드로이드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 'K-안드로이드'를 만들기 보단 더 매력적인 투자 유인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는 "온플법의 목적은 이해하지만 수단으로서 적절성이 상실됐다"며 "정책 우선 측면에서 'AI 3강'이 현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며 국가적인 중요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온플법의 부정적 효과는 구체적으로 현실화된 반면, 긍정적 효과는 불투명하다"며 "글로벌 스탠다드도 아닌 DMA 식 규제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AI 3강을 달성하기 위해선 스타트업 중심의 AI 혁신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며 "AI 전환이 전 산업 영역에서 일어나며 경쟁하기 시작할 때 자국 플랫폼이 살아남아 서비스를 만들고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느냐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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