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명과 암: 산업 육성과 규제의 충돌
관건은 컴퓨팅 임계값 삭제·성과 기반 감독·유예 기간 도입
시행령 만드는 시점, 산업과 규제의 톱니 맞출 때

김세진 님 / 캐리커처=디디다컴퍼니 제작
김세진 님 / 캐리커처=디디다컴퍼니 제작

2024년 말 국회를 통과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AI 기본법)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전략, 산업 진흥, 규제를 하나의 법률에 담아낸 사례다. 이로써 한국은 인공지능(AI) 정책의 세 가지 축 ▲국가 전략 ▲산업 육성 ▲위험 규율을 통합적으로 설계한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 뒤에는 역설적인 위험이 숨어 있다. 산업 진흥의 엔진을 규제가 동시에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구조적 모순이다.

AI 기본법의 산업 진흥 조항은 체계성과 미래지향성 측면에서 모범적이다. 데이터 인프라 확충, 집적단지(클러스터) 조성, 인재 양성, 국제화 지원은 AI 생태계의 토대를 마련하는 핵심 요소다. 실제로 다른 국가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정책적 성과라 평가된다. 문제는 같은 법률 안의 규제 파트다. AI 위험성을 정확히 겨냥하기보다 상징적, 일괄적 잣대에 의해 포함되면서, 산업 진흥 파트가 쌓아 올린 정책 효과를 허물 수 있는 리스크가 포함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영향AI'를 분류하는 기준 중 하나인 '컴퓨팅 임계값(제32조)' 기준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연산 자원을 투입한 AI 모델을 일괄적으로 고위험으로 분류하는 현재의 구조는 기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수익성을 위해서라도 연산량은 계속 효율화될 것이기 때문에 위험성을 측정할 때 신뢰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며, 되려 기업들로 하여금 성능과 무관한 행정 부담만 떠안게 만든다. 

'고영향 AI' 관련 제33~35조는 또 다른 문제를 드러낸다. 자체평가, 문서화, 보고를 광범위하게 요구하지만, 서류가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규제의 초점을 결과가 아니라 절차에 두면 기업은 문서 작업에 자원을 소모하고, 사회는 배포 후 실제 환경에서 드러나는 위험을 제때 포착하지 못한다. 여기에 워터마크·라벨링 의무(제31조)는 그럴듯한 안정감을 주지만, 허위정보·지식재산 침해·딥페이크 같은 구체적 피해를 직접 줄이지 못한 채 기업의 준수 비용만 키울 위험이 크다. 결국 안전의 착시를 낳기 쉽다.


전략·진흥·규제가 맞물려 같은 속도로 돌아가는 정밀한 정책 시계가 필요 

해법은 절차 중심에서 성과 기반 규제로의 전환이다. 위험을 문서화하고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부처가 분야별로 측정 가능한 성과 기준을 설정하고, 실제 배포 이후의 성능과 안전성을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같은 전문기관이 평가·검증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의료, 금융, 자율주행과 같이 특수성이 강한 영역일수록 행정적 '서류 작업'이 아니라 실제 환경에서의 작동 여부가 안전의 핵심이다. 일례로 자율주행의 위험은 국토교통부, 금융 알고리즘의 위험은 금융위원회, 의료 안전성은 보건 당국이 이미 잘 알고 규제를 마련했기 때문에 AI 위험 규제는 단일 ‘AI 전담’ 조직이 아니라 기존의 전문 부처와 기존 법률 체계를 통해 집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 은유는 "시계"다. 규제의 시계가 산업의 시계보다 너무 빠르면, 시장은 움츠러들고 혁신은 꺾인다. 반대로 규제가 지나치게 느리면 사회적 신뢰를 잃고 피해가 발생한다. AI 기본법은 지금, 전략과 진흥의 시계에 비해 규제의 시계가 과속하고 있다. 규제의 톱니바퀴가 산업 진흥의 기어를 잠식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다행히 시간은 남아 있다. 본 법은 2026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MSIT)가 최종 시행령을 마련하는 과정에 있다. 국회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AI 정의, 규범적 연구개발(R&D) 의무, 중소기업 우선순위화 등 구조적 결함을 손봐야 한다. 정부는 시행령 단계에서 컴퓨팅 임계값 기준 삭제와 함께 과태료 부과 전 유예기간을 두어 전환기 기업에 경고·시정기회를 제공하고, 고영향 AI 요건을 성과 기반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투명성은 라벨링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 출처 진위성 표준(C2PA) 자율 확산, 디지털·AI 리터러시 투자, 지식재산·선거 캠페인 투명성·온라인 괴롭힘 등 구체 피해에 대한 맞춤형 규율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AI 기본법은 한국이 전략과 진흥에서 거둔 성과를 세계적 모범으로 확산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규제의 과속으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규제는 산업보다 앞서야 하는가, 아니면 따라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한국 사회 전체가 답해야 할 과제다. 지금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AI 3대 강국'에 필요한 것은 무작정 빠른 시계가 아니라, 전략·진흥·규제가 맞물려 같은 속도로 돌아가는 정밀한 정책 시계다. 

※본 칼럼은 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홈페이지에 게재돼 영문으로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글=김세진
정리=김현기 기자 khk@techm.kr


<Who is> 김세진 님은?
미국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한국인 정책연구원으로서 미국과 한국의 인공지능(AI)·블록체인·우주경제·반도체 등 신흥기술 분야 산업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이전에는 테크 미디어의 뉴욕 주재 기자로 활동하며, 자율경제·로보틱스·우주산업·생성형 AI 등 핵심 기술 의제를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헤스터 피어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 '칩 워' 저자 크리스 밀러 등 주요 인사와의 단독 인터뷰도 진행한 바 있다. 주요 저술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한 개괄 및 고찰' 'WeMix, Web3 Gaming and Ethics' '웹3웨이브' '2025 글로벌 테크 트렌드: 트리플 레볼루션이 온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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